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떼먹은 '악덕 집주인' 명단 공개.."필요한 조치" vs "악순환 발생"

이가람 2022. 7. 2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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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연합뉴스]
# A씨(30대)는 요즈음 피가 마르는 심정이다. 전세 만기가 다가오는데 집주인과 연락이 되지 않고 있어서다. A씨는 2년 전 시중은행에서 전세자금 대출 2억원을 받아 서울 금천구의 한 아파트에서 전세살이를 시작했다. 이사를 가겠으니 차질 없이 전세 보증금을 준비해 줄 것을 세 달 전부터 요청했지만 알겠다던 집주인은 돌연 잠적을 했다. A씨는 불길함을 느끼며 등기부등본을 뗐다. A씨는 그제야 지난달 초 집주인이 세금을 납부하지 않아 세무당국이 아파트를 압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매매가가 전세가보다 낮은 깡통전세가 된 것도 아니고, 전세계약 중도해지를 한 것도 아닌데 재산을 잃게 될 위기에 처한 A씨.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파산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하루하루가 힘겹다.

부동산시장 불안이 나날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악덕 임대인'의 명단을 발표하기로 했다. 이에 임대차시장에서는 부동산 사기를 예방할 수 있는 대책 중 하나라는 평가와 정보 공개의 범위가 넓어 사생활 침해라는 논란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22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는 전·월세 보증금을 상습적으로 미반환한 임대인의 신상 정보 공개를 추진한다. 구체적으로 과거 3년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강제집행이나 채권보전 조치 등을 2번 이상 받은 집주인이 대상이다. 집주인의 이름·주민등록번호·거주지 등을 주택도시보증공사(HUG) 홈페이지에 게시한다는 계획이다.

HUG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사고건수와 사고금액은 각각 1595건과 3407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역대 최대치다. 사고금액은 2018년 792억원→2019년 3442억원→2020년 4682억원→지난해 5790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올해 역시 2019년 한 해의 사고금액(3442억원)을 한 반기 만에 넘어섰다. 미반환 보증금이 3억원 이하인 사례가 대부분이라 서민·사회초년생이 주요 피해자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처럼 전세 사기가 기승을 부리자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이미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과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택도시기금법 일부개정법률안'과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 등을 발의한 상태다. 전세금을 계획적으로 횡령하는 갭투기꾼과 고의적으로 보증금을 내주지 않는 임대사업자의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는 법안으로 현재 국회 계류 중이다.

황병주 대검찰청 형사부장(왼쪽)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전세 사기 관련 대응 방안을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부동산업계에서는 악덕 임대인 명단 공개를 두고 찬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명단 공개에 부정적인 전문가들은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을 침해하고 과도한 임대인 때리기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또 부동산 하락장에서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대위변제를 받을 경우에도 악성 임대인으로 규정하는 것은 과도한 처사라는 지적이다. 또 악덕 집주인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다음 세입자를 구하는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기존 세입자들의 피해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복수의 변호사들은 "개인정보 공개는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공공의 이익에 위배돼야 가능하다"며 "단 두 건의 대위변제 이력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세입자의 전 재산일 가능성이 큰 전세금을 떼먹는 행위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2019년 8월 50명에 불과했던 나쁜 임대인은 지난달 713명으로 급증했다. 미반환 보증금 규모도 1조147억원에 달한다. 이에 사기 피해자 양산을 막고 임차인 재산권을 보호하는 것이 행정기관의 역할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개인정보 보호에 민감한 영국도 수년 전 런던시청 홈페이지에 나쁜 임대인 이력 확인 시스템을 구축한 바 있다.

복수의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가해 수법이 점점 대담해지고 다수의 피해자들이 등장하고 있다"며 "시장 상황을 반영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꼼꼼한 입법이 이뤄져야 하고, 보증기관은 법원이나 지방자치단체와의 통합 연계 시스템을 도입해 정확한 정보 제공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가람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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