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비, 싸다고 꼭 좋을까?
얼마 전 50대 남자 홍길동씨는 두통으로 병원을 찾았습니다. 뇌종양일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혹시 모르니 의사가 뇌 MRI(자기공명영상)를 찍어보자 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굳이 100만원에 달하는 검사를 하지 않았을 테지만, 불과 14만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선뜻 검사를 받았습니다. ‘MRI 가격이 많이 착해졌구나’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문득 걱정도 되었습니다. 국가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을 텐데 이렇게 (불필요하게) 검사를 많이 해도 될까 우려스러웠습니다. 홍길동씨의 이 걱정은 기우일까요? 이것은 과연 좋은 정책일까요?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의료서비스를 받아도 의료비의 30~50%를 본인이 부담해야 합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의료서비스도 많이 있습니다. 가령 MRI와 초음파는 오랫동안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환자가 오롯이 그 부담을 져야 했습니다. 일본도 우리와 비슷하게 본인부담률이 높은 나라입니다. 하지만 북미권과 유럽의 선진국들은 본인 부담이 거의 없는 편이죠.
무엇이 더 낫냐고요? 장단점이 있습니다. 본인 부담이 많다면, 꼭 필요한 치료가 아니라면 굳이 받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경제학 용어로 ‘도덕적 해이’를 줄여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꼭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한편 지나친 의료비 지출로 인한 경제적 충격을 줄여주는 건강보험의 목표 달성에 제한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전체 GDP에서 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2019년 기준 8%입니다. 미국이 17.0%, 일본이 11.1%, OECD 국가 평균이 8.8%로 우리나라보다 높습니다. 우리나라가 의료비를 과다하지 않게 유지하는 중요한 비결 중 하나가, 저는 상대적으로 높은 본인부담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이 각자 의료비를 더 내는 게 궁극적으로 전체 의료비를 낮추는 데 기여한다는 말입니다. 이 논리는 어떻게 성립할 수 있을까요?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2017년 정부는 의료비 보장성 강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습니다. ‘건강보험의 보장률이 낮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소위 ‘문재인 케어’입니다. 16세 미만 어린이 및 청소년의 입원 본인부담률을 20%에서 5%로 인하했습니다. MRI와 초음파 검사에도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했습니다. 가령 종합병원에서 뇌 MRI 검사를 받을 때 이전에는 평균 48만원을 환자가 전액 부담해야 했지만, 이후 MRI 검사 가격이 약 29만원으로 표준화되고, 환자는 이 가운데 대략 50%인 15만원만 부담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연간 7000억~4조5000억원 흑자이던 건강보험 수지는 2018년 1778억원, 2019년 2조8000억원 적자를 기록하게 됩니다. 반면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는 줄어들었습니다. 건강보험 보장률은 2017년 이전 대략 63% 수준에서 2019년 65.3%로 소폭 상승했습니다. 이 정책이 국민들에게 과연 이익이 되었을까요?
돈을 적게 내니 환자가 받는 혜택은 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건강보험료’로 그 비용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만일 건강보험에서 부담하는 의료서비스가 늘어나고 본인부담률이 줄어든다면 건강보험료가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복지 지출이 늘 때 세금 부담이 커지는 것과 같은 원리죠. 의료비가 싸졌다고 마냥 좋아할 이유가 없습니다. 결국은 건강보험료로 그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건강보험 수지가 계속 적자이면 건강보험료는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건강보험이 적용된 의료서비스가 정말 사람을 살리는지, 삶의 질을 개선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불필요한 지출이 되고 마는 것이죠.
청소년 입원 본인부담금을 낮췄더니…
보건경제학자인 싱가포르 경영대 김성훈 교수와 고려대 고광혁 교수 연구팀이 2018년 청소년 본인부담금 감면 정책의 효과를 분석했습니다(Kim, Koh, and Lyou, 2022). 외래 진료 등 다른 의료서비스의 본인부담률 변화는 없었습니다. 정책이 시행된 시점에 16세가 갓 넘어 입원 본인부담금이 20%인 청소년들과, 15세 미만이라 본인 부담이 5%로 경감된 사람들을 비교했죠. 생일이 하루 이틀 차이라 다른 특성들은 다 비슷한데, 정책으로 인해 입원 본인부담금이 크게 달라지고 만 사람들입니다.
