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27년간 호남 주민 기만했다"

박세준 기자 2022. 7. 2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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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국민의힘' 이정현

●정치 인생 내내 호남에서만 출마
●대통령비서실장 자리 마다하고 순천으로
●민주당 밀어줬지만 결과는 지역 소멸
●박근혜 석방 촉구 집회 나가지 않은 이유

"질 선거는 나가질 않습니다. 승산을 봤으니 도전했습니다"

18.81%. 20%도 득표하지 못하고 참패한 패자의 발언이다. 득표율에 비해 자신감이 과하다 싶은 생각이 들지만, 그가 출마한 지역을 보면 이 자신감이 납득이 된다. 국회의원부터 기초단체장까지 전부 더불어민주당이 독식한 전남. 보수 불모지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18.81%를 득표했다. 2000년대 이후 보수정당 전남지사 후보 중 최고 기록이다. 의미 있는 패배의 주인공은 이정현 전 의원. 고향인 곡성에서는 40.97%, 지역구이던 순천에서는 31.98%의 유권자가 그에게 표를 던졌다.

그는 "최근 5년 민주당은 여당이었고 전남은 민주당의 땅이었습니다. 전남도민이 원하는 정책을 충분히 펼 수 있었는데도 소홀했습니다"라며 "전남의 일자리는 늘지 않았고, 지역 소멸은 가속화됐습니다. 지금 전남에는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일하는 지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출마했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전남 보수의 희망이었다. 2014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출마해 순천·곡성 선거구에서 당선됐다. 보수정당 출신 정치인으로는 최초다. 이후 재선에 성공했다. 순천에 자리를 잡나 싶었지만 2017년 이후 사실상 정치권을 떠나 있었다. 국정농단 사태 후폭풍 때문이다.

이 전 의원 별명은 '박근혜의 남자'. 친박계 핵심이자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당대표였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의 탄핵과 함께 힘을 잃었다. 친박계 인사들을 대표해 새누리당을 떠나기도 했다. 그렇게 정치권에서 잊히나 싶던 그는 대선을 한 달 앞둔 2월 9일 국민의힘에 복당했다.

그러곤 험지인 전남에 다시 나섰다. 대선이 끝나자마자 전남지사 출마를 선언했다. 이 전 의원은 "민주당의 오만에서 승산을 읽었습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정현 전 의원이 6월 20일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충정로사옥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조영철 기자]

욕하며 명함 찢는 사람도…

5년간 정치를 떠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험지인 전남에 나서게 된 계기가 있나요.

"당연히 호남으로 가야죠. 정치 입문 이후 계속 호남 지역에서만 출마해 왔습니다."

이 전 의원은 1985년 민정당 구용상 전 전남지사(당시 국회의원) 비서로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1995년부터 줄곧 호남의 문을 두드렸다.

"매번 낙선이었죠, 당시 호남은 민주당 텃밭이었으니까요. 다른 당 명패를 들고는 당선이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유권자 분들 중에는 욕설을 하며 명함을 제 눈앞에서 찢는 분도 계셨습니다."

20년 가깝게 낙선만 했다. 1995년 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광주광역시의원에 낙선했으며 2004년 17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도 광주 서구을에 출사표를 던졌고 패장이 됐다.

주변에서 출마를 말리지는 않았나요.

"2004년 두 번째 출마했을 때 아버지와 장인어른이 말리신 적이 있습니다."

가족들이 직접 말렸네요.

"당시 상황이 무척 나빴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으로 야당이던 한나라당 성토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나라당이 불법 정치자금을 현금으로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민심은 그야말로 최악이었습니다."

그래도 선거를 완주했습니다.

"아내의 한 마디가 완주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내분이 뭐라고 했는데요.

"그만두면 '이정현은 힘들고 어려우면 포기하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남을 거라고 하더군요."

박근혜 만난 후 '수석 부대변인' 되다

2014년 7월 31일 전남 순천시 덕암동 역전시장에서 이정현 전 의원이 시민들에게 당선 인사를 하고 있다. [동아DB]
그 말에 자극 받은 건가요.

"아뇨. 아내에게 하소연했죠. 유권자들이 내 말을 들어주기만 하면 토론도 자신 있고, 연설도 자신 있는데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말이죠. 그랬더니 아내가 이렇게 답하더군요. 안 들으면 듣게 하고, 안 보면 보게 하라고요."

이 전 의원은 그 길로 방송국을 찾아갔다.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 '대장금'에 나오는 곤룡포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드라마에서 왕이 입던 옷을 입으면 유권자 눈을 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쉽게 드라마 소품을 빌리는 것은 실패했습니다. 빌려줄 수가 없다더군요. 그 길로 광주에서 가장 큰 웨딩홀에 찾아가 폐백용 의상을 빌렸습니다."

전략은 주효했다.

"특이한 옷을 입고 나가니 일단 사람이 모였습니다. 볼거리가 된 거죠. 날 선 눈빛만 보내던 유권자분들도 모였습니다. 막상 자리가 꾸려지니 당과 상관없이 이야기를 들어줬어요."

2004년 총선 광주 서구을에서 이 전 의원은 720표(1.06%)를 득표했다. 미미한 성과로 보이지만 이 선거를 계기로 이 전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을 만난다.

선거 직후 박 전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직접 찾아갔나요.

