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석레인저가떴다] 야생의 화원 품은 대덕산..하루 2000톤 뿜는 검룡소

신용석 기자 2022. 7. 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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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태백산국립공원② 두문동재~대덕산~검룡소 10.6km..오솔길 따라 '힐링'
고려의 충신 머물던 두문동재, 깊은 원시림, 서울의 '생명수', 肉山의 맛까지
금대봉에서 대덕산 가는 길의 초원과 능선. 해발 1300m를 넘나드는 시원한 숲길에서 갖가지 야생화를 만난다 © 뉴스1

(서울=뉴스1) 신용석 기자 = 기후변화에서 이제 기후위기라고 불러야 할 나날들이다. 유례없는 폭염과 코로나사태, 도시의 답답함을 피해 어디로 갈 것인가?

1200m급 고지에서 차를 내려 1400m급 고지대를 걷는 서늘한 길, 야생화 천지의 원시림, 오르막보다 내리막이 더 많고, 예약자만 가서 거리두기가 편안한 '언택트(untact)길'을 간다. 태백산국립공원의 북쪽 금대봉(1418m)~대덕산(1307m)으로 '들어가',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로 내려가는 트레킹이다.

우리나라 고산지대에 야생화 천국이 많은데, 금대봉~대덕산 일원은 그간 아는 사람만 가다가 입소문이 퍼지면서, '전국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으며 각광을 받고 있는 새로운 야생화 명소다. 이곳을 점봉산 곰배령과 비교하는 사람이 많다. 곰배령이 잘 가꾸어진 정원이라면, 금대봉~대덕산은 가꾸지 않은 야생의 화원이다.

금대봉~대덕산은 길 전체가 국립공원일 뿐 아니라, 주변으로 백두대간 마루금이 관통하고, 너른 고산지대에 우리나라 고유의 특산식물과 희귀생물이 많다. 그래서 아름다운 경관과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하루 입장객을 500명으로 제한한다. 4월20일부터 9월30일까지 국립공원공단 예약시스템(reservation.knps.or.kr)에서 탐방 전날 17시까지 예약하고, 당일 9시부터 15시까지 입장할 수 있다. 예약인원이 미달되면 당일 입장도 가능하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 두문동재~금대봉~분주령 4.6㎞ "시원한 숲길, 화려한 야생화, 깊은 원시림"

들머리는 태백시와 정선군의 경계인 두문동재(1268m)다. 고려가 멸망한 후 고려의 충신들이 삼척에 유배된 마지막 왕 공양왕을 보러 왔다가, 이 고개 밑에 터를 잡고 두문불출(杜門不出)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왜 여기서 머물렀을까? 이 일대의 시원한 기후와 아름다운 자연에 취해서 그러지 않았을까? 이 고개는 함백산의 만항재(1330m)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높은 '도로 고개'다. 밑에 터널이 뚫려 차량통행은 거의 없다.

금대봉의 태백기린초. 꽃 모양이 상상의 동물인 기린(麒麟)을 닮아서 이름을 지었다. 지혜와 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기린아(麒麟兒)라 부른다. 사진을 확대하면 꽃 밑에 긴알락꽃하늘소가 보인다 © 뉴스1

두문동재 탐방지원센터에서 예약확인을 하고 백두대간 숲길로 들어선다. 푹신하고 축축한 흙길이라 발 촉감이 부드럽다. 15분쯤 가면 대덕산과 금대봉 갈림길이 나온다. 금대봉(金臺峰)은 '신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고, 주변의 능선은 예전에 화전민들이 불을 놓고 바라보았다 해서 '불바래기'로 불렀다고 해설판에 쓰여있다.

완만한 오르막을 15분쯤 올라, 나무에 둘러싸여 전망은 없는 금대봉에 닿는다. 봉우리라기 보다는 작은 공터의 풀밭이다. 몇 개의 범꼬리와 기린초가 반겨주지만, '신들이 사는' 풍경을 기대했던 사람들이 서둘러 길을 재촉한다. 갈림길로 돌아 나가야 하는데, 시간 단축을 한다고 샛길로 직진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면 이 야생의 세계가 망가진다.

금대봉에서 내려와 대덕산으로 가며 만나는 풍경. 햇빛 쏟아지는 풀밭 사이로 사람 한 명만 지나갈 수 있는 오솔길이다. © 뉴스1
노루오줌. 뿌리 또는 줄기에서 노루오줌 냄새가 난다 © 뉴스1

갈림길로 돌아내려와 대덕산 방향으로 평탄한 흙길을 걷는다. 하늘의 반은 초록 나뭇잎들이 가리고, 나뭇가지 사이로 들어온 햇살이 바닥에 닿아 야생화들을 잠 깨운다. 길섶에서 꿩의다리, 노루오줌, 큰뱀무가 하늘거리고, 흙길 가장자리엔 보라색 꿀풀들이 길 앞잡이처럼 이어진다.

