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충돌.. "헌재 결정 따라야" "대법이 최상위 법원"
헌재 "한정 위헌도 위헌 결정, 법원 등 국가기관에 적용돼야"
대법 "헌재의 재판취소 결정을 우리가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헌법재판소는 21일 GS칼텍스와 KSS해운, 롯데DF리테일 등 3개 기업이 ‘대법원이 위헌인 법률을 근거로 세금을 내야 한다고 판결해 헌법상 기본권인 재판청구권을 침해당했다’며 낸 헌법소원을 모두 받아들여 “대법원 판결을 취소한다”는 결정을 선고했다. 헌재가 대법원 판결을 하루에 3건이나 취소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헌재는 1997년 처음으로 ‘대법원 판결 취소’ 결정을 1건 선고한 뒤 25년간 이런 결정을 내리지 않다가 지난달 30일 1건을 선고한 데 이어 이날 3건을 또 선고한 것이다.
헌재는 이날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대법원 판결 취소를 결정했다. 다만 헌재는 세무 당국이 GS칼텍스 등에 세금을 부과한 처분은 “행정 처분인 과세 처분은 헌법소원 대상이 아니다”라며 재판관 7대2 의견으로 각하했다. 이에 반대 의견을 낸 이석태·이영진 헌법재판관은 “국민의 기본권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구제하기 위해 예외적으로 과세 처분에 대해서도 헌법소원을 허용해야 한다”고 했다.
이 사건 당사자인 GS칼텍스 등은 자산 재평가를 하고 주식을 상장하면 세금을 깎아주는 옛 조세감면규제법 56조의 적용을 받아 법인세를 감면받아 왔다. 그러나 세 회사는 주식 상장 기한인 2003~2004년까지 상장을 하지 않았다. 과세 당국은 기한 내 상장을 하지 않으면 앞서 감면받은 세금을 다시 부과하도록 한 옛 조세감면규제법의 부칙 23조를 적용해 GS칼텍스 등에 세금을 새로 매겼다. 이에 따라 GS칼텍스가 707억원, AK리테일과 KSS해운은 각각 104억원, 65억원의 세금을 내게 됐다.
GS칼텍스 등은 “옛 조세감면규제법부칙 23조는 1993년 옛 조세감면규제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이미 효력을 잃었다”며 세금 부과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지만, 서울고등법원과 대법원은 해당 부칙의 효력을 인정해 세 회사에 “세금을 내라”고 판결했다. 이에 GS칼텍스 등은 2009년 부칙 23조는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헌재에 냈고, 헌재는 2012년 “해당 부칙의 효력을 인정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한정 위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재 결정에 따라 GS칼텍스 등은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하지만 2013년 대법원은 이들의 재심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그러자 GS칼텍스 등은 다시 헌재에 “대법원 판결을 취소해 달라”는 헌법 소원을 냈고 이번에 헌재가 대법원 판결 취소 결정을 내린 것이다.
헌재는 이날 결정에서 “한정 위헌 결정도 위헌 결정이며 이 결정에 법원도 따라야 한다”면서 “헌재의 위헌 결정을 부인하는 법원 재판은 국민의 재판 청구권을 침해한 것으로 해당 판결은 취소돼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은 이날 따로 입장을 내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헌재 결정에 반대하는 기류가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대법원은 “헌재의 한정 위헌 결정은 사실상 법률 해석인데 이는 법원의 고유 권한이며 최종 결정권은 대법원에 있다”고 해왔다. 헌재가 지난달 30일 판결 취소 결정을 했을 때도 대법원은 “한정 위헌 결정은 법원을 기속할 수 없고 재심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했다. 법원 관계자는 “3심제 재판의 최종심은 대법원 고유 권한인데 헌재의 판결 취소 결정을 받아들이면 사실상 4심제가 되면서 대법원이 헌재의 하급 기관처럼 될 것”이라며 “헌재의 판결 취소 결정에 상대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대법원은 1997년 이후 헌재가 내린 판결 취소 결정에 따른 재심을 기각해 왔다.
판결 취소를 둘러싼 대법원과 헌재의 갈등은 ‘최고 법원’ 지위에 대한 두 기관의 치열한 신경전이 바탕에 깔려 있다. 대법원은 특히 헌재가 1997년 이후 25년간 판결 취소 결정을 내리지 않다가 지난달 1건, 이달 3건 등을 잇따라 선고하고 있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한 부장판사는 “김명수 대법원의 문재인 정권 편들기 재판 등에 대한 국민 불신이 커진 상황에서 헌재가 자신의 위상을 높일 기회로 보는 것 아니냐”라고 했다. 판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헌재가 상급 기관 노릇을 하려는 시도를 대법원으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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