"박 전 대통령님 측에서 먼저 연락이 왔습니다. 선거 유세를 인상 깊게 봤다며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더라고요. 저는 기회다 싶었습니다."

나가서 무슨 이야기를 했어요.

"당시 박 전 대통령님이 한나라당 대표였습니다. '대표님 호남 포기를 포기해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시작으로 한나라당이 호남을 포기해선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왜 호남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까?

"호남을 포기하면 전국 정당이 아니라 영남 기반 정당이 됩니다. 전국 정당이 돼 대선에서 이기려면 호남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반응은?

"한참을 듣고는 '어쩜 이렇게 말씀을 잘하세요'라면서 웃으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날 저녁 당에서 수석부대변인으로 일해 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모든 것 내려놓고 다시 호남으로

당직자 중 한 명이던 그는 이 만남을 계기로 친박계 정치인이 됐다. 그 후 승승장구하는 듯 보였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당선했다. 19대 때는 다시 광주 서구을에 출마했으나 39.7%를 득표하고 낙선했다. 이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으로 일하다 2014년 순천·곡성 지역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청와대에서 수석으로 일했으니 2014년 보궐선거 때는 당이 적극적으로 지원했을 것 같습니다.

"당은 출마부터 막았습니다. 선거에 나가겠다고 사표를 냈는데 12일간 수리가 안 됐습니다. 김기춘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 저를 크게 꾸짖었습니다."

뭐라고 꾸짖던가요.

"‘내(김 비서실장)가 이 나이에 대통령을 끝까지 모시랴? 가만히 있으면 네(이 전 의원)가 비서실장도 할 텐데 험지 출마하겠다고 청와대 수석 사표를 내? 네가 제정신이냐?'라고 하셨죠. 워낙 친해 안타까운 마음에 하신 말씀이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리는데도 호남 출마를 고집한 이유는?

"인생의 기반이 호남이기 때문입니다. 호남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조금 과격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라며 "저는 민주당이 호남 주민을 기만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호남, 좌우의 날개로 날아야

왜 그렇게 생각해요.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호남 주민들은 민주당에 무조건적 지지를 보냈지만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비근한 예로 전남도가 2020년 유치에 실패한 방사광가속기 사업이 있습니다. 27만 개의 일자리가 생긴다는 말에 250만 주민 및 재경 향우회원들이 서명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런데도 유치에 실패했습니다. 방사광가속기는 경북 포항으로 갔습니다."

민주당이 안일해 유치에 실패했다?

"5월 전남지사 후보 토론회 때 민주당에 직접 물었습니다. 준비가 미비했냐고요.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럼 세력에서 밀렸다는 이야기인데 이것도 이해가 어렵습니다. 당시 대통령도 민주당 소속이고, 민주당은 국회 다수당이었습니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호남 사람이었습니다. 세력에서 밀렸다는 이야기는 어불성설입니다."

실수였을 수도 있죠.

"그렇게 보기에는 호남 지역 전체가 낙후됐습니다. 혹자는 호남을 농도라고 부릅니다. 농사를 짓는 지역이라는 의미죠. 그런데 이 농도에 농기계 공단이 하나 없습니다. 농약 공장도 하나 없습니다. 품종 연구소도 없고, 농축수산물 가공단지도 없습니다. 민주당이 조금이라도 호남 경제에 관심이 있었다면, 지금의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의원은 "전남도 마찬가지입니다. 27년간 민주당에 도정을 맡겼지만 지역은 계속 낙후됐습니다. 경쟁 정치 세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처럼 경쟁자가 있어야 정치가 발전하고 주민의 삶이 나아집니다."

그래서 호남이 국민의힘에도 기회를 줘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이번 선거를 치르며 변화 조짐을 봤습니다. 과거 호남 사람들은 민주당이라면 이유를 불문하고 지지했습니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다릅니다. 어떤 정치인의 정책이 삶에 도움이 되는지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국민의힘이든 민주당이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실력의 시대입니다. 유권자의 삶을 더 낫게 바꿔주는 정당과 정치인이 표를 얻게 될 것입니다. 국민의힘이 보수 색채를 내세우기 보다는 현실적 공약을 내놓고 이를 지키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호남도 민주당이 아니라 다른 정당에 기회를 줄 것입니다."

‘태극기'뿐 아니라 어떤 집회도 나가지 않아

그에게 호남 정치인이라는 명명 다음으로 중요한 키워드는 박 전 대통령이다. 그는 다른 친박계 정치인과 달리 박 전 대통령 석방 집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태극기 집회에 단 한 번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어떤 집회에도 참여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집회로 표를 모으는 것은 올바른 정치가 아닙니다. 촛불 집회로 표를 모아 당선한 문재인 대통령 집권기를 생각해 봅시다. 민주당은 상대방을 비방해 표를 얻었습니다. 정쟁에 집중하니 국민 삶에 대한 관심은 떨어졌습니다. 그만큼 나라 살림은 힘들어졌고 국민의 실망은 커졌습니다."

정쟁이 아니라 실력으로 지지자를 확보해야 한다는 말씀이네요.

"그렇습니다. 유권자들은 점차 당이 아니라 인물을 보고 선거에 나서고 있습니다. 대통령선거 결과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의힘은 유권자들이 왜 국민의힘에 표를 던졌는지 끝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국민의힘을 믿어준 유권자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다음 선거에서는 반드시 질 겁니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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