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에 고수되기] 유산슬 스승께 배운 임영웅 노래..리듬 타니 나는야 '뽕짝 가수'
박준하 기자의 하루만에 고수되기 (8) 트로트 배우기
유재석 가르친 박미현 교수 노래교실
1시간에 트로트 5~6곡 배울수 있어
중장년층 치매·우울증 예방에 큰도움
가사 한소절씩 열번 정도 반복해 연습
강약 조절하며 부르면 음치탈출 가능
큰소리 여러번 외치면 고음도 잘 소화
요즘 최고 효도선물은 ‘임영웅 콘서트 티켓’이라는 말이 있다. 자리예매하기가 웬만한 아이돌 가수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어렵기 때문. 이달 초 진행된 임영웅 서울 콘서트 예매일에는 전석 매진은 물론이고, 티케팅 시간에 전국 피시방 가동률이 2배 뛰었다고 한다. 임영웅을 비롯한 송가인ㆍ홍자ㆍ영탁ㆍ이찬원ㆍ정동원ㆍ장민호·김호중 등 인기 트로트(성인가요) 가수들이 중년층의 아이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트로트 열풍이 분 건 3년 가까이 됐지만, 그 열기는 쉽게 식지 않는 모양새다. 이번호에선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후 경기 남양주 와부농협에서 다시 열린 노래교실에 동참해 하루 만에 트로트 배우기에 도전해봤다.
●트로트 인기곡은 노래교실에서=트로트 인기곡은 어디서 알 수 있을까? 노래방 인기차트? 벅스나 멜론 같은 음악 애플리케이션(앱)? 아니다. 바로 중년층이 참여하는 노래교실에서다. 노래교실 선곡 리스트나 참가자 반응만 봐도 어떤 가수가 대세인지 알 수 있다.
와부농협 노래교실을 이끈 건 박미현 건국대 미래지식교육원 노래지도사 과정 주임교수(58)다. 박 교수는 업계에서 유명한 강사다. 노래강사 경력만 30년이 넘고 ‘박미현 TV노래강사’ 유튜브 구독자도 5만5000여명을 훌쩍 넘을 정도다. 인기 강습 영상은 조회수 87만회에 달한다. 그는 2019년 MBC ‘놀면 뭐하니?’에선 트로트가수로 나타난 국민MC 유재석(유산슬)에게 노래를 가르쳐 화제가 됐다.
“어머님들, 일단 입꼬리를 쫙 올려서 귀에 척 걸고 한번 웃어보세요. 자, 신나게 웃고 시작합시다.”
박 교수와 인사할 새도 없이 100여명 가까운 중장년 여성 참가자들 틈바구니에 껴서 쿵작쿵작 흘러나오는 트로트에 몸을 맡겼다. 첫 곡은 김트리오의 ‘연안부두’. 곧바로 귀에 익숙한 김연자의 ‘아모르파티’로 이어진다. 멜로디가 흘러나오자 엉덩이가 자동으로 들썩거린다. 참가자들은 20대 부럽지 않은 ‘떼창(함께 부름)’을 하며 한바탕 속풀이를 했다.
노래교실은 먼저 박 교수가 노래를 부르고, 노래에 대한 해설과 창법을 알려준 다음 참가자들이 한 소절씩 따라부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1시간 동안 노래를 배우는데 5∼6곡은 너끈히 부를 수 있다.
‘아모르파티’의 경우 박 교수가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아모르파티)’는 제목 의미를 알려주고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누구나 빈손으로 와/소설 같은 한편의 얘기들을 세상에 뿌리며 살지/자신에게 실망하지마 모든 걸 잘할 순 없어/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로 시작하는 가사를 함께 읽어보며 음미했다.
가사를 숙지했다면 그다음은 참가자의 시간이다. 모두 아까보다 우렁찬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기분 전환을 한다. 트로트에 익숙하지 않은 기자도 대형화면에 나와 있는 가사를 따라 부르며 환호하고 리듬을 탔다.
“저음을 낼 땐 달걀 팔면 안돼. 시장에서 트럭장수가 하듯 ‘계란이 왔어요∼’라고 목소리 내면 되겠어요? 저음을 낼 땐 확실하게!”
박 교수의 귀에 쏙쏙 들어오는 알차고 맛깔스러운 입담은 덤이다.
●1대1 강습으로 음치탈출=본격적인 1대1 강습은 노래교실을 마치고 진행했다. 뮤직비디오 조회수 5000만회를 돌파한 임영웅의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를 박 교수에게 배우기로 했다.
“이 곡은 가수 설운도가 임영웅만을 생각하면서 만든 곡이에요. 오랜 시간 곁을 지켜준 사람들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표현한 아름다운 곡이죠. 임영웅은 고음을 잘 소화하는 가수라서 음정이 높은 편이고, 음정을 여자 키로 바꾸지 않아도 여자들이 부르기 괜찮아요.”
첫 소절부터 난관이었다. “당신이 얼마나 내게∼”라고 부르자마자 박 교수가 노래를 툭 끊었다. “노래를 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많이 듣는 거예요. 아마 트로트를 많이 안 들어봤을 거예요. ‘당신’이라고 뱉을 때 리듬을 주면서 내려갔다, 올라갔다 해야 해요. 노래를 많이 들으면 알 수 있죠.”
한 소절을 열번 정도 반복하며 박 교수를 따라서 부르자 그가 “나아졌다”며 칭찬을 아끼질 않았다. 노래는 단순히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니라 강약 조절이 필요했다. ‘또박또박’ 국어책 읽는 듯한 노래 부르기에서 벗어나 적당한 강약을 주면서 부르니 처음보단 들을 만해졌다. 박 교수는 “가령 부부싸움을 할 때도 무작정 소리만 지르면 상대가 안 듣는다”며 “트로트도 어떨 땐 읊조리듯, 어떨 땐 강하게 불러야 듣는 맛이 있다”고 덧붙였다.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의 하이라이트는 ‘당신은 나의 영원한 사랑/사랑해요/사랑해요’ 고음 부분이다. 본격적으로 고음 부분을 부르기 전 박 교수는 5m, 10m, 50m, 100m에 있는 상대에게 말한다고 가정하고 “사랑해요” 외치기 연습을 시켰다. 소리를 지를 줄 알아야 고음 부분도 잘 소화할 수 있단다. 누군가를 가리키는 것 같은 손동작과 함께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를 외치며 고음 연습을 했다.
“트로트 업계에선 흔히 고음 부분이 있어야 노래가 뜬다고 해요. 잔잔한 노래도 좋지만, 대중들의 귀에 남는 건 강렬한 인상을 주는 파트죠. 자, 어디 한번 시원하게 고음쪽을 불러볼까요?”
어렵게 한곡을 마치자 놀랍게도 마음 한구석이 후련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트로트 취재 때문에 일부러 입고 온 보라색 실크 셔츠는 어느새 땀으로 흠뻑 젖었다. 노래교실에 참여하는 중장년 여성의 기분이 이랬을까. 노래를 못 부른다고 쭈뼛쭈뼛하며 자신감 없이 불렀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실제로 노래교실은 중장년층 치매, 우울증, 갱년기 예방과 치료에도 도움을 준다고 한다.
“노래 부르는 걸 두려워하지 마세요. 쑥스럽다면 주변 노래교실을 찾아 다 같이 노래를 불러보세요. 서로 웃음소리, 노랫소리가 힘이 될 테니까요!”
남양주=박준하 기자, 사진=지영철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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