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충전에 1000km.. 전기차 '중국 천하'

김지섭 기자 2022. 7. 2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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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Cover Story] '메이드 인 차이나' 전기차의 현주소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되는 가운데 중국이 전기차 분야에서 폭발적 성장세를 보이며 새로운 모빌리티(mobility) 패권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거대 내수 시장과 정부 정책에 힘입어 중국은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으로 성장했고,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다양한 차종과 배터리 기술,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전기차 최강자인 테슬라마저 위협하고 있다.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전기차 산업 경쟁력 순위(2020년 기준)에서 중국을 독일과 미국, 일본보다 높은 1위 국가로 꼽았다.

중국 전기차 산업이 겉보기에는 눈부신 발전을 이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속 빈 강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오작동과 화재 등 잇단 품질 논란에다 중국산 제품에 대한 낮은 신뢰 탓에 중국 전기차가 만리장성을 넘어 해외시장에 안착하기는 쉽지 않다는 주장이다. 명암이 엇갈리는 중국 전기차 굴기(崛起)의 현주소를 WEEKLY BIZ가 분석했다.

그래픽=김의균

◇中 전기차, 무서운 성장세

최근 전기차 업계에는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올 상반기 전 세계친환경차(전기차·하이브리드·플러그인 하이브리드·수소차 등을 모두 포함한 개념) 판매 순위에서 중국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가 테슬라를 제치고 1위에 오른 것이다. 이 기간 BYD는 전년 대비 3배 많은 64만7000대를 판매해 테슬라(57만5000대)를 7만2000대 차이로 뛰어넘었다. 테슬라가 만들지 않는 PHEV(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31만4600대나 판 것이 결정적이긴 하지만, 친환경차 순위에서 매년 압도적 1위를 달리던 테슬라를 누른 것 자체가 뜻밖이었다.

중국 전기차의 약진은 비단 BYD라는 기업 한 곳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현재 중국은 “전기차 대범람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전기차 공급 및 수요가 모두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중국의 전기차 등록 대수는 784만2830대(PHEV 포함)로 미국(206만4470대)과 독일(131만4830대)의 3.8배, 6배에 달한다. 10만대 수준인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80배가량 많다.

특히 팬데믹을 기점으로 전기차 판매가 급증하는 추세다. 작년 한 해 중국에서 판매된 전기차는 351만9000대로 코로나 이전인 2019년 판매 대수(120만4000대)의 3배에 달한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판매된 전기차 660만대 중 절반 이상이 중국에서 팔린 것이다. 중국의 전기차 판매는 올해 들어서도 꾸준히 증가해 지난달 말 기준 등록 대수 1000만대를 돌파했다.

신차 판매에서 전기차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보여주는 ‘전기차 침투율’ 통계를 보면 중국의 전기차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지 알 수 있다. 중국승용차시장정보연석회(CPCA)에 따르면 지난해 5월 11.6%였던 중국의 전기차 침투율은 올해 5월 26.6%까지 상승했다. 조만간 중국에서 판매되는 자동차 10대 중 3대가 전기차가 된다는 뜻이다. 미국의 전기차 침투율이 4~5% 수준(작년 기준)에 그치는 것과 비교하면 6배가량 높다. 미국 IT 매체 와이어드는 “2040년쯤에는 중국 도로를 달리는 차량 대부분이 전기차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내연기관 열등생 中... 전기차 집중 육성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인구 14억 거대 시장의 과실(果實)을 대부분 독식하며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CPCA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전기차는 600만원대 저가 전기차인 우링자동차의 ‘훙광미니(39만5450대)’다. 판매 상위 15개 모델 중 테슬라 전기차 2종을 제외한 13개가 모두 BYD, 리샹, 샤오펑 등 중국 업체가 생산한 모델이다. 기존 중국 자동차 시장을 유럽과 미국, 일본 등 선진국 완성차 업체들이 석권한 것과는 판이한 양상이다. 최근 10년간 내연기관차를 포함한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는 독일 폴크스바겐(10.3%)과 일본 도요타(7.9%), 혼다(7.3%)가 점유율 1~3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전기차 시장이 현지 업체 중심으로 급성장한 배경에는 장기간 일관되게 추진된 중국 정부의 지원책이 자리 잡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전기차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던 1990년대부터 전기차 산업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뒤늦은 산업화로 자동차 기술과 인프라가 서구권에 한참 뒤처진 상태였기에 이를 일거에 만회할 방법은 전기차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펑밍 루 호주국립대 교수는 “당시 중국은 내연기관의 혁신에서 서방과 견줄 수 없다는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WTO(세계무역기구) 가입 이후 ‘세계의 공장’으로 우뚝 서며 10% 안팎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구가하던 2009년 중국 정부는 본격적으로 국영 기업들의 전기차 분야 투자를 장려하는 정책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2011년에는 신에너지차(전기차·수소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 분야를 7대 신흥 산업으로 선정하고, 전기차 구매 시 7000~1만위안(약 135만~200만원)가량의 보조금 지급과 취득세 면제 등의 혜택을 줬다. 중국산 배터리를 장착한 순수 전기차에 보조금을 집중시켜 외국 브랜드를 견제하고, 대도시에서 내연기관차 번호판 발급을 제한해 전기차 구매를 유도했다.

