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개미야 우냐?" 국민연금도 운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에게 올해 국민연금 운용수익 전망을 묻자 이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올해 코로나 버블 붕괴 등을 예측해 '한국의 닥터둠'으로 불린다. 김 교수는 유동성 장세가 펼쳐지면서 수익이 높았던 최근 몇 년과 달리 당분간 연기금 실적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민연금 36조2000억 원 손실
자산별로는 △국내주식(-7.52%) △해외주식(-6.03%) △국내채권(-4.20%) △해외채권(-0.65) 순으로 손실률이 높았다. 국민연금 측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통화긴축 가속화 우려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지정학적 이슈로 국내외 증시 변동성이 확대돼 수익률이 하락했다"는 입장이다. 대체투자 부문은 5.22% 수익을 냈는데 원/달러 환율 상승에 힘입은 바가 크다.손실을 본 종목들 역시 동학개미들과 비슷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십만전자'를 목전에 두며 동학개미 운동 열풍의 한가운데 있었다. 하지만 올해 '5만전자'까지 주가가 추락해 많은 개인투자자 속을 쓰리게 했다. 국민연금 역시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의 가치 감소분이 10조1260억 원으로 가장 컸다. SK하이닉스, '네카오'로 불리는 네이버와 카카오가 뒤를 이었다.
방탄소년단(BTS)의 그룹 활동 중단 이슈 등으로 지난해 대비 주가가 절반 수준까지 폭락한 하이브에도 투자한 국민연금은 6410억 원 손해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 하이브는 6월 14일 관련 소식이 전해지면서 다음 날 시가총액이 2조 원가량 증발했다. 이외에 지난해 8월 상장 이후 주가가 폭락한 게임회사 크래프톤에서도 보유 주식 가치가 8150억 원 상당 하락하는 손실을 봤다.
BTS 그룹 중단 이슈에 함께 울고…
다만 국민연금 수익률은 지수를 상회한 것으로 분석된다. 코스피가 4월 기준 지난해 대비 9.47% 하락하는 등 국민연금 손실률을 웃돌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한국 주식시장에서 벤치마크 대비 0.46%p 높은 수익을 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우량주를 잘 선별해 장기투자를 하다 보니 전반적으로 실적이 좋은 편"이라면서 "다만 투자 규모가 워낙 커 하락장이 예측되더라도 탄력적으로 매도하며 대응하기가 어려워 단기적으로는 손실을 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해외주식 역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국민연금의 해외주식 수익률은 29.77%로 총 수익을 크게 견인했다. '테슬라붐'이 이는 가운데 국민연금이 대규모 차익을 실현하면서 이득을 본 것이 도움이 됐다. 국민연금은 2014년 3분기에 테슬라 주식을 792만 달러(약 88억 원) 상당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는 지난해 3조 원대로 가치가 상승했다.
다만 올해 국민연금은 지난해와 같은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국민연금은 4월 기준 해외주식에서 -6.03% 손해를 봤다. 벤치마크 대비로도 -1.16%p 수익률이다. 이마저도 원화 약세 덕분에 손실액이 상당 부분 상쇄된 수치다. 달러 기준으로 산정할 경우 해외주식 수익률은 -12.25%로 떨어진다.
애플 선방했지만…
해외주식 부문 역시 손실액이 더 커졌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반기 인플레이션 완화가 기대돼 주식시장이 반등하고 있지만 4월에 비해 여전히 S&P500 등 주요 지수가 하락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다만 원/달러 환율이 꾸준히 상승한 만큼 지수 하락폭보다는 손실이 적을 것으로 분석된다. 원/달러 환율은 7월 21일 기준 지난해 대비 10.44% 상승했다.국민연금은 어떤 해외 기업에 투자했을까.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운용자산이 1억 달러(약 1300억 원)가 넘는 기관투자자나 헤지펀드는 직접 운용하는 종목 현황을 분기별로 공개하도록 의무화했다. 국민연금 역시 공개 대상으로 뉴욕증시에 상장된 469개 종목에 투자하고 있다.
애플은 -13.78% 하락해 주요 기업 중 하락폭이 가장 작았다. 다만 해당 종목들은 모두 국민연금이 장기투자 중인 종목으로, 보유가가 시장가보다 낮은 상태다. 지난해 대비 손실이 났을 뿐이다.
저출산-고령화 추세가 심화하면서 국민연금 고갈 시기는 나날이 당겨지고 있다. 국민연금연구원은 보험료율 추가 인상이 없을 경우 국민연금 기금이 2041년(1778조 원)을 기점으로 꺾이기 시작해 2057년 고갈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올해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수익률 부진이 뼈아픈 이유다. 감사원은 2015년 '국민연금 운용 및 경영관리 실태'를 발표하며 기금운용 수익률이 추정 수익률 대비 매년 1%p 낮으면 기금 소진 시점이 5년 단축되고, 2%p 낮으면 9년 단축된다고 분석한 바 있다.
향후 5년 목표 수익률 5.4% 설정
국민연금은 향후 5년간 목표 수익률도 5.4%로 설정하며 기금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민연금은 올해 전체 기금 중 16.3%를 한국주식에, 27.8%를 해외주식에 투자할 예정인데, 2026년까지 주식 투자 비중을 50%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특히 평균 수익률이 높은 해외주식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겠다는 방침이다. 2041년을 기점으로 보유 주식을 매도해가며 연금을 지급해야 하는 만큼 한국 주식시장에 끼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포석으로도 풀이된다. 반면 안전자산인 채권에 대한 투자 비중은 42.5%에서 35% 내외로 줄어들 전망이다.다만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영익 교수는 "장기적 관점에서 국민연금 수익률은 한국의 명목경제성장률보다 조금 높은 수준에서 형성돼왔다. 향후 한국의 명목경제성장률을 3%대라고 전망한다. 목표 수익률 5.4%를 달성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해외주식 투자를 늘려 이를 타개하려 한다지만 두고 봐야 한다"고 전망했다.
국내외 주식 및 채권에서 동시에 손실이 발생하는 특이 양상이 나타난 만큼 포트폴리오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방식으로는 변화하는 시장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연금학회장을 지낸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글로벌 금융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4년 동안 호황을 누렸고, 국민연금은 이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며 "지난 몇 년 같은 성장 추세가 끝없이 지속될 것이라 보기 어려운 만큼 포트폴리오 조정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채권 등 안전자산 비중을 높이는 등 '적극적 투자'에서 '방어적 투자'로 투자 기조를 전환할 필요성도 있다"고 말했다.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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