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무차별 통신조회' 수사관행에 제동.."사후에라도 알려야"

김희진 기자 2022. 7. 2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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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7월 심판사건 선고에 참석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영장도 없이 마구잡이로 개인정보를 가져가던 수사기관의 관행에도 변화가 따를 것으로 보인다.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 등 수사·정보기관이 지난해 이동통신사 3곳에서 영장 없이 넘겨받은 통신자료는 모두 504만456건에 달한다.

수사기관의 ‘무차별 통신조회’ 관행을 규제해야 한다는 지적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됐다. 조회 당사자들이 직접 통신사에 요청하지 않으면 조회 사실을 알 길이 없다는 점이 특히 문제로 지적됐다. 국가기관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법원이 발부한 영장도 없이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반복적으로 사찰 논란으로 비화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범인을 잡으려면 통신자료 조회가 필요하다’는 수사기관의 논리에 막혀 개선되지 않았는데, 헌재가 이번 결정으로 일부 제동을 건 것이다.

헌재는 21일 수사기관이 영장없이 통신자료를 취득할 수 있도록 한 조항 자체는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국가안전보장이란 목적이 정당한 데다, 수사 초기 단계에서 피의자 등을 특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집되는 통신자료는 “최소한의 기본정보”라고 봤다. 수사기관은 정보통신사업자로부터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등을 넘겨받을 수 있다.

헌재는 이 조항이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수사기관의 요청에 따를 수 있다’고 규정할 뿐 의무를 부과하거나 강제하지 않는다고 했다. “영장주의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헌재는 2012년 ‘통신자료 제공 조항이 통신의 비밀과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며 제기된 헌법소원 심판청구 사건에서도 “공권력의 강제에 의한 것이 아리어서 공권력의 기본권 침해라고 보기 어렵다며 각하한 바 있다.

헌재가 문제삼은 것은 절차이다. 통신자료 취득에 대한 사후통지 절차를 두고 있지 않은 것은 “적법절차원칙에 위배돼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수사기관이 필요에 따라 통신자료를 취득한 후 당사자에게 취득 사실을 알리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헌재는 판단했다. 당사자는 이를 바탕으로 통신자료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제공됐는지, 수사기관의 부당한 행위는 없었는지 따져 적절한 권리구제절차를 취할 수 있다고 했다.

헌재는 지금도 당사자가 통신사에 요청할 경우 통신자료 제공내역을 열람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사유나 기한 등 열람 내역에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수사나 정보수집 활동에 어려움이 발생하거나 기본권 침해가 예상될 경우 통지 예외 사유를 마련할 수 있다고도 했다. 사후통지 절차를 두더라도 수사상 어려움 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종석 재판관은 사후통지 절차를 마련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소수 의견을 냈다. 통신자료 취득 요건도 더욱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재판관은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취득은 엄격한 요건 아래 제한적으로 허용돼야 한다”며 “(현재 법 조항은) 포괄적 규정으로 수사기관 등의 남용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했다.

2016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통신자료 무단수집 헌법소원 심판청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정근기자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수사기관은 통신자료 조회를 보다 신중하게 할 수밖에 없게 됐다. 지금처럼 무더기로 개인정보를 조회한 사실이 당사자에게 통보될 경우 집단 반발에 부닥칠 수 있기 때문이다. 헌재는 정보를 제공한 통신사는 반드시 당사자에게 사후 통지를 하도록 내년 안에 법을 바꾸라고 결정했다.

이번 결정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의 개인정보 침해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6년 참여연대 등이 낸 통신조회 관련 헌법소원을 대리하고 있는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수사기관의 통신조회 대상이 된 당사자는 조회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통신사나 수사기관에 책임을 묻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개인정보 침해 가능성 자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헌재는 이동통신사가 수사기관에 자료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없다고 보지만 대법원은 ‘수사기관이 절차에 따라 요청할 경우 통신사는 마땅히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고 양 변호사는 설명했다. 통신조회 대상자가 수사기관의 불법성에 대해 권리구제를 원할 경우에도 통신사는 자료를 제공한 책임에서 자유롭고, 수사기관은 불법성을 개인이 직접 입증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쉽다는 것이다.

지난해 통신조회 문제가 ‘사찰’논란으로 번졌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자체 통신수사 통제 방안을 마련해 4월1일부터 시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후속 조치로 향후 국회가 해당 법 조항 개정을 추진하면 논의 과정에 적극 참여할 것”이라며 “특히 법 개정이 이뤄지기 전이라도 공수처가 자체 마련한 제도적·기술적 통제장치를 통해 적법성을 넘어 적정성까지도 지속적으로 확보하겠다”고 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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