입원 의료비가 싸졌더니 청소년들이 더 많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입원 6.3% 증가), 입원을 해서도 비용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입원당 의료비 8.3% 증가). 결국 청소년 입원에 따른 전체 의료비가 11.5%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본인부담금이 대폭 줄어드니 환자가 (가족이) 부담하는 실제 자기부담금액은 줄어들었지만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러한 변화는 건강 증진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청소년들의 사망, 삶의 질, 주관적 건강 수준에 별다른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물론 통계가 미세한 변화까지 완벽하게 잡아낼 수는 없습니다만, 적어도 눈에 띄는 변화를 만드는 데 실패한 셈이죠.
연구 결과를 해석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입원 의료비가 싸지니 외래 진료로 충분한데도 굳이 입원을 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입원하고 나서도 꼭 필요한 치료나 검사가 아닌데도(싸니까, 5%만 내면 되니까) 더 쉽게 하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환자가 더 원해서일 수도 있고 의사들도 더 적극적으로 권할 수 있겠죠. 그런데 이는 청소년 건강 증진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청소년 의료비 경감은 선한 의도를 가진 정책입니다만, 성공적인 정책이라 평가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일본은 70세 생일이 되면 의료비의 본인 부담이 갑자기 30%에서 10%로 줄어듭니다. 소득이 적은 노인들을 경제적으로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도입된 정책입니다. 도쿄 대학 경제학과 히토시 시게오카는 이러한 변화가 입원과 외래 진료를 대략 10% 정도 증가시켰음을 보였습니다(Shigeoka, 2017). 그 결과 정책이 의도했던 본인 부담 의료비의 획기적인 감소에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가장 가난한 일부 집단을 제외하고는 본인 부담 의료비도 별로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싸니까) 병원을 더 많이 이용했지만 이것이 노인의 사망률, (주관적인) 건강, 정신 건강에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했다는 점입니다.
저 또한 국가 조기암 검진의 본인부담금을 연구하여 비슷한 결과를 도출했습니다(Kim and Lee, 2017). 우리나라는 2002년부터 40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2년마다 국가가 암 검진을 제공합니다. 건강보험 가입자 소득수준 하위 50%는 무료로 검진받을 수 있으며 상위 50%는 암 검진 비용의 10% 정도를 부담합니다. 그러면 소득수준 50% 기준 주변에서는 소득수준이 매우 비슷한데 아주 작은 차이로 본인 부담 10% 여부가 달라지는 사람들이 발생합니다. 이 두 집단을 비교해보았습니다.
분석 결과, 본인 부담이 없는 사람들이 국가 암 검진을 더 많이 받아 위암과 유방암을 더 많이 또 일찍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암 검진 증가가 사망률 감소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 첫 번째, 국가 암 검진 외에 다른 경로로도 쉽게 암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의료 접근성이 높은 한국에선 민간 검진을 통해 혹은 일반 병원 진료에서 내시경을 받는 것이 어렵지 않죠. 그래서 국가가 나서지 않아도 6개월 안에 이런 경로로 모두 암을 발견하기 쉽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암 검진을 받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서 암에 걸릴 확률이 낮기 때문입니다. 정작 검진이 정말 필요한, 암에 걸릴 확률이 높은 사람들은 검진을 잘 받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암 검진의 본인부담금 감면은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3년 만에 3배 늘어난 MRI·초음파 검사량
우리 정부의 보장성 강화에서 또 다른 큰 축은 MRI와 초음파 검사의 급여화입니다. 이는 검사의 급격한 증가를 가져왔습니다. MRI 검사는 2017년 140만 건에서 2020년 354만 건으로 2.5배, 같은 기간 초음파는 529만 건에서 1631만 건으로 3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그 결과 MRI 진료비는 2017년 3876억원에서 2020년 7121억원, 초음파는 5027억원에서 1조4260억원으로 크게 늘어났습니다. 아직 체계적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만, 이러한 급격한 검사량 증가가 정말 꼭 필요한 것이었을지는 의문이 듭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절을 지내며 저는 이 돈이 병실 구조를 6인실 중심에서 1인실로 바꾸는 데 사용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인실 병상 구조는 병원 내 감염에 취약합니다. 이로 인해 코로나19를 포함한 감염병 대응에 어려움이 큽니다. 