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국 14년간 낮은 일 관동군, 밤은 '아마카스 천하'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736〉
“짐칸에 탄 차, 전신주 받아 머리 깨지는 줄”
일본요리 집에 도착한 푸이는 일본군 장교로 둔갑했다. 대위 복장에 군모까지 쓰고 승용차에 올랐다. 일본 특무들이 탑승한 차량의 호위를 받으며 선착장에 도착했다. 기다리고 있던 정샤오쉬(鄭孝胥·정효서) 부자를 보자 가슴을 쓸어내렸다. 12일 새벽, 톈진 주재 일본 총영사가 도쿄 외무성에 전문을 보냈다. “간편한 복장의 승객 수명과 일본군인 5명이 탑승한 소형 선박이 영국 조계의 부두를 출발했다. 폐제(廢帝) 선통(宣統)이 배 안에 있다는 소문은 추측에 불과하다.”
아마카스는 육군사관학교 재학시절 교관 도조 히데키(東條英機)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 헌병 병과였던 도조는 아마카스도 같은 길 가기를 원했다. 어릴 때부터 말을 좋아하던 아마카스는 도조의 기대를 저버렸다. 기병과를 택했다. 이 총명한 기병장교는 자신도 모르는 약점이 있었다. 말을 좋아만 했지 다룰 줄은 몰랐다. 훈련 중 낙마로 왼쪽 다리가 망가졌다. 도조는 한번 정을 준 사람을 버리는 법이 없었다. 아마카스에게 희망을 안겨줬다. “불구가 됐다고 실망하지 마라. 기병이나 보병은 불가능해도 헌병은 상관없다.”
관동지진 때 아마카스 잔혹함에 열도 들썩
도조는 아마카스를 프랑스로 보냈다. “하고 싶은 공부 하며 자신을 세상의 이목과 차단해라.”
3년에 걸친 아마카스의 유학생활은 흔히 말하는 유학(留學)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학과는 담을 쌓았다. 낮에는 거리의 화가들과 어울리고 해가 지면 연주회에서 시간을 보낸, 유학(遊學)으로 일관했다. 전통을 자랑하는 비밀결사 프리메이슨에 가입한 후에는 흑백영화에 매력을 느꼈다. 영화가 선전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자 귀국을 서둘렀다.
일본으로 돌아온 아마카스는 만주로 갔다. 가명으로 선양의 일본 헌병대 군속 숙소에 짐을 풀었다. 사관학교 동기생이 구술을 남겼다. “아마카스는 매일 동분서주했다. 앉은 자리가 더워질 틈이 없을 정도였다. 무슨 일을 하는지 말하는 법이 없었다. 마치 한 국가를 태동시키기 위해 기를 쓰는 사람 같았다. 만주국 수립 후 전면에 나선 것을 보고 내 추측이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는 말이다. 만주국 14년간 만주의 낮은 관동군이 지배하고 밤은 아마카스의 천하였다.
동북의 낯선 부두에서 만난 아마카스의 첫인상은 푸이의 호감을 사고도 남았다. 공포의 대상이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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