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드라기 결국 사임..EU "伊 퍼펙트스톰 직면" 우려
9월 25일 조기 총선 실시..가을 총선은 헌정사상 처음
[헤럴드경제=한지숙 기자] 의회 지지 기반을 잃은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가 21일(현지시간) 1년 5개월 만에 직을 내려놨다.
정국 관리 책임자인 세 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은 의회 해산과 함께 초유의 가을 조기 총선 실시를 선언했다. 선거일은 오는 9월 25일로 잡혔다.
드라기 총리는 이날 오전 하원에 출석해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히고서 마타렐라 대통령에게 사임서를 제출했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되 국정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당분간 직책을 유지해달라고 요청했다.
아울러 상·하원 의장단과 면담한 뒤 예상대로 의회 해산 법령에 서명하며 조기 총선의 길을 택했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현 내각에 대한 의회 지지가 불충분하고 새로운 과반 구성이 불가능해졌다는 사실이 분명해진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2018년 3월 총선을 통해 구성된 현 의회의 원래 임기는 내년 상반기까지였다.
이탈리아에서 가을 총선이 실시되는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이에 따라 가을에 예정된 내년도 예산안 수립 등 행정·입법 절차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시점의 총선 판세는 우파 정당에 다소 유리하다. 극우당 동맹(Lega)·이탈리아형제들(FdI)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전진이탈리아(FI) 등 우파 3당이 연합하면 과반 의석 확보가 가능하다.
우파연합이 과반을 차지할 경우 현재 정당 지지율 1위인 이탈리아형제들의 당수 조르자 멜로니 하원의원이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될 가능성도 있다.
앞서 드라기 총리는 자신이 이끄는 거국 내각의 중심축인 오성운동(M5S)이 지난 14일 내각이 제안한 민생지원법안의 상원 표결에 불참하자 전격적으로 사임서를 냈다.
마타렐라 대통령이 의회에서 다시 한번 판단을 받아보라며 사임서를 반려했으나 전날 상원에서 실시된 신임안 표결에서 연정 구성 정당의 전폭적 지지 확보에 실패하며 직책을 내려놓아야 하는 운명을 맞았다.
드라기 총리는 상원 표결에 앞서 의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조건으로 총리직을 계속 수행할 수 있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실제 표결은 찬성 95표, 반대 38표로 나타나 명목상 재신임을 받았다.
하지만 오성운동은 물론, 전진이탈리아와 동맹(Lega)이 정국 위기를 촉발한 오성운동과는 연정을 함께 할 수 없다며 투표를 보이콧하며 빛이 바랬다.
공영방송 라이(Rai) 뉴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드라기 총리는 총선 때까지 임시 관리 내각을 맡아 국정을 이어갈 예정이나 그 동력은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에너지 위기와 인플레이션,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9개국)에서 그리스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국가부채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등 산적한 경제·사회 현안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탈리아 총리 출신인 파올로 젠틸로니 EU 경제 담당 집행위원은 트위터를 통해 이탈리아 정치권의 무책임함을 성토하며 드라기 총리의 사임으로 이탈리아는 '퍼펙트스톰'(초대형 복합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드라기 총리 내각의 든든한 우군 역할을 한 중도 좌파 정당 민주당(PD) 당수 엔리코 레타 전 총리도 "의회가 국민에게서 등을 돌렸다"면서 "총선에서 국민들이 정치인보다 더 현명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럽연합(EU)과 미국 등은 드라기 내각 붕괴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대러시아 단일대오에 흠집이 날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드라기 총리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더불어 가장 강력하게 우크라이나를 지지해온 서방권 정상으로 꼽힌다.
정국 위기가 파국으로 치달으며 금융시장도 출렁였다.
밀라노 증시(FTSE MIB)는 장중 한때 2% 넘는 급락세를 보이다 마지막에 힘을 받아 0.7% 하락으로 거래를 마쳤고, 이탈리아와 독일 간 10년 만기 국채 금리 격차(스프레드)도 241bp(1bp=0.01%)까지 확대되며 최근 한 달 내 최고치를 경신했다.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출신인 드라기 총리는 작년 2월 당시 주세페 콘테 총리(현 오성운동 당수)가 이끌던 연정이 붕괴하자 마타렐라 대통령에 의해 정치·경제 위기를 타개할 '소방수'로 낙점됐다.
이후 코로나19 사태, 팬데믹에 따른 사회·경제 위기를 비교적 무난하게 헤쳐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ECB 총재 재임 때인 2012년 이탈리아·스페인·그리스 등 남유럽을 휩쓴 재정위기로 붕괴 위기에 처한 유로존과 유로화를 살려내며 '슈퍼 마리오'라는 별칭이 붙은 드라기지만 악명 높은 이탈리아 현실정치의 높은 벽을 끝내 넘지는 못했다.
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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