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막는 '손배소'..사측 "파업부터 풀라" 노동계 "노조 파괴"
하청업체 '개별 업체와 면책 협의' 제안..협상 진전 안 돼
노조 "사실상 교섭 타결 않겠다는 원청 개입 있었을 것"
지난 20일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조선하청지회)는 사측과의 교섭에서 임금 원상회복(30% 인상) 요구를 사실상 철회했다. 대신 파업 종료 이후 사측이 노조원들에게 청구할 ‘민형사상 책임’을 면제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하청업체는 “파업에 참가한 조합원에 대한 손해배상 등 민형사상 면책은 개별 업체와 협의한다”는 안을 제시했다. 협상은 더 이상 진전될 수 없었다.
김형수 조선하청지회장은 21일 통화에서 “0.3평에서 투쟁을 벌이는 유최안 동지(하청지회 부지회장)의 건강이 크게 걱정되는 상황에서 다 내려놓고 마무리하자고 판단한 뒤 조합원들을 설득시켰다”며 “그러고선 교섭에 들어갔는데 하청업체에서 ‘민형사상 면책은 개별 업체와 협의한다’는 안을 내놨다. 당초 하청업체는 원청에서 어차피 손배 등 민형사 소송을 진행하니 굳이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었는데 바뀐 것”이라고 했다.
노조활동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가장 손쉬운 ‘노조 파괴’ 수단으로 활용되곤 한다.
2011년 10월8일 유성기업이 ‘창조컨설팅’ 자문을 받아 만든 노조 파괴 전략 문건에는 이런 내용이 적나라하게 나온다.
유성기업은 ‘불법행위 시 민형사상 법적 대응을 통해 무력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고액의 손해배상 및 가처분 신청 등을 통해 경제적 압박을 가중시켜 활동을 차단하고 식물노조로 만든 뒤 노조 해산 유도’하기로 전략을 세웠다.
실제 유성기업은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을 상대로 4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쟁의행위는 본질적으로 사용자에게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손해를 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법원이 특수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으면 쟁의권 행사는 늘 ‘위법’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한국 법원은 노동자들의 쟁의행위 정당성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대법원은 2011년 정당성에 대한 판단 기준을 종래 형사사건에서 적용한 기준과 동일하게 제시했다. 정당한 쟁의행위는 우선 주체가 단체교섭의 주체가 될 수 있어야 하고, 단체교섭과 관련해 근로조건의 유지와 개선 등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폭력이나 파괴 행위를 수반하는 등 반사회성을 띤 행위가 아닌 정당한 범위 내의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조경배 순천향대 법학과 교수는 “이는 결국 쟁의행위를 업무방해죄와 동일하게 해석하는 것으로, 쟁의권 행사 자체를 원천적으로 범죄시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며 “쟁의행위의 폭을 협소하게 만들어 쟁의 관련 당사자들이 전혀 갚을 능력도 없는 거액의 금액을 배상하도록 만든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는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에 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김 지회장은 “원청 개입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며 “사실상 교섭을 타결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보인다. 이는 백기투항 정도가 아니라 ‘목숨을 내놔라, 노동조합을 접으라’는 신호로 느껴지고 있다”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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