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텐/텐_철마산~천마산 종주] 우리는 전철 타고 야생으로 간다
진접역 2번출구로 나와 뒤돌아서니 '신도브래뉴' 아파트가 보였다. 옆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간 우리는 깜짝 놀랐다. 바로 앞에 등산로가 나타났다. "이렇게 가까울 수가!" 새 아파트들이 늘어선 사거리 한가운데 산으로 통하는 길목이라니. '이상한 나라'로 향하는 기분이었다.
남양주시 면적은 서울의 4분의 3 정도 된다. 상당히 넓은 지역이지만 진접선이 개통되기 전, 서울 사람들은 남양주의 덕소와 퇴계원 정도만 '음, 가깝네'로 인식했다. 그 외 진접을 포함한 남양주의 다른 도시들은 서울과 붙어 있어도 '너무 너무 먼 곳'이었다. '진접읍 금곡리'가 이 지역 원래 이름인데, 지금은 뒷부분 다 떼어내고 그냥 '진접'으로 통한다. 그러니 서울과 훨씬 가까워진 느낌! 역 주변은 신도시 분위기가 폴폴 풍겼다. 새 것들이 반짝반짝 우리를 맞았다. "오, 길 좋네." '새 동네'에 걸맞은 잘 닦인 등산로를 따라 우리는 신나게 철마산 정상으로 향했다.
등산로가 번쩍번쩍 닦여 있다. 길 잃을 가능성은 없지만 그래도 새 안내판이 수시로 나타난다. 안내판이 보일 때마다 우리는 늘 궁금해했다.
"도대체, 이 안내판은 누가 설치했을까? 꽤 힘들었을 것 같은데
2km가 지나자 경사가 급해졌다. 힘이 남아돈다고 여기서 빠르게 치고 올라갔다간 남은 구간에서 애를 먹을 수 있었다. 우리는 즐거운 백패킹을 위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 구간을 통과했다.
"철마산 정상에 올랐으니 이제 가면서 적당히 잘 만한 곳을 찾아보죠."
"무슨 소리야! 10km 지점까지는 가야 내일 편하지."
"음, 그럼 지금 시간이 오후 2시니까, 4시 30분까지 가보죠."
우리는 각자 의견을 내세우며 옥신각신했지만 마음은 편했다. 왜냐하면 이날의 가장 큰 고비라고 여겼던 철마산을 넘었기 때문이다. 근사한 야영지가 과연 있을지 관건이었다. 산행 정보를 얻기 위해 미리 인터넷을 뒤졌지만 이 구간에서 딱히 잘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우리는 좁다란 능선을 따라 3시간 정도 걸었다. 텐트 다섯 동을 칠 만한 사이트는 결국 나오지 않았다. 체력은 점점 떨어졌고, 우리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저기, 꽈라리봉만 넘으면 천마산이 바로예요. 지금 저 오르막을 오르기엔 많이 지쳤고, 꽈라리봉을 넘어도 좋은 자리가 있을지 확실하지 않으니 오늘 운행은 여기까지 하죠."
모두 수긍했다. 재빨리 텐트를 치고 안에 들어가니 빗방울이 떨어졌다. 운이 좋았다.
텐트 안에 들어가서 누웠다. 빗방울이 텐트를 두드리는 소리, 이름 모를 새가 우는 소리, 바람 소리 등 각종 소리들이 울렸다. 온 몸이 끈적거리고, 땀냄새와 발냄새가 진동하고, 피곤하고, 등 아래로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 같고, 살짝 추웠지만 머릿속에서는 '좋다'는 단어가 맴돌았다. 동시에 ''이게 왜 좋은 걸까?' 계속 생각했다.
"우리 이제 저녁 먹어야죠!"
30분쯤 누워 있다가 텐트 밖으로 나와 소리치니 모두 어기적어기적 기어 나왔다. 식단은 단출했다. 통조림햄, 비스킷, 햇반, 육포 같은 것들을 우리는 질겅질겅 씹었다. 당연히 포만감은 느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부족하다고 투정부리는 사람은 없었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편의점까지 뛰어서 왕복 3시간 정도 걸릴 테니까. 가위바위보 해서 진 사람이 다녀오자고 말하려다가 그만뒀다. 먹으면서 우리는 각자 하고 싶은 얘기를 했다. 맥락이 없어도 그런대로 즐겁게 대화가 이어졌다. 밤 9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고라니가 멧돼지에게나 어울릴 법한 목소리로 새벽까지 시끄럽게 떠드는 바람에 잠을 설쳤다.
