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당사자에 '사후 통지' 없는 통신조회, 헌법불합치"
내년 말까지 대체 입법 요구
이동통신사가 수사기관 등에 가입자 개인정보를 제공하고 당사자에게 조회 사실을 통지하지 않아도 되도록 한 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수사의 신속성 등을 이유로 마구잡이식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해 온 수사·정보 기관과 정보를 제공한 이동통신사에 대한 최소한의 통제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다.
헌재는 21일 한국형사소송법학회, 참여연대 등이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3항이 위헌이라며 각각 낸 헌법소원 4건을 심리한 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불합치란 심판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보지만 사회적 혼란 등을 막기 위해 한시적으로 법적 효력을 인정해주는 결정이다. 헌재는 2023년 말까지 국회가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했다.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 조항은 2024년 1월1일부터 효력을 상실한다.
심판 대상 조항은 ‘전기통신사업자는 수사기관 등이 이용자의 통신자료 제출을 요청하면, 그 요청에 따를 수 있다’는 내용이다. 수사기관은 이 조항에 근거해 법원의 허가 없이도 통신사업자를 통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 개인정보를 가져갈 수 있었다. 조회 사실을 대상자에게 통지하지 않는 데다 조회 이유도 알 수 없어 시민사회는 2000년대부터 기본권 침해 등의 문제를 제기해왔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지난해 수사 과정에서 정치인·기자는 물론 수사와 무관한 일반 시민 등 300여명의 통신자료를 조회한 사실이 확인돼 ‘통신 조회’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헌재는 공수처의 수사 행태가 드러난 이후 한국형사소송법학회가 낸 헌법소원과 참여연대 등이 2016년 낸 헌법소원 사건을 병합해 심리해왔다.
헌재는 수사·정보 기관이 영장 없이 통신 자료를 제출받는 ‘통신 조회’ 행위 자체는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봤다. 다만 수사기관이 통신 자료를 취득한 이후 당사자에게 그 사실을 알리는 절차가 마련되지 않은 점은 위헌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사후통지 절차를 두지 않아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 침해된다는 것이다. 헌재는 “당사자에게 (통신 조회 사실을) 알리는 것은 당사자가 기본권 제한 사실을 확인하고 정당성 여부를 다툴 수 있는 전제조건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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