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장 뛰어든 MZ세대.. "적금 깨 작품 사고 SNS로 함께 감상해요"

김민호 2022. 7. 22.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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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돈을 주고 왜 그림을 사? 간혹 이렇게 묻는 분들이 있어요. ‘컬렉팅(미술품 수집)’을 해보신 적이 없는 분들의 오판이라고 생각해요. 주식이나 부동산을 산다고 한들, 그것들은 저를 감성적으로 채워주지는 못하잖아요. 그런데 벽에 걸린 그림은 하루하루 제게 충만한 기쁨을 줍니다. 그래서 투자한 금액이 전혀 아깝지 않아요.
MZ세대 컬렉터 차윤진(32)씨

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하는 차윤진(32)씨는 자신과 사업가인 배우자를 ‘MZ세대 컬렉터(수집가)’로 규정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자택 곳곳에 판화가 걸려서도, 최근 미술시장의 고객으로 급부상한 2030세대에 속해서만도 아니다. 기업인이나 병원장처럼 재력가로 표상되는 기성 컬렉터들보다 자금은 부족하지만, 마음이 움직이면 적금을 깨서라도 점찍은 작품을 손에 넣는 태도가 또래 컬렉터들과 닮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미술품은 실거주하는 주택과 비슷하다. 비용은 부담되지만 가격 변동에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고 감상하는 것만으로 기쁘기 때문이다.

국내 미술품 시장 규모는 지난해 거래액 기준 9,223억 원으로 추산됐다. 올해는 사상 처음으로 1조 원을 넘길 전망이다. 미술업계는 역대급 호황을 기대하면서 2018년을 기점으로 미술시장에서 새로운 동력, MZ세대 컬렉터가 나타났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갤러리(화랑)들이 모여서 미술품을 판매하는 행사인 아트페어에 20, 30대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명품 매장에서 연출되던 ‘오픈 런’ 현상까지 나타났다. 이들은 왜 컬렉팅에 나섰을까? 앞으로의 미술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최근 3년 사이에 본격적으로 미술시장에 뛰어든 젊은 컬렉터들과 화랑업계 관계자에게 이야기를 들어봤다.

차윤진씨가 19일 서울의 자택에서 가장 아끼는 박서보 화백의 색채묘법 판화를 설명하고 있다. 차씨는 "원화를 구하지 못할 경우, 판화부터 구하기도 한다"면서 "최근에는 적금을 깨서 이배 작가의 판화를 어렵게 구했다"고 말했다. 서재훈 기자
차윤진씨 자택에 걸린 유명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의 플라워볼 판화. 차씨는 미술을 알아가면서 컬렉션 구성이 키치한 작품에서 원화, 단색화 쪽으로 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재훈 기자
차윤진씨가 자택 복도에 걸린 작품들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 첫 번째 작품은 데이비드 호크니의 유명한 회화를 재해석한 일본 작가의 작품이다. 서재훈 기자

기성 세대, 저택에 숨겨 놓고 감상...MZ 컬렉터, 파티 열고 SNS에 올려

미술품은 부유층의 전유물로 여겨지지만 기자가 만난 MZ세대 컬렉터들은 미술시장의 2030세대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집을 꾸미려고 첫 미술품을 구입하거나 미술관을 드나들다가 재테크 겸 용기를 내서 갤러리를 두드리는 등 다양한 계기로 미술시장에 진입했다. 여기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 미술품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가 열리면서 더욱 다양한 사람들이 미술시장에 진입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달 초 열렸던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 사전설명회에서 만난 한 갤러리 대표는 “기성 컬렉터들은 작품을 저택에 숨겨 놓고 혼자서 감상했는데 젊은 컬렉터들은 작품을 구입했다고 파티를 열거나 SNS에 올린다”면서 놀라워했다.

부산에서 컬렉터 모임을 운영하는 회사원 정다슬(27)씨 역시 컬렉터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그는 “대기업 직원이나 전문직이 아닌 주변에서 쉽게 만나는 회사원이나 공무원, 자영업자들도 모임에 참석해 해외 작가를 탐구하거나 함께 미술 관련 행사에 참여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키아프에는 8만8,000명이 방문했는데 설문 응답자(4,851명) 중 60%가 MZ세대(21~40세)로 집계됐다. 53%는 첫 방문이었다.

