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산업 리포트] 푸틴 '복심'이라던 우주 수장의 퇴장..러 우주정책 전환점 되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5일 국가 우주 프로그램을 총괄 지휘하는 기관인 ‘로스코스모스’의 대표 드미트리 로고진 사장을 전격 해임했다. 후임으로는 유리 보리소브 현 러시아 부총리를 임명했다. 갑작스러운 교체의 이유는 공개되지 않았다. 푸틴의 오랜 복심으로 2018년 5월부터 4년간 로스코스모스를 지킨 로고진 사장의 쓸쓸한 퇴장이었다. 그는 자신의 해임이 알려진 직 후 타스통신과 갖은 인터뷰에서 “로스코스모스에서 보낸 4년은 단순히 하나의 직업이 아닌 내 인생의 전부였다”라고 퇴임의 변을 남겼다.
그의 갑작스러운 해임의 이유에 대해서는 여전히 소문이 무성하다. 푸틴과의 갈등설부터 미국, 유럽과의 우주협력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돌고 있다. 소문이 확산되지 러시아 정부는 “그가 한 일에 어떤 문제가 있었기 때문은 아니”라며 “적절한 시기에 새로운 자리에 임명될 것”이라며 상황 관리에 나섰다. 로고진 사장이 러시아가 장악한 우크라이나 지역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를 입증할 증거는 아직 없다. 결국 로고진 사장이 앞으로 어떤 자리에 임명되는지를 봐야 보다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흥미로운 것은 로고진 사장이 해임된 바로 다음날 타스통신이 게재한 인터뷰 기사다. 러시아 우주정책 연구소 이반 모이세예브 소장의 발언을 토대로 작성된 것으로 그는 현재 러시아의 국가 우주 프로그램과 정책에 많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큰 두 가지 문제로 우주 프로그램에 대한 정부예산의 감소와 핵심 우주 관련 부품에 대한 부실한 국산화 정책을 지목했다. 유럽 및 미국 부품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많은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대체품 개발에 투입되어야 하는데, 이 와중에 예산은 줄어드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모이세예브 소장이 로고진 사장을 대놓고 비판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러시아 우주산업의 현재 모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로고진 사장이기 때문에, 결국 그의 이러한 평가는 우회적 비판이라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로스코스모스의 부실한 정책과 주요 프로젝트에 대한 관리 미숙으로 러시아의 우주 경쟁력이 하락하고 있다는 지적은 로고진 사장이 현직에 있을 때에도 있었다. 문제는 그런 지적을 받아도 로고진 사장은 꿋꿋이 자기 길을 갔다는 것이다. 지난 6월에는 로스코스모스의 비효율적 재정지출을 지적한 알렉세이 쿠르딘 감사원 원장과 설전이 있기도 했다. 앞서 쿠르딘 원장이 푸틴 대통령에게 국가 우주 프로그램이 '최악'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보고한 것이 싸움의 발단이 됐다. 당시 쿠르딘은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 푼을 써도 목적이 있게 돈을 써야 한다”라고 로스코스모스의 헤픈 씀씀이를 비판했다. 이어 “우리 감사원은 단순이 얼마의 돈을 썼는지 만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을 써서 정부가 정한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도 확인한다”라고 했다.
러시아 현지 신문 MK의 2021년 12월 보도에 따르면 로고진의 재임 중 로스코스모스가 얼마나 허술하게 관리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로켓 발사에만 한정해 보면, 로스코스모스의 2019년 목표는 44회였다. 하지만 실제 발사는 25회에 그쳤다. 이러한 일은 2020년에도 계속됐는데, 계획한 40회 발사 중 실제로 진행된 것은 17건에 그쳤다. 2021년에도 47회 목표에 발사는 18회만 실시돼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성과를 달성했다. 쿠르딘 원장의 이러한 비판에 로고진은 당연히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정부가 정한 목표에 미달한 성과를 달성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에 따른 서방의 대 러시아 제재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해명이 푸틴에게 통하지는 않았다. 푸틴은 9월 로스코스모스의 2022~2024년 예산을 대폭 삭감한다고 발표했다. 일종의 징벌적 조치였다. 삭감 규모는 전년대비 약 16%로 로스코스모스의 2022년 예산은 29억 달러(약 3조 8000억 원)로 책정됐고, 이는 2021년 대비 5억 5700만 달러 감소한 규모였다. 이러한 삭감 규모는 2023년과 24년 예산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예정이다. 당시 푸틴은 로고진에게 꼭 달성해야 할 목표 두 가지를 하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의 대표 발사체인 소유즈의 국제적 신뢰도를 극대화할 것과 재사용 기술을 비롯 차세대 발사체 개발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마스터하라는 것이었다. 스페이스X를 비롯해 빠르게 성장하는 미국과 유럽의 발사체들과 한판 승부에 대비하라는 지시였다.
이런 지시를 내린 후 10개월이 흐른 지금, 로스코스모스가 이 두 분야에서 얼마나 많은 진전을 이루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나 확실한 것은 재정적 상황이 로스코스모스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예산이 줄었으며 그로 인한 부족분을 메꿀 대안이 필요하다. 하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그나마 수익을 올리던 발사체 서비스 시장에서도 퇴출됐다. 전쟁 발발 후 자국의 통신, 군사, 항법위성을 종종 발사하기는 했지만 큰 수익이 되지는 못했다. 러시아산 엔진의 오랜 고객이었던 미국도 국가안보적 이유를 들어 러시아 엔진에 대한 의존도를 빠르게 줄여가고 있다.
러시아는 2011년 7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국제우주정거장(ISS)을 오가는 유인우주선(소유즈)을 보유한 유일한 나라로, 미국에 자리 하나당 약 8000만 달러(약 1050억 원)를 받고 판매했던 호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 기업 스페이스X가 만든 ‘크루 드래건’ 유인우주선과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고, 가까운 미래에 보잉을 비롯한 다른 경쟁자들도 유인우주선 시장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독점권이 잘 유지되고 있던 ISS 궤도수정 서비스도 지난 6월 25일 NASA가 미국의 시그너스 화물선을 이용해 ISS의 궤도를 수정하는 데 성공하면서 깨졌다.
※ 동아사이언스는 미국 우주 전문 매체 스페이스뉴스와 해외 우주산업 동향과 우주 분야의 주요 이슈를 매주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다.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운 세계 우주 산업의 동향과 트렌드를 깊이 있게 제공할 계획이다. 박시수 스페이스뉴스 서울 지국장은 2007년 영자신문인 코리아타임스에 입사해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를 거쳐 디지털뉴스팀장을 지냈다. 한국기자협회 국제교류분과위원장을 지냈고 2021년 미국 우주 전문 매체 스페이스뉴스에 합류해 서울지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시수 스페이스뉴스 서울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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