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수돗물에 또 깔따구 유충..여름철 '물 관리' 비상

신승민 2022. 7. 22.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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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지역 환경단체가 창원 석동정수장에 낙동강 물을 공급하는 본포 취수장에서 채집한 붉은 깔따구 유충. 최근 2주가량 석동정수장에서 깔따구 유충이 발견되는 가운데, 환경부는 정수장 내부에서 사고 원인을 찾고 있다.


■ 창원 '깔따구'·포항 '파란 물'·정선 '검은 물'…때아닌 '물난리'

경남 창원의 한 지역 수돗물에서 2주가량 벌레가 나와 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최근 경기 수원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경북 포항 소재의 건물에서 '파란 물'이, 강원 정선군 일부 지역에서는 '검은 물'이 수도꼭지를 통해 나오기도 했습니다. 식수와 생활용수 등 각종 물 소비가 많은 여름철, '물 안전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창원시 석동정수과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일 처음으로 창원 석동정수장 활성탄여과지와 정수지에서 깔따구 유충 2마리가 발견됐습니다. 환경부와 합동 조사에 돌입한 다음 날부터 지난 20일까지 매일 수십 마리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정수장 내 생산·정수 시설(침전·급속 여과·활성탄 여과·정수지)은 물론, 배수지(물이 가정에 공급되기 전 마지막으로 거치는 연못)와 수용가(소화전 등 상수도 이용 시설)에서도 나왔습니다.

수원 광교정수장과 여기서 물을 공급받는 수용가에서도 지난 11일, 13일, 15일 총 3건의 깔따구 유충이 발견됐습니다.

지난 12일 포항 남구 효자동의 한 원룸 건물에서는 단수 뒤 수도꼭지에서 변기 세정제 색을 연상시키는 파란 물이 흘러나와 거주민이 시에 신고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주민 500명가량이 살고 있는 정선 신동읍 마을 6곳에서는 상수도가 공급되지 않아 소규모 급수 시설을 이용하는데, 석탄이 가라앉은 듯한 검은 물이 수시로 나오고 있습니다.

왼쪽부터 창원시 수돗물에서 나온 깔따구 유충 추정 벌레, 포항시 한 건물에서 나온 파란 물, 정선군 신동읍 마을의 검은 물.


이 같은 때아닌 '물난리'에 각 지방자치단체는 즉각 대처에 나섰습니다.

수원에서는 정수 공정을 바꾸고 유충 필터를 설치해 24시간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파란 물 사건' 발생 직후 포항시 상수도과는 수질 검사를 진행했고,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상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정선군 상하수도사업소 관계자는 '검은 물 문제'에 대해 "(해당 지역은) 지하수를 끌어다 쓰는데 아마 탄맥(炭脈)에서 미세하게 (석탄 성분이) 쌓인 것 같다"며 "여과 시설을 점검할 필요가 있는데, 주민 요청이 있으면 군에서도 운영을 지원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밖에 인천·거창·남양주 등 지자체에서도 정수장과 상수 시설을 긴급 점검했습니다.

그러나 창원의 수돗물 유충 발생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 '15만 시민' 수돗물에 벌레가…약품 처리·병물 공급 등 대처

현재 창원시 석동정수과는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일일 보고 형태로 유충 발생 현황을 집계하고, 약품 처리와 여과지 세척 등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유충 발생을 원천봉쇄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석동정수과 관계자는 "(정상화되기까지) 정확하게 며칠이 걸린다는 확답은 못 드리는 상황"이라며 "(정수) 과정을 열심히 복구하고 있다. 약품 처리에 대한 우려도 있는데, 기준치를 초과하지 않는 방법으로 안전하게 진행한다"고 말했습니다.

창원 석동정수장은 관내 진해구민 15만 명에게 물을 공급하는 시설입니다. 시는 긴급 대책으로 다른 지역에서 가져온 수돗물 1.8리터 5,000병을 진해구 내 유치원과 어린이집 190여 곳, 취약계층 2,800가구에 나눠주고 있지만 물 소비가 많은 여름철에 턱없이 부족한 양입니다.

창원시 수돗물에서 나온 깔따구 유충 추정 벌레와 창원 석동정수장 전경.


■ '알레르기 가능성' 깔따구 유충, 2년 전 인천서도 나와

흔히 '물지 않는 모기'로 불리는 깔따구는 보통 1㎝ 크기로 작은 건 5㎜ 이하의 종류도 있으며 국내에만 200~400종이 서식합니다. 성충은 먹이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2~3일 정도 살고 알만 낳고 죽는다고 합니다. 특히 장마철 전후로 산란을 많이 하는데요. 유충은 녹색·흰색·붉은색 등을 띠며 수중에서 물고기나 다른 곤충의 주요 먹잇감이 됩니다.

깔따구 유충은 우리에게 어떤 피해를 줄까요? 박선재 국립생물자원관 동물자원과 연구관은 "깔따구(유충)는 물이 있는 환경이라면 어디서든 생겨날 수 있다. (정수 시) 염소·오존 처리에 어느 정도 내성을 가지고 있는 종류도 있다"며 "대량으로 접촉했을 때 알레르기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직까지 '유충 수돗물'로 인해 질병 등 구체적인 피해 사례가 보고된 적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살아 있어 꿈틀거리거나, 몸체의 일부가 잘려나간 채 죽어 있는 유충이 우리가 식수로도 쓰는 수돗물에 나오는 일을 결코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특히 깔따구 유충이 나온 게 올해만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판의 강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2년 전 인천 공촌·부평정수장에서도 유충이 발생, 일반 가정집 수돗물로 흘러나가 시민들이 불안해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2020년 당시 인천의 한 가정집에서 발견된 수돗물 속 깔따구 유충 추정 벌레.


