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 사건' 전, 최소 260명 피 흘려..또 여자라서 죽었다
인하대 성폭력 피해자 사망 사건에서 다시 한번 드러난
한국 사회가 극단의 여성폭력을 대하는 민낯과 통념
작년 '친밀한 남성에 의해 죽거나 살해될 위험' 26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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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15일 새벽, 인천 미추홀구 인하대의 한 단과대학 건물 앞에서 학생 ㄱ씨가 피를 흘리며 쓰러진 채 발견됐다. 행인이 발견한 뒤 병원으로 옮겼으나, ㄱ씨는 숨졌다. 건물 3층에서 추락해 숨진 것으로 추정됐다. 계절학기 시험이 끝난 뒤 함께 술을 마셨던 동급생 ㄴ씨의 휴대전화가 근처에서 발견됐다. 경찰은 ㄱ씨를 성폭행한 뒤 숨지게 한 혐의(준간강치사)로 ㄴ씨를 긴급체포해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ㄴ씨는 7월17일 구속됐다.
이 사건이 7월15일 아침 처음 언론에 보도된 이후, 사건을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인 표현을 써가며 흥밋거리처럼 보도하는 일이 며칠 이어졌다. 발견 당시 ㄱ씨 상태를 ‘알몸’ ‘옷 벗은 채’ 등 제목으로 강조한 기사들이 쏟아져나왔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피해자 신상을 털거나,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2차 가해하는 게시글들이 올라왔다.
이 사건은 전형적인 여성살해 사건인 ‘페미사이드’(여성을 일컫는 라틴어 ‘femina’와 살인을 뜻하는 ‘homicide’의 합성어)에 해당한다. 2016년 서울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이후 여성들이 성폭력·살인 등 강력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구조적인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계속됐지만, 이번 사건을 대하는 언론과 사회의 태도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김다슬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정책팀장이 이번 사건 공론화 과정의 문제점 등을 짚는다. _편집자
2022년 7월15일,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이 한 대학교의 건물에서 추락해 숨졌다. 피해자와 같은 대학에 재학 중이던 가해자는 성범죄 혐의를 인정했으며, 현재 구속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언론은 이 사건을 ‘인하대 성폭력 사망사건’ ‘인하대 사망사건’ 등으로 칭하며 피해자가 발견된 당시의 상황과 수사 경과, 학교·정부의 반응 등을 앞다퉈 보도했다. 그리고 이 사건을 대하는 여러 사회 구성원의 반응은 한국 사회가 여성폭력을 대하는 민낯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먼저 언론은 또다시 성폭력 사건 보도의 기본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7월15일 오후 기준으로 관련 언론 보도를 분석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선정적 표현을 사용한 언론사가 60여 곳, 성차별적 표현을 사용한 언론사는 40여 곳이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일부 언론은 피해자를 ‘여대생’이라고 칭하며 피해자가 발견된 당시의 상황을 선정적으로 묘사하거나, 피해자가 발견된 장소에 남아 있는 혈흔 사진을 보도했다. 심지어 ‘성폭행 거부’라는 표현을 썼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기사를 수정한 일도 있었다.
보도윤리도 잊은, 언론의 선정적 보도
성폭력범죄에 대한 보도 기준이 없는 것도 아니다. 2012년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마련한 ‘성폭력범죄 보도 세부권고 기준’, 2018년 한국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가 제정한 ‘성폭력·성희롱 사건 보도 공감기준 및 실천요강’,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신문윤리 실천요강’ 등 성폭력범죄의 무분별한 보도 행태를 바로잡기 위한 각종 지침이 존재한다. 그러나 가부장적·남성중심적 문화와 사고방식이 공고한 사회에서 이런 보도윤리는 너무 쉽게 잊혔다. 성폭력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지 않고 피해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들여온 노력에 언론 스스로가 먹칠한 꼴이다.
또한 이 사건을 대하는 태도에서 한국 사회가 가진 여성폭력에 관한 통념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의 본질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며, 그 폭력의 극단적 형태인 ‘여성살해’ 혐의 또한 가지고 있지만 사건에 대한 일부 언론과 온라인 커뮤니티의 반응은 달랐다.
피해자가 충분히 ‘조심’했어야 했나
가장 먼저, 피해자가 충분히 ‘조심’했다면 성폭력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착각이 여전히 만연했다. 알려진 바로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 피해자와 가해자가 늦게까지 함께 술을 마셨고 피해자가 만취 상태였다고 한다. 이를 두고 기사 댓글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밤늦게까지’ ‘남성과 단둘이 술을 마신’ 피해자의 행동을 비난하고, 심지어 ‘뭔가를 유발할 만한 옷차림이 아니었냐’는 등 성폭력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기도 했다.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 스쿨 미투 등 분야를 막론하고 성폭력 문제가 드러날 때마다 여성들이 너무나 익숙하게 들어온 비난이다. 가해자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비정상적’ 사람일 것이라는 시각은 여성폭력을 특정 ‘개인’의 문제로 왜곡한다. 피해자뿐 아니라 가해자에 대한 신상정보까지 알아내는 데 몰두하는 이면에 가해자를 악마화하고자 하는 시선은 없는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사건을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인지하지 못하다보니, 사건의 원인 파악과 대책 마련도 빗나갈 수밖에 없다. ‘대학 내 음주문화가 문제’라는 주장은 논할 가치조차 없다. 교육부가 내놓은 재발 방지 대책 또한 캠퍼스 야간 출입 통제 강화와 순찰, 폐회로티브이(CCTV) 증설 등 ‘안전’의 관점으로만 접근했다. 이런 방식은 불평등한 성별 권력관계에 기반한 여성폭력사건의 핵심을 놓치는 일이다.
여성들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폭력범죄에 노출되고 살해당하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여성폭력과 여성살해의 심각성을 알리고 사회적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 해마다 언론에 보도된 여성살해 사건을 분석한 통계를 발표한다. 2021년에만 최소 260명의 여성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당하거나 살해될 위험에 처했다. 평균 1.4일에 1명꼴이다. 언론에 보도된 사건만 대상으로 했기에 최소한의 수치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정확한 여성살해 실태를 알지 못한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에서 세계의 살인범죄를 분석한 2019년 자료를 보면, 한국은 일본, 노르웨이, 체코, 슬로베니아, 스위스를 포함해 여성살해 피해자 비율이 남성보다 높은,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그러나 여성폭력과 여성살해 범죄에 대한 기본적인 국가 통계조차 마련되지 않은 국가다.
범죄로부터 사회구성원을 보호하고 인권을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 책무다. 피해자·가해자의 성별과 관계, 범죄 발생 뒤 검거, 수사, 사건처리 결과 등을 유기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국가 통계 시스템 구축을 시작으로 예외 없는 가해자 처벌, 빈틈없는 피해자 지원, 2차 피해 방지 체계 구축과 인식개선 등을 통해 여성폭력 범죄를 국가가 묵인하지 않음을 명확히 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 사법부 모두 공범
그런데도 대통령은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체계의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무고죄’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정치권은 여성혐오와 여성폭력 사건을 정쟁의 도구로 삼고 있다. 끊이지 않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살해의 진짜 이유는 외면한 채, 정부는 매번 비슷한 대책 발표만 되풀이한다. 사법부는 학내 성폭력 사건 가해자의 ‘장래’를 걱정하며 양형에 반영하는 등 여성폭력 범죄의 해결을 가로막는다. ‘여자라서 죽었다’는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의 외침이 2022년 인하대 사건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김다슬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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