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배 오른 반도체 소재 가격..높아지는 '연쇄 인플레이션' 공포
소비자 제품 가격 인상→소비위축.."부메랑 우려"
(서울=뉴스1) 문창석 기자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여파로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필수 소재인 네온 가격이 계속 치솟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반도체 제조사들은 제품 가격을 올리면서 대응에 나섰는데, 이런 추세가 반도체 수요산업인 전자 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고 결국 가계의 소비를 위축시켜 반도체 등 전자산업의 부진을 낳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감이 나온다.
22일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6월 국내로 수입된 네온의 평균 가격은 킬로그램(kg)당 2920달러로 전월(2302달러)보다 27%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네온은 회로기판(웨이퍼)에 패턴을 그려넣는 '노광' 공정에 사용되는 물질로 반도체 생산 과정의 필수 소재다.
네온 가격은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kg당 100~200달러대에 머물렀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영향이 본격화된 4월부터 치솟기 시작해 지난달 2000달러대 후반까지 올랐다. 6월 수입가격은 지난해 전체 평균(58.8달러)과 비교하면 무려 50배나 높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의 주요 가스 정제업체들로부터 네온 공급이 끊기면서 수급 불안정이 지속되자 가격이 폭등한 것으로 분석된다. 우크라이나는 전세계 네온 생산량의 절반을 공급하는 주요 생산국이다. 지난해 국내 전체 수입 물량 중 23%가 우크라이나산(産)이었다. 여기에 최근 원 달러 환율까지 오르면서 네온 수급에 필요한 비용이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전쟁 이후 부르는 게 값이 되자 세계 2위 네온 생산국인 중국 기업들이 가격을 대폭 높인 영향도 컸다. 네온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한 지난 4월 중국산 네온 평균 수입가격(kg당 1464달러)은 우크라이나산(kg당 182달러)보다 무려 8배 높아지면서 6월까지 네온 전체 평균 수입가격 상승을 주도했다.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폭등한 가격에도 수입 물량을 늘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네온이 없으면 반도체 공장을 돌릴 수 없기에 비용 부담에도 불구하고 비축 물량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1~6월 국내 네온 수입량은 74.1톤으로 이미 전년 수준(98.2톤)에 근접했다. 현재 주요 반도체 제조사의 네온 합산 재고는 약 3~5개월로 추정된다.
원재료 가격이 오르면서 반도체 기업들은 제품 공급가격을 줄줄이 인상하는 추세다. 최근 대만의 TSMC는 고객사에 내년 1월 공급 가격을 약 6% 올릴 수 있다고 통보했다. 일본의 웨이퍼 제조업체인 섬코도 공급 가격을 약 30%, 반도체 관련 고순도 가스를 생산하는 쇼와 덴코는 가격을 20% 이상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외신에 따르면 삼성전자도 올해 파운드리 가격을 최대 20% 인상하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기 침체로 소비가 줄어드는 상황이지만 반도체 공급가격이 높아지면서 가전·스마트폰·자동차 등 최종 제품의 판매 가격도 인상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의 경우 반도체 부족 사태를 겪은 자동차 업종은 평균 가격이 약 15% 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달 출시되는 아이폰14의 판매가격도 반도체 등 원가 상승으로 약 100달러 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전자업계는 소비재 가격 인상이 인플레이션으로 지갑이 얇아진 가계의 소비를 더욱 위축시킬 것으로 우려한다. 소비 진작을 위해선 제품 가격을 내려야 하겠지만 이 경우 제조업체는 인상된 반도체 가격을 전부 떠안아 영업이익률이 크게 낮아지기에 섣불리 인하할 수도 없다. 이 같은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수요 위축 현상이 더욱 심화돼 반도체를 비롯한 산업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
안재균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전쟁이 길어질수록 희귀가스 수급 차질 및 대체 수입 비용 증대를 야기해 국내 반도체 생산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며 "우크라이나 사태는 유럽 등의 스태그플레이션을 심화시켜 경기 둔화로 이어져 자동차·가전 등 국내 소비재를 중심으로 수출 부진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themo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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