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0억 손실·K조선 신뢰도 타격'..상처뿐인 대우조선 사태 봉합

김민성 기자 2022. 7. 22.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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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점거에 11척 인도 지연..대우조선 심각한 후유증 우려
원·하청 고질 구조 해결 과제..'노조리스크' 타 조선사도 긴장
권수오 녹산기업 대표와 홍지욱 금속노조 부위원장 등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사가 22일 오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에서 협상 타결을 발표한 뒤 악수하고 있다.2022.7.22/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거제=뉴스1) 김민성 기자 =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이 51일 만에 봉합됐지만 노사 누구도 승자가 없이 후유증만 남긴 '상처뿐인 두달'로 기록될 전망이다.

8000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피해 규모에다 '노조 리스크'로 인한 우리나라 조선업의 대외적인 신뢰도는 큰 타격을 입었다.

장기 불황 터널을 지나면서 형성된 조선업의 고질적인 다단계 저임금 하도급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어 대우조선 외 다른 조선사에도 불통이 튈 수 있다는 우려도 남기게 됐다. 조선업의 구조적인 문제점들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이같은 사태는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다는 게 조선업계의 중론이다.

하청 노조의 불법 점거로 대우조선의 거제사업장이 멈춰서며 천문학적 피해를 입은 것을 두고 노조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성난 목소리도 들끓었다.

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51일째 파업을 이어 온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와 협력업체 측의 협상이 진통 끝에 잠정 합의에 이르렀다. 하청노조측의 요구안 중 임금인상과 고용승계는 접점을 찾았지만 손해배상 청구 문제는 합의하지 못하고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51일간 8000억 손실…'채권단 관리' 기업의 흔들리는 재무대응 여력

어렵사리 '잠정 합의'를 이뤄냈지만 2015년부터 7조1000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채권단 관리' 기업인 대우조선이 감당해야 할 후유증은 적지 않다.

약 8년간 이어진 조선업 불황 속에 대우조선의 자금 사정은 여전히 좋지 않다. 대우조선은 지난해 1조7546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도 4701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도 5000억원대 손실로 추산된다. 이번 파업 손실 피해(7월만 기준 8165억원)까지 반영하면 영업손실 폭은 6000억~9000억원으로 커질 수 있다는 게 증권업계의 분석이다.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의 추가 대출 등 자금지원이 없다면 올해 말 유동성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대우조선의 최대주주(지분율 55.7%)인 KDB산업은행이 '불법 파업으로 발생한 손실 보상을 위해 1원도 추가 지원하지 않겠다'는 뜻까지 밝히면서 유동성 지원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

결국 손해를 최소화하려면 건조 속도를 높여서 공정 지연을 최대한 해소하는 방법이 유일하다. 오는 23일부터 대우조선은 휴가에 들어가지만 상당수 인력이 출근해서 중단된 진수 작업을 비롯한 각종 공정에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는 "두 달 가까이 파업이 이어졌기 때문에 평소 공정률로 회복은 쉽지 않다"고 했다.

◇'노조 리스크'에 무너진 대외신뢰도…"10척 인도 못했는데 누가 일감주나"

하청지회는 이번 사태 이전에도 지난해부터 4차례나 독을 점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지난해 4월 7일 대우조선해양 1독을 점거했고 올해 들어서도 지난 4월 두 차례, 5월 한 차례씩 2독을 점거했다고 한다.

이들은 건조의 핵심 장소인 도크를 무단 점거해 생산 자체를 중단시키면서 회사에 대규모 손실을 초래하는 방식으로 협상력을 높이는 동시에 일종의 '끝장 농성'을 펼쳤다.

과거에 원청 노조의 파업 때는 크레인만 점거해 선박 건조에는 무리가 없었기 때문에 타격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유독 80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손실을 입은 것도 노조의 이같은 농성 행태 탓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하청노조의 이번 불법 점거 행태는 그간 일반적인 파업과 결이 달랐다는 점에서 다른 조선업체들도 긴장하고 있다.

대우조선의 글로벌 신뢰도는 이번 사태로 완전히 금이 갔다. 대우조선이 선주에게 넘기지 못한 선박은 11척에 달한다.

단순히 보면 선박 인도지연으로 인한 손실이지만 우리나라 조선업 전체의 신뢰도도 타격을 입은 것이다. 한국 조선업이 정확한 납기 준수로 지금껏 고객들과 쌓아온 신뢰에 금이 간 것은 가장 큰 손실이다

관련업계 관계자는 "10척이 넘는 선박을 제때 넘기지 못한 조선사에 일감을 주는 게 쉽겠나"라며 "노조 리스크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상존하는 상황에서 어느 조선사나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질병' 원·하청 노동구조는 여전…저임금 해결도 과제

원청과 하청이 얽힌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노동구조가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그간 2차, 3차 하도급을 주는 국내 산업구조와 맞물려 하청업체들이 조선업 불황 기간에 저가 수주로 인한 비용 부담의 상당 부분을 떠안았다.

원청은 하청에 이른바 '단가 후려치기'로 비용 부담을 떠넘기고, 하청업체가 다시 2차, 3차 재하도급 업체에 부담을 넘기면서 인건비가 쪼그라들었다는 것이다.

대형 조선소들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인건비 절감 등을 위해 사내하청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조선업체들은 인력난이 심해지자 다단계 하도급까지 활용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조선업 하도급은 '원청 조선소→1차 하청업체(사내하청 혹은 사외협력업체)→물량팀(하청의 하청)' 구조다. 1차 하청업체를 구하기 어려워지자 물량팀, 알바천국 등에서 인력을 모아 조선소에 공급하는 아웃소싱 업체들이 덩달아 늘어났다.

조선하청지회 관계자는 "6~7년째 이어지는 저임금 상황과 조선업 원·하청 구조의 본질적인 문제를 정부에서도 정확하게 인지해야 한다"며 "아직은 못느끼겠지만 이런 구조 탓에 고용의 질은 악화되고 현장사고로 이어지고 건조된 배의 퀄리티도 하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m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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