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실험' 비판받는 튀르키예, 스타트업 유니콘 쏟아진 이유는

튀르키예(옛 터키)=안소영 기자 2022. 7. 22.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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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조선]
[르포] 튀르키예 실리콘밸리 '빌리심 바디시(Bilisim Vadisi)'를 가다
전 세계적으로 긴축 정책을 펼치는 와중에 튀르키예(옛 터키)가 금리 인하 정책으로 경제 실험을 하고 있다. 튀르키예의 금리는 2021년 8월 19%였지만, 9월부터 네 차례 연속 인하해 현재 14%를 유지하고 있다. 리라화 가치는 지난해 초 달러당 7.5리라에서 현재 17리라 수준까지 하락했고, 수입 원자재와 에너지 물가가 상승해 6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24년 만에 최고치(78.6%)에 달했다. 하지만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고(高)금리는 만악의 근원”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고,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든다”면서 저금리를 고집하고 있다. 튀르키예 내부에서는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할 것’ ‘인플레이션이 통제 불능 상황’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그렇지만 튀르키예의 경제가 무너지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튀르키예의 지난해 경제 성장률은 11%, 올해 1분기는 7.3%에 이른다. 튀르키예의 스타트업에 투자된 VC(벤처캐피털) 자금도 2020년 1억5500만달러(약 2040억원)에서 지난해 15억8400만달러(약 2조890억원)로, 올해 1분기 12억7300만달러(약 1조6800억원)로 급증했다. 리라화 가치 급락이 튀르키예 스타트업 투자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튀르키예 경제가 선전하는 원인은 무엇인지 튀르키예 현지를 방문해 들여다봤다.

6월 15일 오후 이스탄불 주거 지역에서 자동차로 20여 분 이동 끝에 도착한 ‘빌리심 바디시(Bilişim Vadisi)’. 튀르키예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는 이곳은 이스탄불 중심지에서 보았던 이슬람 예배당 모스크도, 오스만 제국 시절 궁전도 떠올리기 어려웠다. 드넓은 에메랄드빛 바다를 끼고 350만m²(106만여평) 규모 대지에 11개 건물이 높고 넓게 펼쳐져 있었다. 언뜻 봐서는 미국의 실리콘밸리나 한국의 판교 같은 기술 신도시로 착각할 정도였다.

350만m²(106만여 평) 규모 대지에 11개 건물이 있는 튀르키예의 실리콘밸리 빌리심 바디시. 사진 안소영 기자

튀르키예 최대 기술개발특구에 들어서니 자유로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로비에는 원형극장처럼 생겨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는 공간부터 다른 동료들과 편하게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공용공간까지 마련돼 있었다. 미국 메타버스(metaverse·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세계) 스타트업 고아트(GO-ART)에 들어서니 히잡을 쓰고 청바지를 입은 여성 개발자가 동료들과 상의하며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게임에 등장할 것 같은 다양한 캐릭터가 벽과 문에 그려져 있고 휴게실에는 탁구대와 2층 높이 소파베드가 놓여있었다.

미국 메타버스 스타트업 고아트 직원들이 휴게실에서 탁구를 치고 있다. 사진 안소영 기자

빌리심 바디시는 튀르키예 정부가 IT 산업을 키우기 위해 2011년 기획한 기술개발특구다. 2015년 공사를 시작해 2019년 문을 열었다. 현재는 모빌리티·게임·사이버보안·스마트시티 등 다양한 분야의 300여 개 기업과 디자인센터, 코딩 교육 기관 등이 입주한 상태다. 우크라이나, 불가리아, 일본 등에서 온 기업들이 입주해 이곳을 유럽, 미국 진출의 발판으로 삼고 있다.

빌리심 바디시 내에 있는 수백 개 기업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대기업은 스타트업과 협력해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적용하고, 스타트업은 기술 개발과 성장에 도움을 받는다. 내부에 디자인센터가 있어 제품 디자인 개발에서도 도움 받을 수 있다. 프나르 시파히 디자인센터장은 “이곳에만 건축가, 패션·웨어러블·산업디자이너 서른 명이 있고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 있는 IED 학교 12곳과 IF 디자이너 500명과도 협력하고 있어 진출 국가에 맞는 제품 디자인 제작을 도와준다”고 말했다.

