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의사, 명의 시대 저물까..의료계 '진료 가이드라인 표준화' 움직임

박정연 기자 2022. 7.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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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자체개발 진료가이드라인 구축.."어떤 의사를 만나도 동일한 진료"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큰 병을 치료해야 하는 환자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뭘까. 아마도 해당 질환의 ‘명의’를 수소문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대형병원의 이름난 의사들은 길게는 1년 넘게 예약이 밀려있다. 수술 날짜를 기다리는 동안 환자의 속은 매일 타들어간다.

모든 의사가 똑같은 지침에 따라 진료를 한다면 어떨까. 어떤 의사를 찾아가도 동일한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받는다면 환자의 선택지는 지금보다 넓어진다. 밀려드는 환자로 여유가 없던 노련한 의사들도 치료와 연구활동, 후학양성에 힘 쏟을 시간을 벌 수 있다. 최근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의료계에서 ‘스타 교수’ 중심의 진료 현장을 바꾸기 위해 의료진의 임상 역량을 동일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관심을 끄는 이유다. 

21일 병원계에 따르면 서울아산병원은 올 들어 췌장암, 구강암, 유방암, 위암, 골전이환자관리 등 5개 질환 등에 대한 진료 가이드라인을 새롭게 구축해 임상 현장에 적용했다. 이번에 만들어진 가이드라인에는 질환의 병기별 진단과 치료법, 세부 원칙이 자세히 담겨 있다. 국내외 자료는 물론 그동안 병원이 쌓아온 수만 건의 임상 사례를 종합적으로 반영했다고 병원은 설명했다.

지금도 의료진이 사용하는 진료 가이드라인은 있다. 여기에는 기본적인 지침이 담겨있다. 그러나 실제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환자의 상태는 가지각색이다. 평소 생활 습관이나 병력에 따라 적절한 처치는 천차만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진료를 잘 본다고 소문난 의사들은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가장 적합한 치료법을 선택하는데, 여기에서 의사의 임상 역량이 좌우되는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 MD앤더슨 암센터의 유방암 진료 가이드라인. MD앤더슨 암센터 홈페이지 캡처

이 가이드라인 개발을 주도한 임석병 서울아산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새 가이드라인은 의료진의 경험의 차이에서 비롯된 임상 역량 격차를 메우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임 교수는 “같은 환자라도 어떤 의사는 수술을 받도록 권유하고, 또 어떤 의사는 항암제 치료를 선택하는 일이 있다”며 “이번 가이드라인이 임상 현장에 적용됨에 따라 환자는 어떤 의사를 찾아가도 동일한 판단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임 교수에 따르면 기존에 의료진이 참고하던 해외 가이드라인은 세세한 환자 상태에 대해서까지는 다루지 않는다. 실제로 이번에 만들어진 골전이 환자관리에 대한 지침은 아산병원이 세계 최초로 내놨다.

새 지침은 의사가 권고한 약제 등이 국내 의료보험 실정에 맞지 않는다는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임 교수는 “한국 환자의 특성과 국내 의료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수련 중인 전공의 등도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은 향후 더 많은 질환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구축되면 이를 모든 의료기관과 환자에게 공개할 계획이다. 앞서 2020년 이 병원은 대장암, 유전성 유방암·난소암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완성했다. 이번에 구축된 5개 질환을 더하면 7개 질환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됐다. 병원은 현재 심장질환을 중심으로 다음 가이드라인을 준비 중이다.

임 교수는 “미국 MD앤더슨 암센터는 홈페이지를 통해 대부분 질환에 대한 진료 가이드라인을 공개하고 있다”며 “대형병원이 가진 임상 노하우가 공유되면 전체 의료기관 역량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며, 환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어떤 기준에 따라 치료를 받게 되는지 ‘알 권리’를 충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기대했다.

모든 의료진의 임상 역량을 표준화하려는 노력은 의료계에서 조금씩 공감대를 얻고 있다. 서울아산병원과 비슷한 시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암병원 또한 최근 내부적으로 '명의 아닌 명팀의 구축'을 목표로 삼고 의료진 교육을 강화했다.

삼성서울병원에 따르면 진료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교육 외에도 환자를 대하는 철학과 자세에 대한 공유가 이뤄지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의 한 교수는 "진정한 의미의 명의가 되기 위해선 진료능력 뿐 아니라 환자와의 소통능력도 중요하다"며 "진료와 소통 모든 방면에서 의료서비스의 상향평준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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