이승휘씨 자택 거실에 자리한 우고 론디노네의 조각. 이씨는 "조각은 관리의 어려움 때문에 구입을 주저했다"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승휘씨 제공
이승휘씨는 이사를 하면서 집을 꾸미려고 미술품을 알아보다가 자연스럽게 컬렉터로 나서게 됐다. 이승휘씨 제공

컬렉터 다양화...그림 감상에서 투자 목적까지

물론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미술시장에 뛰어들기는 쉽지 않다. 업계에서는 부동산·주식·암호화폐로 부를 축적한 MZ세대 일부가 새로운 고객이 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우고 론디노네의 조각을 약 20만 달러에 구입해 거실에 전시한 투자법인 큐피트의 이승휘(39) 대표는 ‘일반 직장인’이 적지 않다면서도 “컬렉팅에 소득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는 말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가격이 100만, 200만 원이 넘어가는 소품도 있다. 전문직이나 사업하는 분들이 당연히 많다”면서 “최근에는 코인이나 주식으로 좀 번 사람들도 많이 유입된 것 같다”고 전했다.

좋은 작품을 얻으려는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MZ세대 컬렉터들은 기성 컬렉터들보다 정보가 늦고 알더라도 발만 구르는 경우도 있다. 갤러리도 컬렉터를 가린다. 작품을 관리할 능력이 없거나 구입하고 몇 개월 만에 경매시장에 되파는 컬렉터를 꺼리기 때문이다. 차씨는 박서보 화백의 판화를 약 5,000달러에 해외에서 구했다. 차씨는 "초기에 어떤 갤러리들은 저희를 고객으로 대하지 않았다"면서 “올해 화랑미술제는 정말 사람이 많아서 들어가지도 못했다. 젊은 컬렉터로서는 점점 작품을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며 웃었다.


미술시장 정점을 찍었다는 경고도 나와

일각에서는 국내 미술시장의 성장이 정점을 찍었다거나 호황이라기엔 실체가 빈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MZ세대 컬렉터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작품을 구입하는 데다 투자 목적인 경우도 없지 않아 경기가 침체되면 상당수는 미술시장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들이 미술품에 대한 애정보다는 SNS에서 자신의 취향을 보여주는 특별한 재화를 찾다가 명품 대신 미술시장으로 흘러들어온, 일종의 뜨내기 손님이라는 시각도 있다.

키아프 설문조사에서는 MZ세대 방문객 중 작품을 구입한 비율은 18%였고 이들이 구입한 작품의 가격대는 1,000만 원 이하가 대다수(67%)였다. 업계에 따르면 MZ세대 컬렉터들은 가격이 저렴한 판화나 드로잉을 선호한다. 정준모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대표는 “업계에서 호황을 말할 때 그 기준이 일관적이지 않다”면서 “10억 원짜리 작품 10개가 팔리나 100억 원짜리 작품 1개가 팔리나 총액은 똑같다. 그런 상황에서 500만 원짜리 작품이 많이 팔린들 호황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한국화랑협회는 지난해 키아프 이후 매출액이 650억 원을 넘겼다고 홍보했지만 올해는 매출액을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

정 대표는 “젊은 컬렉터들은 내키면 사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그래서 고민 없이 살 수 있는 예쁜 그림, 일러스트인지 회화인지 구분이 안 되는 그림과 시장의 유행을 따라가는 그림이 많이 팔린다. 미학적 근거와 미술사적 의미를 갖추고 가치를 인정받은 ‘스테디한 그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그런 그림의 가격이 휙휙 올라가는데 그 값이 과연 3년이 지나도 유지될까? 미술품은 사고팔 때 수수료가 비싸서 가격이 1.5배 올라도 이득을 보기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정다슬(오른쪽)씨가 지난해 아트부산 전시장에서 김우진(왼쪽) 작가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가운데의 조각은 정씨가 김 작가에게 의뢰해 제작한 작품이다. 정다슬씨 제공
정다슬씨 자택에 전시된 정씨의 수집품들. 정다슬씨 제공

오르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작품을 사라

화랑업계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미술을 진지하게 공부해서 마음에 드는 작품을 사라는 것이다. 투자 목적으로 업계 관계자나 지인의 추천으로 작품을 샀다가는 돈을 벌기는커녕 마음만 다친다는 충고다.

MZ 컬렉터들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정다슬씨는 “일부 유행을 좇는 경우도 있지만 기성 컬렉터들 못잖게 열심히 공부한다. 작품을 구입했던 신진 작가가 인정받고 좋은 곳에서 개인전을 열었다는 소식은 작품 가격이 오른 것보다 훨씬 행복하고 기쁜 일”이라고 강조했다. 차윤진씨는 “이제 이우환과 박서보 화백의 그림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설명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면서 예비 컬렉터들을 응원했다. “남들이 어떻게 수집하는지, 얼마나 투자하는지 눈치 보면서 주눅들지 말고 자신만의 소소한 컬렉션을 만들어 나가면 좋겠어요. 저는 컬렉터라고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모두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미술에 열정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그것을 자축하고 더 열심히 해요!”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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