절로 흥이 나는 오솔길 끝에서 작은 언덕을 넘자 갑자기 전망이 탁 터지는 풍경과 맞닥뜨린다. 완만한 내리막 언덕에 넓은 풀밭이, 그 바깥에 초록 숲이, 그 뒤에 짙푸른 산능선이 여러 겹 펼쳐져 있고, 그 위에 새파란 하늘과 새하얀 뭉게구름이 투명한 지붕을 이루었다. 풀밭 사이 사이에서 하얀 까치수영, 노란 큰뱀무와 기린초, 분홍빛 둥근이질풀이 바람결에 살짝 흔들리는 모습을 보니, 이곳은 정말 신들의 정원이다! 마침 도착한 외국인 청년들이 "오 마이 갓!"하며 감탄하고, 그 와중에 "여긴 국립공원이야, 꽃을 꺾으면 안돼(…can't pick in National Park!)"라는 영어가 들린다.

까치수염. 기다랗게 휘어지는 하얀 꽃 모양이 까치와 수염을 닮아서 이름 지었다. 군락(떼)을 이루어 자란다 © 뉴스1
둥근이질풀. 설사를 하는 이질병의 치료에 쓰여서 이름 지었다. 이질풀보다 꽃이 크고 둥그런 둥근이질풀의 학명(Geraniun koreanum)에 코리아가 들어갔다. 우리나라에 많다는 의미다 © 뉴스1

나무데크를 지나자, 이번엔 컴컴한 원시림 숲이다. 공룡영화에 나오는 관중, 고비, 박새 등의 그늘식물들이 숲바닥에 가득하고, 공중에는 서있는 나무, 쓰러진 나무, 치솟는 덩굴식물들이 뒤엉켜 무질서하다. 좀 가다보니 멧돼지들이 숲바닥을 마구 파헤쳐 완전히 갈아엎은 흙투성이 비탈이 나온다. 무엇을 식사했을까?, 불과 10분 전쯤 파헤친 흔적이다. 어디선가 숨어서, 사람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닐까? 주변을 둘러보며 발걸음을 서두른다.

일본잎갈나무 숲길. 본래 있던 큰 나무들을 베어내고 심은 인공조림지. 태백산 본래의 자연림으로 복원시켜야 하지 않을까... 민족의 영산 태백산에 ‘일본’이름이 붙은 나무가 많다는 것도 께름칙하다 © 뉴스1

조금 더 가니, 이번엔 질서 있게 심어진 일본잎갈나무(낙엽송) 숲이 나온다. 그렇다면 이곳은 예전에 아름드리 나무들이 많았던 곳이다. 재목들을 다 베어내 반출하고, 일본잎갈나무를 심은 것이다. 인공조림지는 이 야생의 숲에서 경관적으로, 생태적으로 어울리지 않으니 점차적으로 자연림으로 바꾸어주는 조치가 필요하다. 햇빛 한 줌 들어오기 힘든 그늘숲에 주황색 하늘말나리가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한다. 어둠을 밝히는 별과 같다.

두문동재에서 출발한 지 2시간즈음 분주령(1065m)에 도착한다. 대덕산과 검룡소 갈림길인데, 예전에 넓었던 빈터가 완전히 쑥밭과 망초밭이 되어 다른 식물들이 들어올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좁은 공터를 차지한 단체탐방객들이 왁자지껄하며 막걸리 파티를 길게 하는 바람에 다른 탐방객들은 머물기 힘들다.

◇ 분주령~대덕산~검룡소 6㎞ "대덕산은 안개에 젖고, 검룡소 샘물은 끊임없이 쏟아져"

예정했던 점심장소를 지나쳐, 대덕산을 향해 컴컴한 숲을 오른다. 고도를 약 250m 높이는 길이라 꾸준한 오르막과 급경사가 이어져 등어리에 땀이 찬다. 나무껍질이 알록달록한 물푸레나무 숲길이 고요한데, 이따금 "쀼이익~삐리, 끼릭 끼리~, 찌치~츄비~잇"하는 새 소리가 정적을 깬다. 25분쯤 오르니 전망이 탁 트이는 중턱의 풀밭이다. 하늘을 향해 꽃을 세운 하늘말나리, 구릿대, 짚신나물에 카메라를 들이대다, 뭔가 이상해서 뒤를 돌아다보니, 거대한 풍력발전기의 날카로운 날개가 내게 쏟아질 듯 섬칫하다. 아무리 풍력에너지가 좋아도, 야생의 보호지역에는 어울리지 않는 '기계'다.

