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문법 박약한 尹대통령.."도어스테핑부터 '두손 모으고'"[한기호의 정치박박]
"前정권 훌륭한사람 봤나" "언론공격에 고생"
인사 논란에 불만, 문답 중단→재개 촌극까지
"노력" 피력해도..언론 뒤 국민은 '태도' 경고
"오만하면 국민이 내쳐" 정치신인 끝, 변화 보여야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수주째 '동네북'이 되고 있다. 언론계에선 '지지율 하락 여론조사가 나왔는데 하고 싶은 말 있느냐'고 여권 고위인사들에게 묻고 반응을 옮겨 적으며, 부족하다고 질책하는 패턴이다. 특히 월초부터 윤 대통령의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 약식 문답(도어스테핑)에까지 지지율 반응 떠보기가 '단골메뉴'로 올랐다. 여권 일각에선 지지율에 천착한 언론보도가 계속해서 하락을 견인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오지만, 언론을 탓하기 전에 국정 주체들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 답변 변천사가 도마위에 오르는 원인은 당연 본인에게 있다. 지난 4일 도어스테핑 당시 윤 대통령은 "저는 선거 때도, 선거운동을 하면서도 지지율은 별로 유념치 않았다. 별로 의미가 없다"는 말로 시작해 "오로지 국민만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한다는 그 마음만 갖고 있다"고 맺었다. 발언 당사자는 소위 '진정성'을 피력하는 후자 쪽에 무게를 실었을지 몰라도, 면전의 기자들은 "별로 의미가 없다"는 전자 발언에 '귀를 닫은 대통령'을 본 듯한 충격을 받고 기사에 반영할 수밖에 없어진다. 필자도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선 경선후보 시절인 지난해 10월 "무(無)정제" 발언, "'대충' 던진 한마디"로 인해 "캠프와 조력자들에게 열마디를 쏟아내게 만드는 패턴"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런 모습은 '대범'하지도 않고,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기자들을 수시로 마주치는 상황에까지 변화를 보이지 않은 건 '겸손'과 거리가 멀다.
언론계를 바라보는 '불편한' 속내를 여과 없이 드러낸 사례도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일 출근길에선 만취 음주운전 전력으로 구설에 오른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현재는 자진사퇴한 송옥렬·김승희 등 일부 장관 후보자를 '인사 실패'로 꼽는 질문에 "전(前) 정권 지명된 장관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는가"라고 반박했다. 5대·7대 인사 배제 원칙을 내세웠다가 '셀프 파기' 논란을 거듭했던 문재인 정권 시절 장관급 인사 면면을 떠올려보라는 것이겠다. 하지만 세부 기준 대신 '국민 눈높이'를 강조해온 윤석열 정부에서 빚는 '현재'의 인사 논란을 여론은 주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당일 박 부총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언론에, 또 야당에 공격받느라 고생 많이 했다"며 "소신껏 잘 하십시오"라고 말한 것은 인사 논란을 언론발(發) 시비 정도로 치부한 인상을 남긴다.
이후 빚어진 촌극도 있다. 대통령실은 지난 11일 코로나19 재확산을 이유로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 '잠정 중단'을 공지하고, 변명하듯 '풀 취재'와 '대변인 직접 브리핑'도 축소한다고 밝혔다. 출입기자단 일각에선 대변인실에 '기자들을 코로나 달고 다니는 사람으로 취급하냐'는 반발이 나왔다는 후문이다. 조치 배경을 두고도 도어스테핑 관련 구설, 인사 편중 또는 검증부실 논란, 나토 정상회의 순받 당시 민간인의 공군 1호기 동승 시비 등의 영향 아니냐는 해석이 주를 이뤘다. 그런데 바로 이튿날(12일) 윤 대통령이 기자단과 평소의 3배쯤 거리를 둔 채, 질답 요청에 "물어볼 거 있으면 물어보시라"고 입을 열면서 해프닝으로 일단락됐다. 여당 지도부에선 윤 대통령이 참모진의 도어스테핑 축소 건의를 일축하며 대국민 소통 노력을 해왔다며 "거칠고 약간의 실수도 있지만 넉넉하게 받아줘야 한다"고 했다.
