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뒤흔들었던 '버닝썬' 사건 계기로..마약 콕 집어내는 진단키트 개발 중이죠
한국인 최초로 유엔 마약범죄사무소(유엔ODC)의 국제 과학수사 전문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희선 성균관대 석좌교수는 국제사회에서 손꼽히는 '마약 전문가'다. 현재 정 석좌교수와 같은 유엔ODC의 자문위원은 미국·영국·캐나다·브라질까지 5개국에서만 참여하고 있을 정도다. 국내 과학수사의 최전선인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서 4년 동안이나 수장을 지내고, 일평생을 마약 연구에 매진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1980년대 국내 최초로 소변에서 필로폰 성분을 검출하는 기술을 도입했고, 이제는 누구나 쉽게 마약 성분을 검사할 수 있는 '마약 리트머스시험지'를 개발하고 있다는 그에게 마약 범죄와 과학수사의 과거와 미래를 들었다.
▷쉽게 말하면 유엔 회원국들의 마약 진단 검사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테스트해 상대적으로 더 나은 국가들이 그렇지 못한 국가들을 도울 수 있도록 연계해주는 일을 한다. 유엔 회원국들의 전 세계 200~300개 실험실에 테스트용 물질을 보내고, 실험실마다 그게 무슨 물질인지 검출해 응답하면 자문위원들이 수준을 파악해 돕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진단 수준이 낮은 어떤 나라가 프랑스어 문화권이라면, 프랑스어를 쓰는 숙련된 과학자를 파견해 돕도록 한다. 또 실험실에 보내는 '시험 문제'가 틀리지 않도록 피드백을 거쳐 발전시키기도 한다. 매년 11월 오스트리아 빈에 모여 회의를 한다. 유엔 대표부 3~4명과 한국·미국·영국·캐나다·브라질 등 5개국 정도만이 참여하는 전문성 있는 자리다.
―어떻게 참여하게 된 건가.
▷전 세계 독성 물질을 연구하는 국제법독성학회(TIAFT)에서 활동하고 회장까지 하면서 유엔과 오랫동안 일을 함께해왔다. 유엔에서도 특정 마약이 어느 나라에서 만들어져 유통된 것인지를 파악해야 했는데, 내가 그 일을 도와주면서 교류하게 됐다. 결정적인 건 '신종 마약'이 여럿 생기면서다. 유엔에서 신종 마약에 대한 회의를 열며 지역별 대표 전문가를 초청했는데, 내가 그중 한 명으로 들어갔다. 관련 학회 회장을 하면서 갖춘 전문지식이나 인적 인프라스트럭처 등을 공유하다가 2019년 10월에 자문위원으로 위촉됐다. 2년 임기를 마치고 지난해에 재위촉돼 2023년까지 직을 수행할 예정이다.
―TIAFT 아시아인 최초 회장, 국제법과학회(IAFS) 최초 여성 회장을 지내는 등 학회 활동에도 열정적이다.
▷TIAFT가 국내에 처음 들어온 게 1990년인데, 당시 학회장이 한국에 들어와 우연히 알게 돼 학회에 참석해보니 정말 유익해 정신이 확 들었다. 예를 들어 필로폰 검출을 위해 혈액을 채취할 때 한국은 심장에서 채취하는데, 외국은 대퇴부에서 채취한다는 걸 알게 되는 등 국제 표준을 배우는 기회가 됐다. 그런 학회가 있는지조차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다. 나중에는 휴가를 내고 참석할 정도였다. 그러면서 차츰 관계자들과 네트워크가 생기고, 임원진에 참여하게 되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결국 회장도 했다. 후배들에게도 일찍이 학회에 참여하면서 외국 연구진과 교류하고 지내길 권하고 있다. 오랫동안 교류하고 함께 공부해야 기회가 생긴다.
―한국의 마약 검사·수사 수준은 국제적으로 어느 정도인가.
▷굉장히 수준이 높고, 못하는 검사는 거의 없다. 모발에 있는 나노그램 단위의 다양한 신종 마약까지 검출할 수 있다. 나라별로 경쟁력이 있는 마약 종류가 다 다르다. 우리는 필로폰 쪽에 특히 강점이 있다. 다만 한국은 정보를 입수하고 약물을 분석해 마약사범을 검거하는 수사 능력은 뛰어나지만, 마약 복용을 예방하고, 복용자를 치료해 사회로 복귀시키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하다. 마약 중독은 끊기가 어렵고, 치료도 오래 걸려 당사자의 주변 사람들도 힘들어한다. 마약을 복용한 사람을 너무 범죄자로만 보면 그들이 치료받고 사회로 돌아가기 어렵다. 한국의 마약 재범률이 높은 것은 치료가 잘 안 된다는 증거다.
―마약 검사 수준이 낙후된 지역은 다른 나라들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나.
