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길을 잃다]'탄중위' 민간위원장 없고 회의도 안 열어, 전문가 11명 중 10명 "2030년 NDC 40% 달성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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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지구가 펄펄 끓고 있다. 한여름에도 에어컨이 필요 없을 정도로 날씨가 서늘한 영국은 최근 한낮 최고 기온이 37℃에 이르면서 학교 200여 곳이 일시적으로 문을 닫는 등 혼란에 빠졌다. 식당과 술집도 영업을 중단하는 곳이 늘고 있고, 직장인 상당수는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야외 작업이 기본인 건설 근로자는 일찍 귀가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지구촌이 이상 기온에 시달리는 건 전기 생산을 위한 발전소나 철강을 만드는 제철소, 내연기관차가 내뿜는 이산화탄소(CO₂)와 같은 온실가스(지구가 발산하는 열을 흡수·반사하는 기체)가 지구를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열이 빠져 나가지 못하면서 지구촌 곳곳에서 폭염·폭우와 같은 이상기후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더 잦아졌고, 더 심해졌다. 이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서둘러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하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은 17일 페터스베르크 기후회담 영상메시지에서 “우리는 (온실가스 저감을 통한 기후변화에) 공동대응하느냐 아니면 집단 자살이냐,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며 “합의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잘 지키면서 함께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에서 9번째(2019년 기준)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한국도 감축에 동참하고 있다. 정부는 2020년 10월 ‘2050년 탄소중립(탄소배출 제로)’을 실현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위한 과정으로 정부는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로 2018년 대비 40% 감축을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이 약속은 잘 지켜지고 있을까.
#산업 구조 자체를 바꿔야 달성 가능
환경부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이산화탄소 환산(CO2eq·온실가스 배출량을 대표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로 환산한 양) 6억7960만t이다. 2030 NDC의 기준인 2018년 7억2700만t보다는 줄었지만, 이는 온실가스 감축 노력보다는 코로나19에 따른 생산활동 감소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다. 당장 ‘위드 코로나’ 속에 생산활동이 증가하자 온실가스 배출량은 다시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지난해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년에 비해 3.5% 증가했다. 민동준 연세대 명예교수는 “2030 NDC는 목표만 있지 8년 밖에 남지 않았는데 실현 가능한 구체적인 이행 방안이 없다”며 “국제사회에 약속한 대로 온실가스를 줄여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전문가들이 2030 NDC 40%를 부정적으로 보는 건 목표치 자체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2030 NDC를 달성하려면 우리나라는 매년 4.17%씩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 이는 유럽연합(EU) 1.98%, 미국·영국 2.81%, 일본 3.56% 등 주요국과 비교해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 연구본부장은 “현재 모든 부문에서 설정된 목표치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최대치”라고 강조했다. 더 큰 문제는 목표만 있지 구체적인 이행 방안은 여전히 ‘마련 중’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이하 탄중위)가 내놓은 ‘탄소중립 시나리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내뿜는 발전(전환) 부문에서만 1억2000만t(2018년 대비 44.4% 저감)을 줄여야 하는데, 저감 계획은 ‘석탄과 같은 화석 연료 전면 중단’ ‘재생에너지 비중 60~70%로 확대’ 정도다.
#2030 NDC 세부안 언제 나올지 몰라
상황이 이렇다보니 2030년까지 발전 부문 다음으로 많은 4000만t의 온실가스를 줄여야 하는 산업계는 발만 구르고 있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최근 탄소중립과 관련이 있는 기업 744개 회사를 조사했더니 10곳 중 9곳 가까이(87.8%)가 ‘탄소중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이들 기업 중 절반가량(48.3%)은 ‘시작 단계에 머물고 있다’고 답했다. 정만기 회장은 “우리나라처럼 석탄 등 화석연료 효율이 높은 나라에서 온실가스를 줄이려면 수소환원제철과 같은 신기술이 필수인데 기술 개발은 요원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대구 염색산업단지의 한 관계자는 “재생에너지로 공장을 돌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를 중소기업이 자체적으로 구축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도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이른바 탄소국경세)와 같은 무역 장벽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에 온실가스 감축은 필수가 됐다. 최근 EU는 CBAM 대상에 플라스틱·알루미늄·암모니아 등을 추가했다. 박지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CBAM 확대는 국내 수출 기업의 수익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30 NDC 40%는 차치하더라도 온실가스를 줄여나가려면 전문가들은 우선적으로 탄소중립 컨트롤타워인 탄중위를 재정비하는 게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지금이라도 탄중위를 빨리 구성해 연말까지는 실현 가능한 것은 그대로, 불가한 것은 수정하고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계획 기간이 2036년까지인 ‘10차 전력 수급 기본계획’이 12월 확정되기 때문에 그 전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탄중위 정비와 관련해서 문주현 교수는 “1기 탄중위에는 원전 전문가나 기업, 운수·해운 전문가가 별로 없었는데 구성원을 다양화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탄중위를 정비한 뒤에는 ‘실현 가능한’ 목표치를 재설정해야 한다. 다만, 국제사회와의 약속인 만큼 2030 NDC 40% 자체를 수정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대선 기간에는 NDC를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대통령직인수위 시절에는 ‘40% 준수’로 입장을 바꿨다. NDC 40%를 지키지 못했다고 해서 국제사회로부터 제재를 받는 건 아니지만, 한국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유승훈 교수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전 세계적인 에너지 공급망이 흔들리는 상황이라 유럽과 미국도 국제사회에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이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며 “현명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린산업 맞춤형 금융 지원 필요
따라서 전문가들은 NDC 40%는 그대로 두고 부문별 감축 목표를 실현 가능한 수준으로 조정하자고 제안한다. 예컨대 산업 부문 14.5%, 발전 부문 44.4%인 것을 늘리거나 줄이는 식이다. 김정인 교수는 “산업 부문 감축 목표가 14.5%인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며 “이걸 무리하게 추진하면 국내 생산이 줄고, 일자리가 감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계획대로 가는 건)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송·건물 부문 등 목표 자체가 높지 않고 실현 가능성이 높은 부문을 조금씩 상향하는 식으로 조정해 볼만 하다”고 덧붙였다.
이와 동시에 EU나 일본처럼 온실가스 저감·포집 등 신기술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문이다. 정만기 회장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으려면 근본적으로는 친환경 기술을 적극 개발해 상용화해야 한다”며 “온실가스 저감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 목록을 만들고 이를 정부에서 체계적으로 지원, 개발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산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석탄화력발전소를 줄여나가는 것도 온실가스 저감을 위해서는 중요하지만, 당장 현실적으로 가능한 건 에너지 시장의 경쟁 구도를 만들어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라며 “한국전력이 독점하고 있는 전력 유통 시장을 경쟁 구도로 만들어 에너지 효율을 높이려는 노력 등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온실가스 저감 방안에 맞춘 금융인프라 마련 필요성도 제기된다. 산업구조 자체를 온실가스를 내뿜지 않는 ‘그린산업’으로 전환하려면 이에 맞는 ‘맞춤형 금융지원’이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그래야 기업들이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기술 개발이나 설비 증설에 적극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민동준 명예교수는 “과거 우리나라가 중공업을 전략 산업으로 키울 때 산업은행의 역할이 컸던 것처럼 그린산업에 맞는 금융인프라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정인 교수는 “탄소중립은 장기적으로 가져가야 하는 만큼 산업계의 동참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세금에 대한 인센티브 등 단편적인 지원보다는 불합리한 규제를 없애주는 것, 제도적 합리화를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황정일·신수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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