다만 도어스테핑의 최종 청자(聽者)인 일반국민에게 '넉넉하게 받아줘야 한다'는 말이 통할지는 모르겠다. 그럴싸한 해몽 이전에 꿈부터 잘 꿔야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 19일 국정지지율이 30% 초반대까지 밀리고 부정평가가 높다는 여론조사 결과 관련 "원인은 언론이 잘 아시지 않습니까"라며 "그 원인을 잘 알면 어느 정부나 잘 해결했겠죠"라고 했다. 그러면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뿐"이라고 덧붙였다. 소통 상대를 여전히 눈앞의 '언론'으로 상정하고 그 뒤의 '국민'은 보이지 않는 듯한 언급이 반복됐다. 20일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윤석열 정부를 향한 숱한 비판을 쏟아냈는데, 각종 논란에 대한 윤 대통령의 '태도'를 '오만과 불통'으로 연결짓는 대목들은 야당에서 '여론 해설지'를 직접 보여준 것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윤 대통령뿐일까. 김건희 여사도 지난해 말 허위경력 기재 논란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시비 속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대국민 사과에 나섰으나 정권교체 이후 종횡무진 대외행보를 했다. 조기에 의혹을 털지 못할 거면 식언(食言)이라도 하지 말았어야 한다. 한때 김 여사 사진을 독점 공개하던 특정 팬클럽 회장까지 연일 정치권에 큰소리를 친다. 여당이 되자마자 결속은커녕 보신주의, 안하무인식 자기정치 구태로 돌아온 보수정당 유력인사들은 '최장 6개월 당 대표 직무대행'이란 전대미문 리더십을 초래해놓고 결론 없이 주판알 튕기는 소리만 요란하다. 윤 대통령 지인 아들의 대통령실 9급 행정요원 채용 시비 과정에서 '내가 압력' '강릉 촌놈' '최저 임금' 운운하다 불난 데 기름부은 권성동 대표 직무대행의 언행도, 소외된 대선 조력자들의 '여의도 옆 대나무숲' 외침과 '서초동 사람들' 간의 불협화음 조짐도 불안요소다.
정치평론가인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게 위기란 걸 대통령한테 직언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보인다"며 "국민들이 되게 이 정권이 오만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오만하다고 생각한 정권에 대해 지금까지 지지를 보이지 않고 아주 가차없이 내치는 게 우리 국민인데, (현 여권이) 그 금기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윤 대통령을 향해 "내가 조언한다면 걸음걸이부터 바꾸고, 건들거리지 말고, 도어스테핑 할 때는 반드시 두손 모으고 하시라고 할 거다. 기자들이 묻는 게 아니라 국민이 묻는 거라 생각해야 한다"며 "자꾸 이전 정권만 탓하는 것도 '정권 바뀌었는데 당신은 뭐 하고 있나', 자기가 더 낫다고 해도 국민 입장에선 오십보 백보"라고 쓴소리를 했다. 여당 구성원들에 대해서도 "과거부터도 지금도 다들 자기 정치적 이익에 따라서만 움직이니, 지금 국민을 위해서 하는 국정이 하나도 안 보인다는 게 국민의힘이란 보수정당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혹평했다.
한편 홍 교수는 이준석 당 대표에 대한 6개월 당원권 정지, 친윤(親윤석열)계 일각의 조기 전당대회 주장이 윤심(尹心)이 반영된 결과 아니냐는 일설에는 "윤 대통령은 검사출신이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밀어붙이는 사람이지, 기존 정치문법과 달리 무슨 권모술수를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며 "법적 해석으로 '사고'라 해서 징계 후 이 대표가 복귀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섰으면 그걸로 끝인 사람이다. 윤석열을 다들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와중 한 신문에서 보도된 윤 대통령의 "지지율 0%, 1%가 나와도 바로잡아야 할 것을 제대로 바로잡고 싶다"는 언급이 즉흥 문답으로 나온 발언들보단 그나마 낫다. '여의도 문법'을 깨고 정치 도전 최단기간에 대권을 거머쥔 윤 대통령이지만, 장(長)보다 단(短)이 부각될 때는 진지하게 온고지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국민 눈높이'도 더 이상 구호에 그쳐선 안 된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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