▷특히 아프리카 국가들이 물자가 부족하다. 몇억 원씩 하는 장비들이 있어야 하는데 자체적으로는 해결이 어렵다. 그런 문제까지 해결하기 위해 우리 연구팀이 일종의 '마약 리트머스시험지'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코로나19도 유전자증폭(PCR) 검사가 정확하지만 자가진단키트로 빠르게 검사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마약 진단장비까지 가져가기 전에 휴대용 장비를 통해 물이나 술에 마약이 들어 있는지 검사해볼 수 있는 거다. 이건 사실 '버닝썬' 사건을 계기로 경찰청과 함께 시작한 과제다. 클럽에서 이른바 '물뽕'이라고 하는 마약을 몰래 먹이는 일이 문제가 됐는데, 이 기술이 개발되면 확실하진 않더라도 그 자리에서 나를 방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경찰 수사에서도 신속하게 판단할 수 있다. 대략 16가지 정도의 주요 마약류를 검사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데, 절반 정도는 진행됐고 연말까지 마무리하는 게 목표다.
―한국이 '마약 청정국'으로 불렸는데, 이제는 그렇지도 않다는 말이 나온다.
▷전체 인구 대비 비율로 보면 그래도 굉장히 안전한 편이다. 미국은 펜타닐이라는 아편계 마약 때문에 1년에 수만 명이 사망한다. 마약 때문에 5분에 1명꼴로 사망하는 수준이다. 한국이나 일본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편이고, 일본보다도 한국이 더 마약 사건이 적다. 다만 마약이 없어지진 않을 것 같다. 우리가 모르던 신종 마약 종류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식용 게 또는 배드민턴 셔틀콕 등 기상천외한 곳에 숨겨 들여온다. 요즘은 다크웹을 통해 유통되기도 해 쉽게 마약 유통이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
▷약대생 시절 당시 국과수 소장님 강연을 들었는데 정말 멋지게 느껴졌다. 학문적으로 연구해 진실을 찾아가고 사건을 해결한다는 것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 시절에는 약대를 졸업하면 취직할 수 있는 다른 자리가 많았다 "(국과수에) 들어가봤자 시체밖에 없는데 거길 왜 가냐"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국과수를 선택했다. 각자의 전공에 맞게 담당 분야가 정해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약독물을 분석하는 부서에서 일하게 됐다.
―국과수 업무에 적응은 어렵지 않았나.
▷그 당시는 사회가 더 보수적이던 때라 여성이 할 수 있는 업무와 승진에 막힘이 많았다. 국과수 면접에서도 "3년은 버틸 수 있겠냐"는 질문을 받았을 정도다. 연차가 더 낮은 남성 직원이 있어도 항상 내가 상급자에게 커피를 타드려야 했고, 실험용기를 하루에 100번씩 닦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에 5급으로의 승진에서 두 번이나 떨어지고 국과수에 사표를 쓸 생각도 했다. 연거푸 승진에서 밀리니 "내가 필요 없다면 나도 여기 있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 필로폰 마약을 복용한 사람을 대상으로 소변에서 성분을 검출하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당시 한국은 사람 대상 실험은커녕 마약 분말을 두고 그게 실제 마약인지 아닌지 실험하던 수준이었다. 여러 차례 실험을 거쳐 소변 검사 실험법을 만들었는데 88올림픽을 기점으로 부산·마산·창원 지역에서 마약사범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사표를 낼 생각으로 출근을 하다가도, 아침마다 비행기를 타고 와서 실험을 기다리던 경찰들을 보면 일을 팽개치지 못하겠더라. 그렇게 일을 더 하다가 사표 제출 시기를 놓쳤다. 다행히 그 이후로는 승진이 매번 바로 돼서 원장까지 지내게 됐다. 소변 덕분에 일을 오래했다는 생각도 든다. 결국 국과수 소장을 지내면서 '연구소'가 '연구원'으로 승격돼 소장과 원장을 각 2년씩 총 4년 동안 했다.
―마약 수사를 하면서 어떤 사건이 가장 인상적이었나
▷페루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한국 항공기를 타고 홍콩으로 향하던 마약 밀반입자가 사망한 사건이 있다. 어느 날 부검을 하러 가니까 배 속에서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검은 덩어리가 줄줄이 115개가 나왔다. 배 속에 마약을 담고 운반하는 이런 사람들을 '보디 패커'라고 부른다. 공항 검색대에 걸리지 않으려고 마약봉지를 검게 칠해서 삼키고 나른 뒤 운반비를 받는 식이다. 그런데 비행기 안에서 포장이 터져 고통을 호소했고, 치료도 못한 채 사망했다. 위부터 대장까지 검은 마약봉지가 줄줄이 들어 있었는데, 부검에 들어가 이런 장면을 보는 게 늘 어려웠다.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또 있나.
▷과학수사 박물관을 만들어 어린아이들에게 과학의 재미를 알려주는 게 꿈이다. 아이들이 학교 끝나면 체험학습을 하면서 거짓말 탐지기나 지문 검사를 직접 해보면 흥미가 더 생길 것이다. 지금 대학교에서 대학원생들을 지도하고 있는데, 다 졸업시키고 나면 도전해보고 싶다. 어린 학생들에게 과학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국과수 최초 여성소장
원 승격후엔 초대원장
1955년 출생. 1978년 숙명여대 약학과 졸업 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들어갔다. 숙명여대에서 약학박사를 취득했고 영국 킹스칼리지 박사후과정을 수료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11대 소장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초대 원장을 지냈다. 국제법과학회 회장, 국제법독성학회 회장을 지냈고 유엔 마약범죄사무소 국제 과학수사 자문위원이다. 성균관대 과학수사학과 석좌교수로 있다.
[박홍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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