하늘말나리. 말나리는 꽃이 말처럼 큰 나리라는 뜻이다. 하늘말나리는 꽃이 하늘을 향해 핀다 © 뉴스1
구릿대. 줄기가 구리처럼 적갈색이고, 대나무처럼 곧게 자라서 이름 지었다. 우산을 펼친 듯한 둥그런 꽃무더기가 당당하다 © 뉴스1

다시 숲길로 들어가 20분쯤 오르니 하늘이 탁 트인 대덕산 정상이다. 아름다운 야생화 풀밭과 시원한 전망을 기대했는데, 올라가자마자 안개가 스멀스멀 번지더니 온통 회색 세상, 곰탕이다. 몇일전의 블로그에 범꼬리 천지라고 쓰여 있었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꽃세상은 아니다. 바람 부는 대로 누웠다 일어서는 풀잎 물결 위로, 멀리 금대봉~함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이 어른거리고, 매봉산 능선에 하얀 풍력발전기들이 성냥개비처럼 박혀 있다.

날씨도, 야생화 개화시기도, 사람들과의 관계도 내 맘대로 되는 것은 없다. 그래서 이 썰렁하고 을씨년스러운 풍경도 아름답다. 올라오는 사람마다 야~ 하고 탄성을 지를 뿐, 서운한 표정은 없다.

대덕산 정상에 오른 한국-미국-러시아 청년들. 요즘의 명산과 국립공원에는 청년탐방객들이 많다. 태백산 정기를 받아 그들의 꿈이 이루어지기 바란다 © 뉴스1
대덕쓴풀이 되었어야 할 대성쓴풀. 대덕산에서 처음 발견되었으나 지명이 대성산으로 잘못 기재되어 대성쓴풀이 됨. 이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한국특산종. 꽃은 새끼손톱보다 작은 크기. 사진 김지연 © 뉴스1

안개에 젖은 대덕산을 뒤로 하고 급경사 계단과 돌길을 내려서다, 문득 점심을 지나쳤다는 생각이 나자,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몸신호가 온다. 10분 식사를 끝내고, 분주령 갈림길을 지나자, 수목원의 산림욕장 같은 큰길이 나오고, 드디어 검룡소 갈림길에 위치한 국립공원 초소가 나온다. 대덕산 정상에서 한 시간쯤 거리다.

오른쪽의 완만한 오르막을 10분쯤 걸어 검룡소에 도착한다. 데크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검룡소는, 작은 바위들에 둘러싸인 길쭉한 '물그릇' 풍경이다. 산 위에 떨어진 빗물이 땅 속으로 흐르면서, 석회암지대의 암반을 녹여 구멍을 만들고, 그 바위구멍이 바깥으로 돌출되어 물이 샘솟듯 분출되고 있는 곳이다. 평범해 보이는 바위틈에서 매일 2000톤 이상의 맑은 물이 샘솟는다니 놀랍고 신기하다. 수온은 사계절 내내 섭씨 9도 내외라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듯하다.

검룡소. 왼쪽 끝 바위틈에서 샘솟은 물이 오른쪽의 거친 암반에서 폭포를 이루며 내려가, 514km의 한강을 이루고, 서해바다로 들어간다 © 뉴스1

민족의 시조로 추앙하는 단군왕검의 '검(儉)' 자를 붙여 검룡소라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검룡(儉龍)은 작은 용, 즉 이무기를 뜻하기도 한다. 이무기가 몸부림 친 흔적인 듯 뒤틀리고 거칠게 패인 암반 사이로 폭포를 이루며 '첫' 한강물이 콸콸 쏟아져 내린다. 이 물은 장장 514㎞의 한강을 흐르며 수만 개의 실핏줄을 통해 유역의 생물들, 사람들에게 삶과 문명을 이어줄 생명수다. 생명수가 흐르는 개울물 옆길을 따라 20분쯤 걸어 주차장에 도착, 10.6㎞, 약 4시간 반의 꽃산행을 마친다.

태백산의 범꼬리 물결. 꽃 모양이 범의 꼬리와 같다는 이름이다. 사진 이복현, 국립공원공단 © 뉴스1

야생화의 낙원을 다녀왔다. 깊은 산중에서 원시림이 뿜어내는 숲냄새와 숲소리가 가득한 가운데 수많은 야생화가 피고 지는 야생의 꽃길이었다. 해발 1300m를 넘나드는 고지대이지만, 대부분 평탄한 오솔길에 부드러운 내리막이고, 하루 입장인원을 제한하기 때문에 밀접접촉을 피해 여유있게 즐겼던 '힐링 길'이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대덕산과 금대봉~함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고지대의 일부만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넓은 면적이 필요한 생태계가 제대로 보호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유지가 많고 다른 기관과 이해충돌이 있겠지만, 함께 노력하여, 민족의 영산이라는 태백산의 품격에 맞는 보호가 이루어지길 소망한다.

태백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검룡소에서 솟구쳐 한강이 되고, 황지(潢池)연못에서 솟구쳐 낙동강이 되어 국토의 젖줄이 되었으니, 태백산은 백성을 살려낸 민족의 영산임에 틀림 없다. 오늘 보았던 수백 개 범꼬리의 숫자만큼, '범 내려오는' 태백산국립공원이 되기를 바란다.

stone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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