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방향성 제시했으나 막연하고 비현실적, 국제규범과 상충 가능성[외교부 업무보고 뜯어보기]

유신모 기자 2022. 7. 2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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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김성한 국가안보실장과 김대기 비서실장이 배석한 가운데 박진 외교부 장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외교부가 지난 21일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첫번째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주요국과의 관계발전 전략과 북핵 문제 대처 방안, 경제안보 전략 등 7개 핵심분야에 대한 추진 계획을 설명했다. 한국 외교에서는 계획보다는 실행 능력과 변화하는 상황에 대한 판단과 대처가 훨씬 중요한 요소다. 그럼에도 계획을 설정한다는 것은 지향하는 원칙과 방향을 정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업무보고 내용은 구체적인 이행 방안에 대한 설명없이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비슷한 수준의 립서비스가 많아 “막연하고 공허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외교부는 이번 업무보고 내용이 ‘윤석열 정부의 국정비전과 외교 분야 국정과제에 맞춰’ 작성됐다고 밝혔다.

■구체적 전략 없는 원칙론

윤석열 정부의 대외전략 중심축은 한·미 동맹이다. 이번 업무보고에서도 ‘한·미 포괄적동맹 강화’를 강조하고 미·중 전략경쟁에서 미국을 적극 지지하는 정책적 방향이 선명히 드러나 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 이후 지금까지 보여준 대외 행보와도 일치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같은 기본 방향에 대해 긍정 평가를 하면서도 한·미 밀착에 대한 반작용으로 초래될 수 있는 ‘중국 리스크’를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해왔다. 하지만 외교부 업무보고에서는 이에 대한 설명이 없다. 중국과 고위급 소통을 통해 실질협력을 확대하고 안정적으로 관계를 관리한다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도 보고 뒤 언론 브리핑에서 “중국이 오해하지 않도록 적극적인 외교 노력을 하겠다”고 언급하는데 그쳤다.

외교부는 또 북한 비핵화를 위한 ‘담대한 계획’을 내세웠으나 이 역시 구체적인 설명이 결여돼 있다. 전략적 이유를 감안한다고 해도 최소한 무엇이 담대하다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보이지 않는다. 외교부가 에둘러 설명한 내용은 결국 구호로 끝난 이명박 정부 시절 ‘비핵·개방 3000’과 유사해 보인다. 비핵·개방 3000이 실패한 원인 분석이나 실패 반복 방지를 위해 무엇을 보완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22일 통일부 업무보고 이후 권영세 장관은 “경제적·안보적·종합적 차원의 상호단계 조치를 포괄적으로 담는 방안”이라는 점에서 담대하고 새로운 접근법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북핵 협상은 초기부터 경제지원과 안전보장, 평화체제 등을 포괄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왔기 때문에 권 장관의 발언은 새롭게 들리지 않는다. 통일부는 또 안보 문제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비핵·개방 3000과 다르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비핵·개방 3000과의 유사성을 지적한 것은 현실적인 방법론이 결여됐음을 말하는 것이지 구성 내용이 같다고 말한 것이 아니므로 충분한 설명이 되기 어렵다.

■개념 모호한 남북미 연락사무소

대선 후보 시절 ‘문제있는 공약’으로 지적받았던 남·북·미 연락사무소 설치는 이번 업무보고 내용에 그대로 포함됐다. 연락사무소(Liaison Office)는 양자 간 외교관계가 수립되기 전에 상대국 수도에 임시로 설치하는 대표부의 성격이다. 그런데 남북미 3국의 연락사무소는 누가 무엇을 대표하는지, 어떻게 운용되는지 등이 모호한 외교적으로 전례가 없는 형태다.

특히 남북은 이미 합의에 따라 공동연락사무소를 설치한 바 있다. 하지만 남북미 연락사무소가 설립되면 남북간 합의는 어떻게 되는지, 북한이 폭파한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또한 남북미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장소도 문제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판문점에 설치하겠다는 뜻을 보인 적이 있다. 하지만 판문점은 남과 북의 경계가 뚜렷하게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판문점 어디에 둘 것인지가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

외교부의 설명대로라면 남북미 연락사무소는 사실상 한반도 현안을 논의하는 상설 안보협의 채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의미라면 연락사무소라는 명칭은 적합하지 않다. 또한 현재의 한반도 정세는 이런 문제를 논의할 상황이 아니며 연락사무소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산적해 있다는 점에서 이같은 추진 계획은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실효성 의문인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외교부는 지역별 협력 네트워크 구축 방안의 하나로 ‘한국적 인도·태평양 전략 수립’을 내세웠다. 한국의 인·태 전략은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처음 소개된 개념이다. 당시 대통령실은 “한국적 인·태 전략을 구체화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인·태 전략은 미중 전략경쟁과 직접 연관된 사안이다. 미국은 인도양과 태평양을 전략적으로 연결해 중국의 공격적인 해양 진출을 견제하려 한다. 문재인 정부는 이 때문에 미국의 인·태 전략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아세안 국가들과 협력 강화를 목표로한 ‘신남방 정책’과 미국의 인·태 전략을 연계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외교부가 이번에 ‘한국의 인·태 전략’을 수립하겠다고 밝힌 것은 미국과의 접점을 넓히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한·미 동맹의 역할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를 넘어 인·태 지역으로 확대되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서 충돌이 불가피한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부담도 안아야 한다. 특히 외교부가 ‘가치와 규범 및 상호이익에 기반한 인·태 전략’이라고 명시한 것은 미국의 전략에 적극 호응하겠다는 의미이지만, 아세안 국가들과의 외교에서 가치와 규범을 내세우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 있다. 아세안 국가 중에는 확립된 민주주의 기반이 미약한 나라가 많고 체제 자체가 다른 나라들도 많기 때문에 가치와 규범을 표방한 아세안 외교가 상호 이익을 증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제규범과 결이 다른 개발협력 계획

외교부는 업무보고에서 ‘글로벌 가치 실현을 위한 국제개발협력’을 강조했다. 또 이에 대한 세부전략으로 ‘대외전략과 연계한 ODA(공적개발원조) 정책 추진’을 공언했다. 하지만 이같은 목표는 국제개발협력의 지향점과 국제규범에 맞지 않는다.

국제개발협력은 새천년개발목표(MDG’s)에 이어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좌표로 하고 있다. 모든 형태의 빈곤을 근절하고 보편적 평화를 증진함으로써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향하는 것이 개발협력의 국제적 규범으로 자리잡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으로서 선진적 개발협력을 지향하는 한국이 ODA를 대외전략과 연계해 확대하겠다고 명시한 것은 ODA 지원과 개발협력을 국가 전략과 외교의 수단으로 활용하겠다고 공언한 것이어서 국제적 흐름에 역행할뿐 아니라 국제적 비판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유신모 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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