2016년 발표한 중장기 산업 전략인 ‘중국제조 2025′에서도 신에너지차는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다. 이후 국가 차원의 신에너지차 연구개발(R&D), 인력 양성, 인프라 구축이 공격적으로 이뤄졌다. 자동차 기업에 의무적으로 일정 비율 이상 전기차를 만들게 하고, 출시 차량의 연비를 규제하는 크레디트 제도도 적용됐다.

이 같은 지원책과 제조업 기반 덕분에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가격 경쟁력은 가히 독보적인 수준이다. 유럽 자동차 산업 분석기관 ‘자토 다이내믹스’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유럽 전기차의 평균 가격이 28% 상승(3만3292유로→4만2568유로)한 반면, 중국 전기차 평균 가격은 오히려 47% 하락(4만1800유로→2만2100유로)했다.

◇빅테크 거느린 中의 자신감

2010년대 이후 중국이 팔을 걷어붙이고 전기차 육성에 뛰어든 것은 날로 심각해지는 대기오염 문제를 해결하고,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원유 의존도를 낮추려는 목적이 깔려 있었다. 또한 전기차를 발판 삼아 미국·유럽을 제치고 미래 자동차 산업의 패권을 쥐려는 야심도 크게 작용했다. 하드웨어·제조업 기반 자동차 산업이 소프트웨어·IT 기반 모빌리티 산업으로 변모하는 와중에 기회를 포착한 것이다. 최설화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전기차 개발은 단순히 엔진과 석유를 전기 모터와 배터리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AI(인공지능)와 빅데이터·5G·사물인터넷 등 첨단 정보기술(IT)과 자율주행 기술을 접목해 스마트폰 못지 않은 거대 IT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라며 “아울러 탑승자가 차 안에서 온라인 쇼핑이나 영상 시청을 하는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과정이라는 것을 중국은 정확히 간파했다”고 말했다. 해당 산업은 바이두와 알리바바, 텐센트, 화웨이, 디디추싱 등 IT에 특화된 빅테크 플랫폼을 다수 보유한 중국이 충분히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분야다.

실제로 중국 전기차 중에는 테슬라에 버금가는 자율주행 기술과 OTA(무선 업데이트), 스마트폰 OS(운영체제) 연동 및 음성인식 기술 등으로 무장한 모델이 많다. 지난 3월 출시된 니오의 전기차 ‘ET7′은 고속도로뿐 아니라 복잡한 도심에서도 자율주행할 수 있는 시스템(NAD)을 갖추고 있다. 샤오펑의 전기차는 지난해 광저우에서 베이징에 이르는 3000㎞ 구간에서 무사고 레벨 3(조건부 자율주행) 운행에 성공했다. 5G 분야 특허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한 화웨이는 스마트폰으로 차량 시동을 걸거나 내부 기능을 작동시킬 수 있는 ‘하이카 시스템’을 개발해 각종 전기차에 적용 중이다. 이 밖에 중국에는 바이두를 필두로 포니닷에이아이, 오토엑스, 위라이드 등 최상급 자율주행 기술을 확보한 기업들이 많다. 딜로이트는 2035년 중국에서 판매되는 차량의 66%가 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해 미국(59%)과 유로존(43%)을 월등히 앞설 것으로 전망했다.