프나르 시파히빌리심 바디시 디자인센터장이 ‘에어카’ 디자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안소영 기자

튀르키예에는 이러한 테크노파크가 92곳, 연구개발(R&D)센터와 디자인센터가 1500곳이 있다. 튀르키예 정부는 IT, 소프트웨어, 바이오 산업을 집중 육성하기 위해 이를 활용하고 있다. 저렴한 입주 비용, 고용 직원의 소득세 면제, R&D 기계 장비 구매 시 원가의 50% 정부 보조금 지급, 외국 국적 R&D 인력에 대한 영구노동허가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식이다. 여기에 매년 209개 대학에서 배출되는 110만 명의 대학 졸업생이 기술·산업 생태계를 뒷받침한다. 60여 개 액셀러레이터와 80여 개 인큐베이터, 2018년부터 5년 연속 투자금을 늘린 VC들이 스타트업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고 있다.

“글로벌 사업 초점 맞춰 환율 영향 少”

이 때문에 튀르키예 내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도 잇따라 탄생하고 있다. 튀르키예의 유니콘은 2018년 ‘0개’였으나, 게임사인 ‘피크게임스’와 ‘드림게임스’, 소프트웨어 기업 ‘인사이더’ 등 6개가 유니콘으로 올라섰다. 이 중 전자상거래 업체 ‘트렌디욜’과 유럽 최대 식료품 배달 기업이 된 ‘게티르’는 유니콘을 넘어 데카콘(기업 가치 10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으로 올라섰고, 이커머스 플랫폼 ‘헵시부라다’는 나스닥 상장에 성공했다.

튀르키예의 스타트업 성장 비결에는 ‘젊은 인구’와 ‘IT 인프라’도 한몫한다. 튀르키예 평균 연령은 32세로, 인구의 65%가 소셜미디어(SNS)를 활발하게 사용한다. 잠재 고객 규모가 크고, 스타트업 초기 사용자 확보에도 유리한 셈이다. 튀르키예 내 개발자 수는 16만 명에 달하며, 연간 증가율(17%)이 유럽 내 1위 수준이다. 소프트웨어 유니콘 인사이더의 차을라르 이체르 총괄기획실장은 “튀르키예에 어리고 역량 있는 데이터 전문가, 개발자가 많다”며 “최근 유니콘으로 성장하는 기업이 늘면서 학생들의 창업 열정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고 전했다.

인건비를 비롯한 사업 비용이 낮다는 점도 스타트업들이 튀르키예에 둥지를 트게 만드는 이유다. RS리서치를 창업한 세나 노막 최고운영책임자(COO)는 “튀르키예는 서유럽 대비 연구 비용이 8~10배가량 저렴하고 역량 있는 인재가 많다”며 “테크노파크 등에서 기술을 개발해 수익을 낼 경우 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등 지원이 많다”고 했다.

42이스탄불에서 튀르키예 청년들이 동료들과 함께 코딩 공부를 하고 있다. 사진 안소영 기자

일각에서는 튀르키예 경제에 대한 우려가 나오지만, 스타트업과 VC들은 이 상황을 그리 우려하지 않는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튀르키예 스타트업 대다수가 내수 시장이 아닌 해외 시장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차을라르 이체르 총괄기획실장은 “포천 500대 기업 대다수가 우리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정도로 글로벌화한 상황이라 환율 상황에 상관없이 안정적”이라면서 “고객사를 더욱 늘리고 나스닥에 IPO(기업공개)를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미국 실리콘밸리 기반 VC ‘500스타트업’의 이니스 훌리 제너럴 매니저는 “튀르키예(500이스탄불) 투자금을 5년 만에 7배(7000만유로)로 늘렸다”며 “전 세계 500스타트업 중 수익률 1위를 기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리라화 가치 하락에 대해서는 “우리는 달러로 글로벌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어 우려가 적다”면서 “튀르키예는 유럽 국가 중 에스토니아 다음으로 비즈니스를 시작하기 쉬운 나라로, 앞으로 더욱 성장할 요소가 많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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