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에 투자한 '영끌族' 구제.. '도덕적 해이'인가 아닌가
모파상 소설 '목걸이'와
文정권 'K방역'의 비극
하급 관리의 딸이면서 하급 관리에게 시집간 마틸드는 행복하지 못했다. 본인의 아름다운 외모에 걸맞은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는 불만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일생일대의 사건이 벌어진다. 남편이 장관 댁 무도회 초대장을 마련해온 것이다. 하지만 마틸드는 더욱 불행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무슨 옷을 입고 간단 말인가? 남편은 아껴두었던 비상금을 꺼내 아내의 옷값을 대주지만, 이번에는 장신구가 문제다. 결국 마틸드는 친구인 포레스터 부인을 찾아가, 눈부신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빌리고, 장관 댁 파티장에서 인생 최고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프랑스의 작가 모파상이 쓴 단편 소설 <목걸이>의 내용이다.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니 독자 여러분도 이야기의 결말을 모두 알고 계실 것이다. 마틸드는 목걸이를 잃어버렸다. 보석상을 돌아다니며 가장 비슷하게 생긴 것을 찾았다. 있는 돈 없는 돈 모두 긁어모아 무려 3만6000프랑이나 되는 그 목걸이를 사서 돌려주었고, 10년간 뼈 빠지게 일한 나머지 왕년의 미모를 모두 잃고 말았다. 결국 빚을 모두 갚은 마틸드는 길에서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났는데, 자초지종을 들은 포레스터 부인이 눈물을 흘리며 하는 말. “어쩜, 어떡하면 좋아, 마틸드! 내건 가짜였어. 기껏해야 500프랑밖에 나가지 않는….”
이 결말이 워낙 충격적인 탓일까. <목걸이>는 허영심에 사로잡힌 여인의 어리석은 선택과 운명의 장난에 대한 이야기로 치부되곤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라고 볼 수도 없다. 이 짧고 통렬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경제학을 넘어 현대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담론 중 하나인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에 대해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적으로 도덕적 해이란 돈을 빌리더니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갚지 않는 악성 채무자 등을 비난하는 용어로 흔히 쓰인다. 하지만 도덕적 해이는 경제학에서 명백한 정의를 지니는 개념이다. 정보의 비대칭성(asymmetric information)을 이용해 한쪽이 다른 쪽으로부터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것이 도덕적 해이의 본래 의미다.
아는 것은 힘이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보란 곧 경제력이다.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경제적 이득을 얻는 것 자체를 금지한다면 시장경제는 성립할 수가 없다. 수퍼 주인에게는 본인이 1200원에 파는 아이스크림을 옆 가게에서 1000원에 판다는 것을 손님에게 알려줘야 할 의무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영리 행위의 자유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장마철에 비가 샌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르쳐주지 않고 집을 판다거나, 침수됐던 차량을 지인에게 판매하는 등의 행위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상대방의 신뢰를 악용한다거나, 오해할 만한 상황을 만든다거나, 상대가 뭔가 잘못 알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침묵한다면, 도덕적인 문제를 넘어 법적인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목걸이>로 돌아가 보자. 마틸드는 포레스터 부인이 빌려준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엄청난 고가의 진품일 것이라고 단정 짓고 있었다. 포레스터 부인은 상대가 그렇게 오해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심지어 목걸이를 돌려받을 때 상자를 열고 확인해보지도 않았다. 왜였을까? 쩨쩨하게 굴지 않는 부잣집 마님 이미지를 지키려고? 그렇게 잘사는 것처럼 굴면서 실은 가품 보석이나 가지고 있다는 식의 뒷말이 나올까봐?
물론 이것은 도덕적 해이라는 비난을 직접 받을 만한 사안이 아니다. 그 누구도 포레스터 부인이 일부러 마틸드를 속였다고 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관대하게 목걸이를 빌려주어 마틸드는 인생 최고의 밤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포레스터 부인은 정보의 불균형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통해 은밀한 우월감을 누렸으며, 그 결과 마틸드가 10년간 괜한 빚고생을 하며 폭삭 늙어버린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정부는 지난 14일 ‘금융부문 민생 안정 과제 추진현황 및 계획’을 발표했다. 코로나로 인해 피해를 본 자영업자들에 대한 채무조정 방안이다. ‘청년 신속채무조정 특례 제도채무조정’ 역시 새로 도입됐다. 문제는 빚을 진 이유에 가상 화폐 투자 등이 배제되지 않았다는 것. 국가가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다.
지금도 개인회생 및 파산 과정에는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한 채무조정이 포함된다. 요건을 충족한 후 상환의 의지가 있다는 것을 매달 보여준다면 이자율 조정이나 원금 상환 유예 같은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평생 갚지 못할 빚의 굴레를 씌워서 누군가를 신용불량자로 만드는 건 당사자의 인생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해롭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현대 자본주의 국가가 운영 중인 채무조정 제도의 기본 정신이다. 심지어 구약 시대의 히브리 민족도 7년이 일곱 번 지나 50년이 되면 희년을 선포하고 갚지 못할 빚을 탕감해주지 않았던가. 일부러 빚을 지고 안 갚는 악성 채무자는 엄벌해야 하지만, 능력 바깥의 빚에 깔린 사람들을 기계적으로 신용불량자로 만드는 식으로는 사회와 공동체가 유지될 수 없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에서 ‘K방역’이라는 이름하에 벌어지던 일을 떠올려 보자. 대기업이나 공기업, 공무원 등 안정적 직장에 다니는 이들은 똑같은 월급을 받았다. 일부는 재택근무의 나날을 즐기기까지 했다. 반면 자영업자들은 매주 어찌 바뀔지 모르는 정책 앞에서 피 말리는 시절을 보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그런 이들을 위한 것이다. 여윳돈으로 가상 화폐나 부동산 등에 ‘빚투’한 이들은 애초에 구제 대상에 포함되기 어렵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이들을 ‘빚을 못 갚으면 망해도 싸다’는 식으로 대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모럴 해저드일지 모를 일이다.
<목걸이>는 정보의 불균형을 방치한 포레스터 부인의 아주 작은 도덕적 해이가 마틸드의 인생을 망가뜨린 이야기다. 몇 번을 읽어도 안타까운 탄식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아직 희망은 남아 있다. 마틸드는 결국 진짜 다이아몬드 목걸이 값을 다 갚아내면서 자신의 또 다른 잠재력을 깨닫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돈의 일부라도 포레스터 부인으로부터 돌려받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마틸드들 역시 스스로 빚을 갚으며 새 인생을 살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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