전기차 성능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배터리 부문에서도 중국은 CATL이라는 세계 1위 기업을 키워냈다. CATL은 지난달 한 번 충전으로 1000㎞를 달릴 수 있는 배터리(CTP 3.0)를 공개했는데, 이는 미국 전기차 업체 루시드가 보유한 기존 최대 주행거리 기록(837㎞)을 넘어서는 것이다. 최근 공개된 현대 ‘아이오닉6′ 주행거리(524㎞)의 1.9배에 달한다. 전 세계 전기차 판매 1위이자 배터리 부문 세계 3위 업체인 BYD 역시 2020년 ‘블레이드 배터리’라는 신기술을 개발해 주목받았다. 블레이드 배터리는 배터리를 더 얇고 길게 만들어 배터리팩에 칼날(블레이드)처럼 끼워넣는 방식인데, BYD 측은 기존 삼원계 배터리보다 안전성이 높다고 설명한다.

그래픽=김성규

◇품질 장벽 넘을까

외형상으로 보면 중국은 전기차 수출에서도 이미 최강국 반열에 올랐다. 지난해 중국은 미국(11만대)이나 독일(23만대)보다 2~3배가량 많은 50만대를 수출했다. 수출 물량의 절반(23만대)은 전기차 2위 시장 유럽에 팔았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중국 전기차의 한계가 뚜렷이 드러난다. 유럽으로 수출된 중국산 전기차는 대부분 테슬라나 폴스타(지리자동차에 인수된 볼보의 전기차 브랜드) 등 중국에서 생산된 해외 브랜드들이다. 순수 중국 브랜드 전기차 중 지난해 유럽에서 가장 많이 팔린 모델은 상하이자동차의 MG5로, 총 5424대가 팔려 판매 순위가 전체 35위에 그친다. BYD의 당(1068대), 아이웨이즈의 U5(946대), 샤오펑의 G3(438대) 등도 중국 내 인기에 비하면 성적표가 초라하다. 해외 유명 자동차 브랜드 관계자는 “중국 전기차가 아무리 가격이 저렴하고 성능이 우수해도 브랜드 신뢰도가 낮은 중국 업체들이 오랜 역사와 기술력을 가진 유럽 브랜드를 따라잡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중국 내에서도 중국산 전기차 품질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지난달 중국에서는 BYD 전기차 3대가 잇따라 배터리 문제로 주행 중 화재가 나는 사고가 발생했다. 시장조사 업체 SNE리서치는 “BYD가 안전하다고 발표한 블레이드 배터리에도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8~9월에는 중국판 테슬라로 불리는 니오와 샤오펑의 전기차가 자율주행 중 대형 추돌 사고를 냈다. 두 사고 모두 평범한 도로에서 직선 주행 중 전방의 사물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강하게 추돌한 것이어서 중국이 자랑하는 자율주행 기술이 부풀려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다.

업계에서는 중국 당국의 통제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전기차 사고나 품질 문제가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중국산 전기차를 구매한 중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한 설문조사에서 약 70% 응답자가 “구매를 후회한다”고 답했다. 2018년 중국 전기차 리콜률이 10.8%에 달했다는 보고도 있다. 웨이보 등 중국 내 소셜미디어에는 중국산 전기차의 실주행거리가 광고보다 짧다는 불만 글이 자주 올라온다. 와이어드는 저렴한 가격으로 중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훙광미니 시승기에서 “‘전자식 주행안전 장치(ESC)’가 들어가 있지 않을 정도로 안전성이 취약하고, 스티어링(조향장치)이 잘못돼 있다”며 “완성도가 떨어지는 10점 만점에 5점 정도의 전기차”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전기차 관련 기술을 놀라운 속도로 끌어올린 것은 분명하지만 외형과 양적 성장에만 치중하다 보니 허점이 노출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앞으로 내실을 다지고 기술적 성숙도를 더 높이지 못할 경우 중국의 전기차가 자국 시장에서만 팔리는 ‘절반의 굴기’에 그칠 것이라는 얘기다. 애덤 민터 블룸버그 칼럼니스트는 “전기차의 질보다 양에 중점을 둔 정부의 노력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중국 정부는 현지 업체를 지원하는 역할을 줄이고, 업체들이 품질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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