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 인도 할머니, 75년 만에 파키스탄 고향 집 방문

김태훈 2022. 7. 2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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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인도·파키스탄 분리 직전 '파→印' 이동
국경 닫히며 인도 주저앉아.. 실향민으로 살아
SNS에 사연 알려지며 파키스탄 허가로 고향行
"옛집 고스란히.. 평생 기다려온 보람 있네요"

이산가족과 실향민이 한반도에만 있는 건 아니다. 영국 식민지 시절엔 한 나라처럼 여겨지다가 독립하며 둘로 갈라진 인도·파키스탄에도 이산가족이 있어 수십년 만의 상봉 기사가 종종 세계적 토픽이 되곤 한다. 최근에는 90세의 인도 할머니가 무려 75년 만에 고향인 파키스탄의 한 마을을 방문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감동을 선사한다.

21일(현지시간) 영국 BBC에 따르면 인도 서부 마하라슈트라주(州)의 도시 푸네에 사는 ‘리나 바르마’란 이름의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파키스탄의 대도시 라왈핀디에서 살아왔다. 라왈핀디는 오늘날의 수도 이슬라마바드 건설이 완료된 1969년까지 파키스탄의 수도였던 곳으로, 오늘날에도 이 나라 육군사령부가 위치해 있는 등 군사적 요충으로 통한다. 2007년 12월 파키스탄 최초의 여성 총리였던 베나지르 부토가 암살당한 장소이기도 하다.
인도 국적의 리나 바르마(90) 할머니. 1947년 파키스탄을 떠나 인도로 간 뒤 75년 만에야 고향 땅을 밟았다. BBC 홈페이지
인도 및 파키스탄이 모두 영국 식민지이던 시절 라왈핀디에서 태어난 리나 할머니는 1947년 가족과 함께 오늘날의 인도 지역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불과 몇 주 뒤 힌두교를 믿는 이들이 많은 지역은 인도, 이슬람교가 대세인 지역은 파키스탄으로 각각 독립했다. 곧바로 파키스탄에 살던 힌두교 신도들은 인도로, 인도에 살던 이슬람 신자들은 파키스탄으로 각각 옮기는 ‘민족대이동’이 벌어졌다. 수백만명이 동시에 이주하는 와중에 대규모 충돌이 빚어졌고 이는 곧 끔찍한 유혈사태로 이어졌다. 결국 두 신생국은 서로를 맹비난하며 국경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리나 할머니와 가족은 졸지에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영토문제로 으르렁거리던 인도와 파키스탄은 독립 첫해인 1947년부터 시작해 1965년과 1971년 3차례 전쟁까지 치렀다. 심지어 서로를 겨냥해 핵무기를 만들기도 했다. 이런 적대적 관계 때문에 양국 국민은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여행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파키스탄을 떠난 후 74년이 지난 2021년 리나 할머니의 사연이 어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소개됐다. “아버지가 젊은 시절 힘들게 일하며 저축한 돈으로 지은 라왈핀디의 집이 지금도 남아 있는지 궁금하고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접한 두 나라 시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민간 차원에서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 일하는 ‘인도·파키스탄 문화유산 클럽’(India-Pakistan Heritage Club)이란 시민단체 소속 활동가들이 나섰다. 라왈핀디 거리에서 수소문을 한 끝에 리나 할머니가 어릴 때 살았던 그 집이 그대로 보존돼 있음을 확인했다.

이 소식을 들은 리나 할머니는 당장 달려가고 싶었지만 당시는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너무 많던 시절이라 해외여행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렇게 기다렸다가 코로나19가 누그러지고 일상회복이 시작된 올해 3월 인도에 주재하는 파키스탄 고등판무관실에 비자를 신청했다. 영연방 회원국인 인도와 파키스탄은 대사관 대신 그와 똑같은 기능을 갖는 고등판무관실을 두고 있다. 파키스탄 측은 처음엔 난색을 표했으나 리나 할머니가 이미 SNS에서 유명인이 된 터라 결국 비자를 내줬다.

올해 90세인 리나 할머니는 얼마 전 아들이 먼저 숨지는 슬픔을 겪었다. 여행이 미뤄지는 게 불가피했다. 이들 들어 고령의 몸으로 어렵게 가방을 꾸려 혼자 길을 나섰다. 지난 16일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에 입국했고 마침내 이날 라왈핀디의 옛 집에 도착했다. BBC는 “할머니의 사연을 잘 아는 기자들이 집 앞에 몰려들었다”며 “마을 사람들이 장미 꽃잎을 뿌리며 75년 만에 고향에 온 할머니를 환영했다”고 보도했다.
21일(현지시간) 파키스탄 라왈핀디에 있는 옛 집으로 75년 만에 돌아온 인도인 리나 바르마 할머니(왼쪽 두 번째)가 마을 주민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고 있다. BBC 홈페이지
리나 할머니는 취재진에게 “어릴 때와 비교해 달라진 게 거의 없다”며 “한때 이곳에서 보낸 아름다운 시절이 생각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그동안 하나둘 세상을 떠난 가족들이 떠올라 마음이 슬프다”면서도 “평생 기다려온 순간을 마주하게 돼 고맙다”고 덧붙였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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