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공격적인 말에 서운해 말고, 속상한 마음을 읽어주세요[김효원의 마음건강 클리닉]
아이들을 주로 진료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필자는 항상 엄마(혹은 아이를 돌보는 다른 보호자)와 아이를 함께 만나게 된다. 진료실에서는 아이의 나이와 상황에 따라 아이를 먼저 보기도 하고, 엄마를 먼저 만나기도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경우에는 먼저 엄마와 아이를 함께 보고, 그다음에 엄마나 아이를 따로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나이에는 아이가 의사를 만날 때,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라고 해도 엄마와 함께 있는 것을 편안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청소년들처럼 엄마가 옆에 있다고 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또 내가 질문하는 것들에 아이가 뭐라고 대답하는지 듣는 것이 엄마가 아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고, 아이와 엄마를 함께 만나면서 두 사람의 상호작용을 관찰할 수도 있다.
이렇게 아이와 부모를 같이 면담할 때면 아이들의 학교생활이나 친구들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들과 함께 “엄마가 요즘 잔소리 많이 하시니?” 하고 종종 물어보곤 한다. “네, 우리 엄마는 잔소리 대마왕이에요”라며 아이가 신이 나서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아이가 엄마를 한 번 쳐다본 다음에 조심스러운 말투로 “아니에요. 우리 엄마는 엄청 잘해주세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졸지에 잔소리 대마왕이 된 엄마가 민망해하시면 아이를 내보내고 조용히 설명을 해드린다.
아이가 부모에 대해서 잔소리를 많이 한다고, 잔소리 대마왕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부모를 신뢰하고 또 부모가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세상에 잔소리를 하지 않는 부모가 얼마나 있을까? 어떤 부모라고 해도, 나와 같은 소아청소년 정신건강 전문가라고 해도, 집에 있는 본인의 자녀에게는 잔소리를 많이 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의사 앞에서 ‘엄마는 잔소리 대마왕’이라고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적어도 자기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해서 엄마가 혼을 내거나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엄마를 웃는 얼굴로 쳐다보고, 엄마가 잔소리하는 것을 의사에게 일러줄 기회가 있다는 것에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은 엄마와 평소에 관계가 좋은 아이들이다. 엄마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면서 주눅 든 목소리로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은 엄마와의 관계가 원래 불안하거나 편안하지 않은 아이들이다.
부모는 아이의 감정을 보듬어주는 사람이다. 부모가 보듬어주어야 하는 감정 가운데에는 부모 자신에 대한 분노감이나 공격성도 포함된다.
부모에 대한 공격성이나 분노감이 아이에게 보일 때, 부모는 자신이 그동안 아이를 위해서 노력해온 것이 부정당하는 것 같은 무력감을 느낄 수도 있고 ‘아이가 어떻게 나를 미워할 수 있지…’ 하고 화가 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자신의 마음을 잘 추스르고, 아이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엄마가 잔소리를 그렇게 많이 하는구나” “엄마가 잔소리하는 게 속상했구나”라고 마음을 읽어줄 수 있다면,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인식하고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이 자라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서 자유롭게 말하는 것이 오히려 행동화하는 것을 줄여주고 감정조절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김효원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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