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슈퍼마리오'의 씁쓸한 퇴장..이탈리아 내각, 결국 붕괴의 길로
오성운동 등 연정 3개 정당
드라기 내각 신임 투표 보이콧
10월 초 조기 총선 가능성 커져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가 이끌어온 거국 내각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불거진 내부 갈등을 수습하지 못하고 끝내 붕괴됐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드라기 총리는 21일(현지시간) 퀴리날레궁에서 열린 오전 회의에서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에게 사임서를 제출했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면서 국정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당분간 직책을 유지해달라고 요청했다.
앞서 연립정부 구성 정당 간 내분으로 드라기 총리가 1차 사퇴 의사를 밝혔을 때 마타렐라 대통령은 이를 수용하는 대신 의회에 재신임을 묻는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주요 연정 파트너들이 신임투표까지 거부하면서 마리오 총리는 결국 물러나게 됐다.
이탈리아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이탈리아 연립정부를 구성해온 정당들인 오성운동(M5S)과 전진이탈리아(FI), 동맹(Lega) 등은 전날 상원에서 진행된 드라기 내각에 대한 신임투표를 보이콧했다. 신임투표안은 찬성 95표, 반대 38표로 통과됐으나 이들 주요 정당의 불참으로 의미를 두기 힘들게 됐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이제 새 총리 후보자를 지명할지 혹은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할지 결정해야 한다. 이탈리아 정계와 외신들 사이에선 9월 말이나 10월 초 조기 총선을 실시하고, 그때까지 드라기 총리가 임시로 내각을 이끄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드라기 총리는 2012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로서 붕괴위기에 빠진 유로존을 구해내며 ‘슈퍼 마리오’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지난해 2월 코로나19 대응 실패로 물러난 오성운동 당수 주세페 콘테 총리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이후 위기에 빠진 이탈리아 경제를 안정적으로 이끌며 호평을 받았다.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아온 드라기 총리가 사임까지 이르게 된 것은 오성운동이 지난 14일 내각 신임안과 연계돼 있던 상원의 민생지원법안 표결에 불참한 것이 발단이 됐다. 에너지 위기와 물가 상승에 따른 대책을 두고 드라기 총리와 이견을 보여온 오성운동이 내각의 존립까지 흔드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이에 드라기 총리는 연정의 핵심인 오성운동 없이 내각을 이끌 수 없다며 사의를 밝혔다.
일각에선 우크라이나 전쟁이 이탈리아의 내각 붕괴에 끼친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탈리아는 역사적으로 러시아와 가까운 나라였다”며 “러시아를 강력하게 비난하고 침략에 대해 강경했던 드라기의 입장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 약속은 전통적으로 러시아에 호의적이었던 오성운동을 불안하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탈리아는 에너지 위기와 인플레이션, 코로나19 재확산 등 난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조타수를 잃게 됐다. 이탈리아 총리 출신인 파올로 젠틸로니 유럽연합(EU) 경제 담당 집행위원은 트위터에서 이탈리아 정치권의 무책임함을 성토하며 이탈리아는 ‘퍼펙트스톰’(초대형 복합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음 총선에서 극우정당인 ‘이탈리아 형제들(FdI)’이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사회적인 격변도 예상된다.
EU 전체적인 영향도 적지 않다. 유럽중앙은행(ECB)의 긴축재정에 리더십 공백까지 맞물리며 경제적 불확실성은 한층 커지게 됐다. 이탈리아의 다음 총선에서 반EU·친러 성향의 정당들이 연립정부에 진출해 목소리를 내게 되면 EU의 단결이나 대러 전선에 균열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밀라노 폴리테크니코의 줄리아노 노치 교수는 “드라기 총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진영 내에서 유럽의 기준점이었다”며 “그가 없으면 상황은 복잡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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