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혁훈의 아그리젠토] 쌀을 어찌하오리까

정혁훈 2022. 7. 23.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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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물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가운데 유독 가격이 떨어지는 품목이 있습니다. 바로 쌀입니다.

쌀값은 산지 거래 가격 기준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20% 하락했습니다. 정부도 상황의 심각성을 잘 알기에 올해 들어 세 번째로 쌀을 시장에서 격리시키는 조치에 나섰습니다. 두 차례에 걸쳐 27만t을 격리한 데 이어 추가로 10만t을 격리하는 등 총 37만t의 격리를 단행했습니다. 이 정도면 작년 쌀 생산량의 10%에 가까운 물량입니다.

그럼에도 산지 쌀값은 아직 반등할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그 정도 격리로는 아직 수급이 안정되기 어렵다고 보는 게 시장의 정서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정부가 쌀 격리를 무조건 늘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번 3차 쌀 시장 격리도 기획재정부를 설득하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중앙회가 물밑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쌀 가격 하락은 우리나라 농업·농촌·농민에 끼치는 영향이 너무나 큽니다. 국내 농가 중 40%가 벼농사를 짓기 때문입니다. 쌀값이 내려가면 농촌 전체 분위기가 침울해집니다.

최근의 쌀값 하락은 지난해 쌀농사 풍년으로 생산량이 늘어난 영향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쌀에 대한 수요가 급감한 여파가 큽니다.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이 30년 전 연간 120㎏에 달하던 것이 2020년 기준으로 57.7㎏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작년에는 예년보다 훨씬 큰 폭으로 쌀 소비가 줄어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직 공식 통계가 나오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52~53㎏까지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극적으로 변하고 있는 쌀 소비 트렌드 변화에 맞게 쌀 생산을 확 줄이는 게 합리적입니다. 그러자면 재배 면적을 줄여야 합니다. 감소한 벼 재배지에 다른 곡물을 재배하면 전체적인 식량 자급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농민들이 쌀 재배를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벼농사는 기계화가 많이 진전돼 사람의 손이 덜 갑니다. 농촌 최대 문제인 구인난을 피해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더구나 정부가 쌀 가격을 지지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고 직불금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어서 지금으로서는 벼농사를 유지하는 게 농민들에게는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반복되는 쌀값 하락의 고통을 줄여주려면 다른 품목을 재배해도 쌀농사 이상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예컨대 그 품목이 밀이라고 한다면 밀농사도 쌀농사처럼 손이 덜 가는 농법을 개발해주고 가격 지지와 직불금 정책을 강화해야 합니다. 밭농사를 손쉽게 지을 수 있는 스마트팜 보급을 늘리는 것도 다른 대안입니다.

동시에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쌀 재배 한계농에는 퇴로를 열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해당하는 농가는 대개 고령의 소농일 것입니다. 물론 농업에서 이탈한 농가에는 직불금이든 생활안정자금이든 생계에 대한 확실한 지원이 병행돼야 합니다.

문제 해결의 방향을 알면서도 소란이 두려워 움직이지 않으면 전형적인 복지부동입니다. 모두가 편안해하는 변화와 혁신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식량안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지금이 적기일 수 있습니다. 정책적 묘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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