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만에 첫 공권력 투입? 시험대 오른 윤석열 정부
윤 대통령 "불법에 국민 용납하지 않을 것"
민노총 상급노조는 총파업 결의대회
주말 4자회담에서 극적 합의 가능성도
(시사저널=송응철 기자)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이하 하청지회)의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점거가 7월21일로 50일째를 맞았다. 사태 장기화 피해가 대우조선해양을 넘어 조선업과 지역경제로까지 확산할 조짐을 보이자 정부는 공권력 투입이라는 초강수를 꺼내 들었다. 하청지회도 다급해진 기색이 역력하다. 4자회담을 통한 협상에 속도를 내는 이유다.
정부는 7월18일 '대우조선해양 사태 관련 관계부처 합동 담화문'을 통해 "노사 간에 대화를 통해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지금과 같은 불법적인 점거농성을 지속한다면 정부도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21일로 50일째 "조선업·지역경제 피해 확산"
윤석열 대통령도 7월19일 제32회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불법적이고 위협적인 방식을 동원하는 것은 더 이상 국민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파업 장기화로 인한 피해가 임계점에 달했다는 판단에 공권력 투입을 검토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실제 대우조선해양은 하청지회의 1독 점거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하루 평균 추정 손실액은 130억원으로, 누계손실액은 이미 6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업계에서는 사태가 더 길어질 경우 조 단위 손실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사태가 분수령에 달하자 하청지회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는 7월20일 거제 대우조선해양에서 영·호남 조합원 4000여 명이 참석하는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었다. 투쟁 동력을 끌어올리는 한편, 정부의 공권력 투입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다. 금속노조는 공권력 투입 시 결의대회와 무관하게 즉시 파업에 돌입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노동계에 대한 정부의 공권력 투입은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3년 코레일 파업 당시가 마지막이다. 윤석열 정부가 공권력 투입이라는 카드를 검토한 것은 그동안 대우조선해양 원·하청 노사의 입장이 계속 평행선을 유지하며 사태가 장기화했기 때문이다.
하청지회는 올해 1월부터 대우조선해양에 임금 30% 인상과 노조 전임자 인정, 상여금 300% 인상, 집단교섭 등을 요구했다. 조선업 불황 당시 원청 직원 임금이 3% 깎일 때 하청 직원들은 30%를 삭감하며 위기 극복에 동참해온 만큼 이제는 임금이 정상화돼야 한다는 것이 노조 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은 교섭에 응하지 않았다. 원청이 하청의 근로조건에 개입하는 건 노동조합법상 불법이라는 이유에서다. 반면, 하청지회는 하청 직원 임금 정상화의 핵심은 원청의 기성금 인상이니만큼, 자신들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대우조선해양과 산업은행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국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하청지회는 지난 6월2일 파업에 나섰고, 수위 높은 투쟁을 진행했다. 유최안 부지회장은 1㎥ 철제 구조물에 들어간 뒤 출입구를 용접해 스스로를 가둔 채 투쟁을 벌였다. 다른 조합원들도 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선박 난간이나 산업은행 등에서 농성을 이어왔다.
대우조선해양과 협력사들은 노조의 실력행사에 거세게 반발했다. 박두선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7월 초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한 수사를 요청했다. 대우조선해양 임직원 30여 명은 7월1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시민 등 파업 중단 촉구 인간띠 잇기 행사
대우조선해양 협력사 대표들도 같은 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 전쟁기념관 앞에서 삭발식을 단행했고, 대우조선해양 임직원과 가족, 거제 시민 등 5000여 명은 7월14일 대우조선해양 정문부터 약 4.5km 구간에서 노조의 파업 중단을 촉구하는 인간띠 잇기 행사를 가졌다.
이런 가운데 7월16일 대우조선해양 내부에서는 사태 해결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기도 했다. 법원이 하청지회의 1독 점거가 정당한 쟁의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해 퇴거 결정을 내리면서다. 그러나 하청지회는 "사측이 요구를 들어줄 때까지 파업을 계속 이어갈 예정"이라며 법원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재 조선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공권력 투입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까지 확대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하청 노사와 금속노조 대우조선해양지회(대우조선해양 노조), 대우조선해양 등으로 구성된 4자회담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4자회담의 경과를 지켜본 뒤 공권력 투입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당초 4자회담에서 하청 노사는 임금 30% 인상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그러나 7월19일 사측과 노측이 각각 4.5%와 5%까지 입장차를 줄였다. 하청 노사는 노조가 요구한 '내년 1월1일부터 임금 10% 인상안'을 놓고 의견을 조율 중이다. 이 밖에 노조 전임자 지정 등의 요구사항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의견 교환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원·하청 노사는 대우조선해양이 2주간의 하계휴가에 돌입하는 7월25일 이전까지 협상을 마무리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이 기간에 조선소 내부 전면 보수가 계획돼 있기 때문이다. 그 이전까지 협상이 완료되지 않을 경우 별도의 보수 기간을 거치면서 조업 차질이나 작업자 휴업 등 추가 피해가 불가피해진다.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협상이 급물살을 탄 배경에 대해 업계에서는 4자회담 구성원 모두가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사측은 파업 장기화로 피해가 계속 늘고 있고, 노측은 공권력 투입이 가시화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속히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는 양측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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