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달러 시대]①돌아온 외국인, '환율 진정제' 될까
천장 뚫린 원·달러 환율, 고공행진 여전
증권가, 외국인 수급 향방 예측 '분분'
달러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와중에 외국인이 다시 주식시장으로 돌아오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으로 치닫자 저점 매수 기회로 인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외국인 매도세는 그간 달러 강세를 부추겨온 만큼 이들의 순매수 전환이 원·달러 환율 하락을 이끌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다만 시장에서는 외국인의 '사자'가 계속될지에 대해선 의구심을 품는 전문가들이 많다. 금리 인상과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기조가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원화값 추락 중인데 외국인 '컴백'
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지난 20일까지 외국인투자자는 코스피 시장에서 1조1170억원을 순매수했다. 같은 기간 기관투자자가 팔아치운 1조4762억원을 대부분 소화한 것이다.
종목별로 살펴보면 SK하이닉스(3086억원), 삼성전자(2637억원), 삼성SDI(1220억원), SK텔레콤(1096억원), SK아이이테크놀로지(1054억원) 등 대형주에 매수가 집중됐다.
그간 국내 증시의 주요 거래 주체인 외국인은 대규모 물량을 쏟아내면서 지수를 끌어내린 주범으로 꼽혔다. 올 1월부터 6월까지 외국인이 코스피 시장에 내던진 물량은 무려 16조1768억원에 달한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상을 본격화한 3, 4월에는 각각 5조1174억원, 4조9427억원어치씩 순매도했다. 5월에 잠깐 순매수로 돌아서는가 했으나 6월에 다시 5조5816억원을 팔아치웠다.
이에 따라 외국인 비중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수준으로 급감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6월 말 외국인 국내 주식 보유 비중은 26.4%로 지난 2009년 4월 말(26.0%)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팔아치우면서 원·달러 환율은 고공행진 중이다. 지난달 1300원대에 진입한 뒤 이달 15일에는 하루에만 14원이 폭등해 1326.10원의 종가를 기록했다. 이 역시 2019년 4월29일(1340.7원) 이후 최고치다.
외국인의 '팔자'와 원·달러 환율이 서로 상방압력으로 작용하는 모습이다. 외국인은 국내 주식을 팔고 나가면서 달러를 다시 찾아가기 때문에 달러 수요가 높아지는데, 이는 달러값 상승으로 연결된다. 역으로 원·달러 환율이 오른다는 건 외국인 매도세를 부채질한다. 원화값이 낮아지면 국내 증시 투자 매력 역시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달 들어 원화 대비 달러값이 계속 오르고 있는 반면, 외국인은 '사자'로 돌아섰다. 이를 두고 원화 가치가 저점에 이르렀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해정 DS투자증권 연구원은 "환율이 고점 수준에 오르면 국내 주식을 달러화로 환산했을 때 밸류에이션이 저렴해지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사자 계속될까...증권가 '글쎄'
일각에선 돌아온 외국인에 힘입어 환율이 안정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지만 추세적인 '매수'가 이어질지에 대해선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 외국인 매수 전환이 단기적 현상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경기 침체 우려가 확산되는 가운데 우리나라를 비롯한 신흥국에 대한 투자심리가 개선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달러 수요가 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주요국 정부가 유동성을 회수하는 방향으로 정책 스탠스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런 구조를 봤을 때 선진국 증시에 대한 투자 수요는 많고, 원화 가치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미국 증시가 조정을 받으면서 국내 주식에 매수세가 들어오고 있다"면서도 외국인 매수세가 이어질지에 대해선 "물가 상승이나 우크라이나 사태 경과가 진정되는 모습을 앞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원화 가치 약세는 달러 강세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외국인 수급이 순매수로 바뀐 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며 "정책 기조가 유지되는 가운데 경기 침체가 덮치면서 달러 가치는 더욱 도드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원자재 가격의 피크아웃(고점 통과 후 하락)을 추세 반전을 위한 선결 조건으로 내세우는 목소리도 있다. 이미 주가 낙폭이 커진 가운데 펀더멘털에 중대한 영향을 준 원자재 가격이 안정된다면 매수 유인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양해정 연구원은 "상반기 무역수지 적자가 늘어난 건 유가와 대중국 수출 위축 영향이 컸다"며 "한국시장은 소규모 개방 경제로 탄력성이 크기 때문에 하반기에 이 두 가지 요소가 해소된다면 외국인 입장에서 들어올만한 유인이 충분하다"고 진단했다.
백지현 (jihyun100@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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