대부분의 다른 선진국처럼, 적어도 중환자실과 응급실만은 1인실로 전환해야 합니다. MRI와 초음파 추가 급여화로 지출되는 매년 1조원에 이르는 비용을 여기에 투자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바람직한 변화 방향도 있습니다. 효과가 검증된 희귀난치병 및 중증질환의 신약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정책입니다. 가령, 새로운 암치료제가 더 낫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기존 치료제로만 보험이 되거나 기존 치료제의 효과가 없는 것이 확인되어야만 새로운 약에 보험을 적용받는 경우가 여전히 많습니다. 대장암 표적항암제인 얼비툭스는 꼭 필요한 치료제임에도 건강보험 대상이 되지 않아 환자 부담이 무려 월 450만원이었습니다.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가 속출했습니다. 그러나 2014년 보험을 적용받게 되어 이제는 월 23만원이면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높은 본인부담금을 통해 성공적으로 불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억제했습니다. 본인부담금의 큰 장점입니다. 이로 인해 가계에 지나친 의료비 지출이 발생하면 어떡하냐고요? 본인부담금의 최대치를 정하고, 그 이상은 부담을 면제하는 본인부담금 상한제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건강보험 보장률’을 올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정치인과 학자들이 많지만, 이것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를 통해 국민의 실질적 건강을 증진하고, 지나친 의료비 지출로 경제적 어려움을 막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단순히 “보장률을 높이겠다”가 아니라 “추가 지출은 어디에 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건강보험 적용의 우선순위 설정이 핵심이죠. 생명에 직결된, 새롭게 효과가 검증된 항암제는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하고 경증질환의 본인 부담은 줄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 대선 때 크게 회자되었던 탈모제의 건강보험 적용 공약도 저는 그리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물론 의료비 본인부담금이 늘 긍정적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버드 대학 경제학자 아미타브 챈드라 등은 미국에서 약값의 본인부담금을 대략 30%에서 40%로 올렸더니, 고지혈증 및 고혈압 치료제의 사용이 23% 줄고, 이로 인해 사망률이 무려 33%나 증가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처럼 저소득층의 의료 이용이 크게 제한적인 나라에서는 높은 본인부담금이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국민의 부담을 줄여주고자 하는 선한 의도를 가진 보장성 확대 정책이 어떻게 실패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보는 경증질환 치료를 저렴하게 하는 정책은 필요성이 낮지만 선거 기간 표심에 영향을 줍니다. 반면 소수의 사람이 혜택을 보지만 목돈이 드는 중증질환 치료비를 줄여주는 정책은 꼭 필요하지만 득표에 별 도움이 되지 않죠. 그 탓에 건강보험이 가장 아픈 사람을 충분히 보호하는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설 수 있도록, 정책 입안자와 국민들의 분별력 있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 참고문헌
Chandra, Amitabh, Evan Flack, and Ziad Obermeyer. The health costs of cost-sharing. No. w28439.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2021. Cohen, Jessica, and Pascaline Dupas. "Free distribution or cost-sharing? Evidence from a randomized malaria prevention experiment." The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2010): 1-45. Kim, Seonghoon, Kanghyock Koh and Wonjun Lyou (2022) The Effects of Patient Cost-sharing on Adolescents' Healthcare Utilization and Financial Risk Protection: Evidence from South Korea Kim, Hyuncheol Bryant, and Sun-mi Lee. "When public health intervention is not successful: Cost sharing, crowd-out, and selection in Korea's National Cancer Screening Program." Journal of health economics 53 (2017): 100-116. Shigeoka, Hitoshi. "The effect of patient cost sharing on utilization, health, and risk protection." American Economic Review 104.7 (2014): 2152-84.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 및 정책학과 교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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