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재유행 코앞에 닥쳤는데.. 사령관도, 과학 방역도 안 보인다
체감되지 않는 이유는?
한동안 잠잠했던 코로나 확진자가 최근 급증하면서 윤석열 정부의 코로나 방역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신규 확진자 급증세는 이미 ‘재유행 진입’으로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 이달 초부터 일주일마다 신규 확진자 수가 2배 가까이 증가하는 ‘더블링’ 현상이 계속되고 있고, 위중증 환자도 100명대 안팎으로 늘었다. 이번 유행으로 일일 신규 확진자는 최대 30만명에 이를 수 있고, 유행은 3개월가량 지속할 수 있다는 게 정부와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과거와 달리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면서도 “이번 유행에 제대로 대비할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현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정치 방역을 비판하며 ‘과학 방역’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현재로선 뚜렷한 차이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또 총리가? 말짱도루묵인 중대본-방대본 체제
현재 코로나 방역에 가장 앞장선 사람은 한덕수 국무총리다. 현행법상 국무총리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의 본부장을 맡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검사·백신 접종 등을 맡는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는 백경란 질병관리청장이 본부장을 맡고 있다.
이런 중대본-방대본의 이원화된 지휘체계는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논란과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코로나와 감염병에 전문성이 부족한 총리와 장관들이 중심이 된 중대본이 방역의 핵심을 맡은 탓에 비과학적 방역 조치들이 남발된다”고 비판했다. 방대본이 중대본의 하위 조직으로 분류된 탓에 그나마 전문성 있는 정책 조언과 제언도 중대본의 정치적 판단에 묵살되기 일쑤였다.
당시 청와대가 비공식적 경로로 중대본과 방대본의 의사 결정에 정치적으로 깊숙이 개입한 것 역시 공직사회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마상혁 전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정치 방역을 청산하고 과학 방역을 하려면 비전문적인 정치인들이 중심이 되는 중대본 체제부터 개편하는 게 올바른 순서”라며 “현 정부가 기존 방역 지휘체계를 그대로 수용한 것을 보니 정치 방역을 청산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정부로선 할 말이 없진 않다. 중대본-방대본으로 이뤄진 이원적 지휘체계는 현행 재난 및 안전기본법(재난관리법)상 감염병 위기경보 ‘심각’ 단계에서 설치하도록 규정한 법적 조직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래서 대통령의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전쟁이 재발했는데 실질적인 현장 사령관이 없는 상황”이라며 “그럼 대통령이 나서서 사령관을 지목해 지휘봉을 주고 각 부처에 업무 분장을 해 일사불란하게 대응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런 리더십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질병청장이 차관급인 만큼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고, 중대본과 방대본의 역할 구분을 명확히 해줬어야 했다”고 말했다.
◇”현장 지휘관도 대통령 리더십도 안 보여”
이에 대해 정부 고위 관계자는 “그런 우려와 비판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며 “총리가 중대본을 총괄하지만 과거처럼 총리가 나서지 않고 실질적인 방역 결정은 전문가들이 주도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정부는 국무총리실 소속으로 ‘국가 감염병 위기대응 자문위원회’를 설치하고 지난 19일 자문위원회 위원장에 정기석 전 질병관리본부장(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을 위촉했다. 또 자문위원회에 방역 의료 전문가 13명, 사회경제 분야에 8명의 전문가를 위촉했다.
하지만 너무 뒤늦은 조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인수위 시절부터 대통령 직속으로 자문위원회를 만들어 민관 협동 거버넌스를 만들겠다고 하지 않았냐”며 “여름 휴가철부터 코로나가 재유행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던 만큼 정부 출범부터 자문위원회를 꾸리고 대비했어야 했는데, 손 놓고 있다가 유행이 시작되니 부랴부랴 이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자문위원 대다수가 국립대 교수이고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연구원인 걸 감안하면 전 정부가 운영한 일상회복지원위원회와 어떤 차별성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방역 사령관’인 보건복지부 장관이 여전히 공석이라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전적으로 인선 실패의 결과”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 출범 전부터 의료계에서는 “재유행에 대비해 초대 복지부 장관만큼은 감염병 전문가가 맡아 방역 체계를 미리 정비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조언이 나왔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측근들은 이를 무시하고 위암 전문가인 정호영 전 경북대병원장과 식품약리 전문가인 김승희 전 의원을 후보자로 지명했고, 두 후보자 모두 낙마했다.
김우주 교수는 “미국은 앤서니 파우치 국립 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장과 로셸 월렌스키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을 ‘투톱’으로 지휘체계를 간결하게 가지 않았느냐”며 “장관이 없으면 대통령이 질병청장에게 전권을 주고 진두지휘하도록 힘을 실어줘야 하는데, ‘원팀으로 대응하라’는 원론적인 얘기만 하고 있으니 답답하다”고 했다.
◇ 체감되지 않는 과학 방역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과학 방역’도 체감되지 않는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현 정부는 AI(인공지능)와 빅데이터 등을 기반으로 거리 두기와 환자 발생 모니터링 등 백신 접종 등을 과학적으로 하겠다고 수차례 공언했다.
하지만 당장 전 정부에서 이뤄진 방역 정책에 대한 과학적 분석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 우려다. 마상혁 전 부회장은 “이미 해외에선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벗고 있는데 우리도 그런 조치가 필요한지, 장기간 마스크를 쓰는 게 신체 건강이나 학생들 성장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다각적인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지자체마다 남발된 비과학적 방역 조치들이 여전히 남아있는데 개선이 안 되니 국민 입장에선 체감이 안 될 수밖에 없다. 점점 관료주의 방역에 포섭되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김우주 교수는 “정부 출범부터 전 정부의 코로나 대응에 대한 백서를 만들고 비판적인 검토부터 선행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리더십 부재가 이어지면 ‘과학 방역’이 결국 정치적 수사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최재욱 교수는 “과학 방역을 하려면 과학적 연구를 기반으로 해야 하는데, 이런 연구들이 정책에 빠르게, 제대로 반영되려면 방역 수장들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연구를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준용 주말뉴스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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