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하청 51일 만에 파업 풀지만..활짝 웃을 수 없는 '합의안'
임금 인상안 후퇴..사측 뜻대로 4.5%
손배소 등 민·형사상 면책 추후 협의
임금·처우 별도 논의 효과도 미지수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조선하청지회)가 하청사 교섭단인 ‘사내협력회사협의회’와 22일 임금협상 합의안을 타결했다. 이로써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은 51일만에 막을 내렸다.
임금교섭 진행은 대우조선해양 원청업체 노사도 참여해 4자간 틀로 운영됐지만, 정작 합의안에 원청은 담기지 않았다. 대우조선해양 대주주인 산업은행도 빠졌다. 그간 조선하청지회는 “산업은행과 원청의 적극적인 문제해결”을 주문해 왔었다. 그러나 이번 합의안의 협상주체는 하청업체들로 한정했다.
파업의 주된 이유였던 임금인상은 올해 4.5% 인상으로 합의했다. 조선지회하청이 주장한 임금의 원상회복(30% 인상)에서 두 차례 수정해 10%를 제시했고 다시 또 후퇴했다. 4.5%는 사측이 최초로 제시한 안이다.
조선하청지회는 지난 5년간 삭감된 임금의 원상회복과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며 지난달 2일부터 파업에 들어갔지만 지난 15일에서야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다. 조선하청지회는 “이달 23일 휴가 시작 전에 문제해결을 위해 대화와 협상에 나서달라”고 요구했다. 22일 임금협상이 타결되면서 주말을 넘기지 않게 됐지만, 당초 노조가 주장한 임금 원상회복은 관철시키지 못했다. 손해배상 등의 민·형사상 면책도 추후 협의로 미루면서 갈등의 불씨를 남겼다.
조선하청지회와 사내협력회사협의회는 별도의 팀을 꾸려 하청노동자들의 임금과 처우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원청과 산업은행이 합의안 주체에서 빠지면서 향후 제대로 된 논의가 진행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하청업체는 원청에게서 받는 도급비(기성금)를 근거로 하청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주기 때문에 원청의 의지와 책임도 뒤따라야 한다. 하청사와만 논의가 진행될 경우 근본적인 개선을 도출하는게 쉽지 않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이 지난해부터 1년여간 하청업체들과 임금·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을 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원청 역시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승인을 해주지 않으면 대금 집행을 할 수 없다. 만약 별도로 꾸린 팀에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경우 하청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언제든 다시 터져 나올 수 있다.
다단계 하청구조 속 고질적인 저임금과 고용불안 문제는 숙제로 계속 남았다. 이번 파업은 조선업이 불황일 때마다 임금 삭감과 대량해고 등 반복된 피해로 벼랑 끝에 내몰린 하청노동자들이 “이를 원상복귀 해달라. 이렇게 살 순 없다”고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대형조선소들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인건비 절감 등을 위해 사내하청을 적극 이용하기 시작했다. 2015년 사내하청 노동자가 원청의 4배를 넘었고 현재는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경우 약 70% 정도가 하청노동자다.
지난 정권에서 고용노동부는 조선산업 활력제고 방안을 세우고 조선업의 재하도급 고용구조 개선을 당부하고 나섰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이 문제는 고려하지 않은 채 ‘노사문제’로 선을 그으며 연일 ‘불법’만 언급했다. 조선업 다단계 하도급의 일반적인 구조는 ‘원청 조선소 → 1차 하청업체(사내하청 혹은 (사외)협력업체) → 물량팀장 →물량팀원’이다. 원청 조선소가 특정 업무를 1차 하청업체에 내려주고, 1차 하청업체는 작업기간 단축 등을 위해 공정별로 2차 재하도급 물량팀을 투입하는 식이다. 이 구조에서 위험한 업무는 사내하청 등 외주로 떠밀린다. 20~30년 경력을 가진 숙련노동자도 최저임금 수준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여기에 조선산업 침체까지 겹치면서 지난 5~6년 동안 일터를 떠난 하청노동자만 7만6000명이다.
이번 파업을 마무리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된 ‘손해배상 면책’ 문제를 추후 합의하기로 한 부분 역시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원청에 이어 하청업체까지 손해배상을 청구할 경우 농성장에서 일터로 복귀한 노동자들은 또 다른 고통을 짊어질 수밖에 없다. 노동전문가들은 “쟁의행위 등 노동3권을 헌법으로 보장하면서도 ‘일정한 요건’에 따라 파업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법원의 해석이 지나치다”는 지적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윤석열 정부와 경영계가 ‘엄정한 법집행을 통한 산업현장의 법치주의 확립’을 내세우는 상황에서 손해배상을 둘러싼 갈등은 앞으로도 파업의 평화적 해결에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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