[세상읽기] 자유와 질서의 문화

최정애 전남대 교수·소설가 2022. 7. 2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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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다시 찾은 독일에서 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변하는 것보다 변하지 않는 것이 많은 이 유럽의 나라는 코로나19가 동반한 대혼란을 겪은 후 안정을 찾아가려고 모두 애쓰는 것 같다. 거리에 나가면 마스크를 쓴 사람이 거의 없다. 코로나 기간 동안 마스크와 백신 등 정부 통제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자주 있었고, 그것의 요지는 국민의 자유를 정부가 통제할 권리는 없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자유란 무엇일까. 비록 그 시위가 독일인 전체 의견을 대변하지는 않았더라도, 그것은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문제를 대하는 한 나라의 태도였으므로, 나는 시위를 지켜보며 자유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최정애 전남대 교수·소설가

영국의 철학자 이사야 벌린은 자유를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로 구분해 정의했다. 소극적 자유는 외부의 간섭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뜻하는 것이고, 적극적 자유는 특정 가치를 추구하고 쟁취하는 자유를 뜻한다. 그러고 보면 정부 통제에 반대하는 시위라는 것이, 자유를 지키겠다는 일종의 결심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런 정의의 차이 때문인지 코로나를 마주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조금씩 달랐다. 자유라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같은 개념일지라도 개별의 맥락에 따라 완전히 다른 해석을 요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자유에 대한 서로의 다른 정의를 인정해준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다니는 도시의 시립 도서관은 시내 한가운데 있는데, 길이 좁고 주차장이 없는 시내에 진입하려는 사람들은 시내 입구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들어가야 한다. 나는 가끔 벤치에 앉아 주차장을 유심히 바라본다. 신기하게도 주차장에는 출입구 표식이 없고, 도로 한중간에 길만 나 있으며, 심지어 주차를 위한 줄도 없이 그저 빈 공간이다.

주차장은 시의 재산인데, 주차장 한쪽에 차를 세워둔 사람들은 하나같이 주차권을 발급받기 위해 무인 정산기를 찾는다. 주차료는 30분에 1유로, 1300원꼴이다.

그곳에는 CCTV도, 차단기도 없고 주차비를 통제하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도 주차를 한 사람들은 꼬박꼬박 주차비를 내러 간다. 아주 잠깐 주차를 했다가 몇 분 만에 돌아온 사람도 단기 주차 비용을 기꺼이 지불한다. 주차장 옆으로 주차를 할 수 있는 샛길도 얼마든지 있는데 그곳에 주차하는 사람을 몇 년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처음에는 그 광경이 신기해서, 다음에는 그들의 윤리적 태도에 호기심이 일어서, 나는 주차장이 잘 보이는 벤치에 앉아 차들이 오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한다.

독일에 오기 전 한국에서 무인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들의 고충을 접한 적이 있었다. 편의점을 24시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무인 편의점은 코로나가 시작되며 비대면을 강점으로 더 활성화되었는데, CCTV가 담은 사람들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아이스크림 냉동고에 소변을 보거나, 바닥에 토하거나, 물건을 훔치는 사람들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영상이 공개되자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심한 댓글을 다는 이들이 있었다. 충고라기보다 혐오에 가까웠다. 자유를 악용하는 사람들을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댓글이 공감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완벽한 통제라는 게 가능하긴 할까.

한국에 있는 CCTV의 수를 많게는 800만대까지 추정한다. 대도시권이라면 한 사람이 열 걸음을 걸을 때마다 CCTV 화면에 노출된다는 뜻이다. 덕분인지 우리나라의 좋은 치안은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CCTV는 사고의 완전한 목격자가 되어준다. 그런데 어째서 CCTV 문화가 이토록 발전했는지 생각해보자. 객관적인 상황 파악과 정확한 근거 확보를 위해 만들어진 문화 아닐까. 이를테면 그것은 사회적 신뢰의 문제, 개별적 자유에 대한 불인정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는 것 아닐까.

나는 여전히 독일 사람들의 철두철미하고 비융통적인 사고방식에 혀를 내두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코로나 시위라는 것이, 어쩌면 신뢰와 책임의 문화를 돌려달라는 의미는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것은 벌린의 개념에서 소극적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적극적 자유로서의 행위가 아니었을까. 무엇보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인정이라는 개념에서 또 다른 맥락의 자유가 아니었을까. 거리를 건널 것 같은 행인이 보이면 횡단보도가 아닌 곳이라도 무조건 정지하며 길을 건너라고 손짓하는 독일 내 운전자들의 습관을 지켜보며, 횡단보도 우회전 우선 정지를 위반한 차량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벌금을 매기기로 했다는 한국의 뉴스를 다시 떠올려본다. 공동체 모두의 자유를 위해 개인의 질서와 책임을 강조하는 독일의 문화를 나는 그저 바라본다.

최정애 전남대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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