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추방' 박정희표 압축성장 신호탄[그해 오늘]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대한민국의 눈부신 압축 성장의 기틀이 된 `경제재건 5개년 계획`이 1961년 7월22일 발표됐다.
제7차 계획(1992~1996년) 이후에 외환 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 사태가 발생하고 민간 주도 경제성장으로 전환되면서 정부 주도형 경제개발 계획은 마무리됐다.
이 기간 경제성장률은 7.8%로 목표를 넘어섰고,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83달러에서 126달러로 늘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962년 1월5일 최종공표되며 대한민국 압축성장 이뤄내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대한민국의 눈부신 압축 성장의 기틀이 된 `경제재건 5개년 계획`이 1961년 7월22일 발표됐다.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겠다”는 박정희 정부의 혁명 공약 시발점이다.
한국경제는 이때부터 고도성장의 길을 걸었다. 1963년에 경제성장률이 9.0%로 급상승하면서 시동을 걸었다.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지기 전까지 대한민국은 연평균 경제성장률 9%를 뛰어넘는 고도 압축 경제성장으로 `한강의 기적`을 썼다.
1961년 7월22일 출범한 경제기획원(EPB)이 이를 가능케 했다. 경제기획원은 국가재건회의의 1차 계획안을 수정보완한 핵심 실무부처다. 경제기획원은 재무부 예산국과 내무부 통계국, 부흥부 기획국 등 핵심 부서의 기능을 모았다. 경제발전에 사활을 건 정부 체제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1962년부터 1981년까지 4차에 걸쳐 경제개발계획이 실시되고 1982년부터는 명칭이 경제사회발전계획으로 변경돼 시행됐다. 제7차 계획(1992~1996년) 이후에 외환 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 사태가 발생하고 민간 주도 경제성장으로 전환되면서 정부 주도형 경제개발 계획은 마무리됐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자립경제 달성을 위한 기반 구축을 기본 목표로 삼았다. △전력, 석탄 등 에너지 공급원 확대 △농업생산력의 증대 △기간산업 확충과 사회간접자본의 충족 △유휴자원의 활용 △수출증대 △기술 진흥 등을 중점 과제로 제시했다.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해 경공업 중심의 산업을 형성했고 외자 유치에 힘썼다. `파독광부`, `파독간호사`들이 외화를 벌어온 것도 이 시기다. 이 기간 경제성장률은 7.8%로 목표를 넘어섰고,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83달러에서 126달러로 늘었다.
김영환 (kyh1030@edaily.co.kr)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초등생 흉기 피습, 고교생은 투신…알고보니 '묻지마 범죄'
- 철거한 조선총독관저 복원 추진…민주 "누가 무슨 생각으로"
- "너무 온순해"…8살 아이 물어뜯은 개, 안락사 난항
- 드러나는 인하대 가해자 악행…살인죄 적용 가능성 커져
- [단독] 한효주, 코로나19 확진…'독전2' 촬영 연기 불가피
- '한동훈 독직폭행' 정진웅, 항소심서 무죄…"판결 바로잡아줘 감사"
- 女 아나운서의 민낯… ‘아이라인 문신’ 때문에 벌어진 50분 난동
- 청와대, 佛베르사유 궁전처럼 만든다…문체부, 尹정부 첫 업무보고
- (영상)집단폭행 당한 10대 사망…"추락했어요" 속인 6명
- 심지어 맥도날드 라이더 뽑는데도…'예쁘고 잘생기면 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