다음날 오전 6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모두 일사불란하게 텐트를 접었다. '괄아리 고개'를 넘자 앞에 거대한 산이 나타났다.
"저길 또 올라가야 하는 거야?"
모두 걱정했다. 그냥 그대로 가는 방법밖에 없었으므로 우리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걸었다. 오진곤, 조서형, 임동진은 힘들다면서도 빠르게 올라갔다. 천천히 가자고 설득하기 위해 "어이~, 어이!" 외쳤지만 그들은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까지 가버렸다. 세 사람과 내 위치를 바꿀 수 있는 마법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드디어 오르막의 끝, 봉우리의 정상에 섰지만 바로 앞에 또다른 봉우리가 나타났다.
"저기가 천마산이군!"
입에서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 나왔다.
천마산에 도착했다. "음, 경치 좋네." 그뿐이었고 어서 빨리 내려가 시원한 막국수를 먹고 싶었다. 나무 데크와 계단이 쫙 깔려 있었다. '천마산역'이라고 표시된 안내판도 수시로 나타났다. 아무 걱정 없이 우리는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내려갔다. 하지만 하산길은 길었다. 그래서 지루했다. 지루한 기분이 전날의 좋았던 기억을 잡아먹는 것 같았다. 서둘러 천마산역 근처의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스타일 탐구
1박 2일 백패커들은 어떻게 입었을까?
임동진
상하의 모두 오름(ORUMM)을 입었다. 오름은 엄밀히 말하면 클라이밍용 의류다. 하지만 백패킹을 할 때도 유용한 질감이라 어느 때 입어도 괜찮다. 심지어 반바지는 평상시 입어도 될 정도로 디자인이 예쁘다. 그가 멘 배낭은 시에라디자인Sierra Design 제품으로 60L 용량이다. 이 배낭 역시 그는 등반용으로 쓰지만 백패킹용으로도 손색없다.
오진곤
모자와 상의는 오름, 하의는 수목(soomok). 신발은 대너(Danner), 앞에 두른 가방과 배낭은 코너트립(Cornertrip) 제품이다. 수목의 바지가 독특하다. 두툼한 허리밴드와 너풀너풀한 핏이 특히 그런데, 그는 등산할 때 이 바지를 자주 입는다. 대너 신발 역시 그가 아끼는 등산화다. 접지력이 좋고 가볍다. 배낭은 용량이 작아 보이지만 1박 2일 백패킹용으로 충분하다.
조서형
상의는 슬로우 포크(Slow poke), 하의는 아이니드새러데이(I Need Saturday), 양말은 히치(Hitch), 신발은 살로몬(Salomon). 그녀가 멘 배낭 클라우프Clouff는 프레임 백팩으로 62L용량이다. 프레임에 다양한 디자인의 주머니나 배낭을 취향에 맞게 바꿔서 달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배낭 자체가 무겁고 덩치가 크기 때문에 백패킹용으로는 불편하다고 했다.
이 집 괜찮음!
진접역 5번출구 앞 24시전주명가콩나물국밥 (031-574-1442)이 괜찮다. 콩나물국밥 가격(5,000원)이 저렴할 뿐만 아니라 맛도 좋다. 산행 전 든든하게 챙겨먹기 딱이다. 천마산역 근처 중국집 리하이(031-511-7333)의 냉짬뽕(1만 원)과 콩국수(9,000원) 추천.
산행길잡이
들머리와 날머리 양쪽 모두 4호선 진접역, 경춘선 천마산역과 매우 가깝다. 들머리는 진접역 2번출구로 나와 뒤돌아서면 보이는 신도브래뉴아파트 옆이고. 날머리는 천마산역을 가리키는 안내판을 그대로 따라가면 어려움 없이 찾을 수 있다. 철마산에서 천마산 방향의 종주는 고도가 점점 높아지는 코스다. 천마산에서 철마산으로 가는 게 더 편할 수 있다. 능선 중간에 널찍한 야영 터는 없다. 중간에 식수를 구할 곳도 없다. 식수는 한 사람당 2L 정도 준비하면 충분하다.
교통
4호선 진접행은 평일 출근시간엔 시간당 다섯 대 있다. 그 외에는 시간당 두 대꼴로 다닌다. 경춘선 천마산역에서 상봉, 청량리행 열차는 시간당 2~3회꼴로 운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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