■ 깔따구가 좋아하는 '활성탄지'?

2020년 당시 인천시와 환경부 한강유역환경청의 합동 조사 결과 발표 자료를 보면, 깔따구 유충은 정수장 시설 중 '활성탄 여과지(흡착지, 이하 활성탄지)'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이번 창원 석동정수장의 경우에도 활성탄지에서 유충이 발견됐습니다. 여기서 활성탄이란 흡착력이 강한 탄소성 물질로, 기체·습기 등을 빨아들이는 데 쓰이며 주로 목탄(木炭·숯)이 해당됩니다. 이 활성탄을 사용해 물속의 각종 부유물과 잡성분을 여과하는 시설이 바로 활성탄지입니다.

2020년 7월 당시 깔따구 유충이 발생된 인천 공촌-부평정수장과, 인천 한 정수장의 활성탄 여과지 시설 안내판.

그렇다면 왜 유독 활성탄지가 깔따구 유충의 주요 서식 장소로 지목되는 걸까요?

정진영 / 영남대 환경공학과 교수
"고도 정수 처리 시설에서는 보통 '활성탄 조(槽)'를 두는데, 깔따구 유충은 흙 같은 곳을 파고 들어가는 습성이 있어요. 활성탄 밑에까지 파고 들어가다 보니까 여과가 완전히 안 되고 일부가 (물에서) 나오는 거죠. 특히 활성탄은 물속의 유기물을 흡착·분해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 활성탄에 붙어 있는 유기물들이 얘네들 '밥'인 거예요. 그걸 가져다 먹으면서 살 집을 만들어버리는 거죠. 그렇게 살아서 통과한 것들은 염소 소독에도 완전히 잘 죽지 않아요."

■ 활성탄지 역세척, 방충 시설 강화로 대응

현재 창원시와 환경부가 파견한 정밀역학조사단, 전문가 중심의 민관 합동 특별조사위원회 등은 '원인 규명'에 주력하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 명확한 결론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수온이 높아진 까닭에 깔따구 알이 침전지에서 떠올라 여과지로 흘러갔을 것으로 '추정'할 따름입니다.

창원 석동정수과는 정수장 내 약물 투입, 장치 교체는 물론 특히 활성탄지가 깔따구 유충의 서식지가 되지 못하도록 '역세척' 작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역세척은 '물을 활성탄지 밑에서 쏘아 올려, 쌓여 있는 오염 물질을 씻어내는' 원리로, 밑으로 기어 내려오는 유충을 퇴치하는 방법입니다. 2년 전 인천 유충 수돗물 사태 당시에도 '활성탄지 정밀 역세척'이 유충 발생 예방법으로 권장됐습니다. 이밖에 정수장 내 물리적 차단 방법으로는 세밀한 방충 시설 조성, 환기는 가능하면서도 외부와는 완벽히 격리되는 밀폐식 정수 시스템 도입 등이 거론됩니다.

한편 창원시는 21일 학교·복지시설 등에 생수와 수돗물(다른 지역)을 추가 지원하고, 늦어도 오는 29일까지 수돗물 공급을 정상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2020년 당시 깔따구 유충이 발견된 인천 공촌정수장에 설치된 ‘벌레 유인 포획기’에 깔따구 성충 등이 잡혀 있다. (사진 출처=연합뉴스)


■ 공급만 잘된다고 끝? 물도 '질적 관리' 힘써야

올해와 2년 전 '깔따구 유충 사건' 이전에는 '붉은 수돗물 사태'가 있었습니다. 2019년 서울, 인천, 강원 등지에서 붉은색 수돗물이 나와 시민들이 생활하는 데 있어 큰 불편을 겪었습니다. 서울 수돗물 아리수는 '믿고 마셔도 된다'고까지 선전하지만, 앞으로도 매년 이 같은 사고가 반복된다면 우리 수돗물, 정말 '믿고 씻기도' 어려운 수준이 될지 모릅니다.

최승일 / 고려대 환경시스템공학과 명예교수, 전 서울시 수돗물평가위원장
"깔따구도 생태계의 일종이기 때문에 완전히 막기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결국 (당국에서) 계속 (수돗물) 관리를 잘할 수밖에요. 그러려면 인력도, 예산도, 관심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지금은 전문 인력을 육성해서 정수 현장에 보내는 시스템도 안 돼 있어요. 또 당장 물을 싸게 만들어서 공급하는 거에만, 그런 '경제성'에만 집중하다 보니까 사고가 터질 수밖에 없는 거죠. 시장·군수 같은 지자체장도 '물은 나오고만 있으면 되는 거지'라고 생각하다 보니까 (관리를) 소홀하게 할 수밖에 없었죠. 예산을 감독하는 지방의회, 배분하는 정부·국회도 마찬가지예요. 수도에 대해서 실질적으로 신경 쓰고 있는 사람, 없어요. 그러니까 국민들이 (수돗물을) 완전히 '못 믿겠다' 정도는 아니더라도, 사고는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거죠."

작년 10월 환경부와 한국상하수도협회가 발간한 '수돗물 먹는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수돗물 만족도 향상을 위해 더 강화돼야 할 주요 정책(1·2순위 중복 응답 합산)으로 '노후 수도관 교체(48.3%)', '원수(상수원) 수질 관리(40.8%)', '정수장 시설 현대화/고도화(28.8%)' 등이 꼽혔습니다.

또 한국환경정책학회 논문 '수돗물 수질과 공급 안정성에 대한 국민 인식과 시사점에서는, "설문조사 결과 '수돗물 수질이 개선되면 직접 마시겠다'는 응답자가 절반에도 못 미쳤다. '공급 측면'의 노력만으로 상수도 정책·사업의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물 서비스의 질적 수준에 관심을 가질 것을 조언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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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민 기자 (ssm0716@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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