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연못에 피어난 황금연꽃 .. 설화의 한장면 보는듯

김예진 2022. 7. 21.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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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셸 오토니엘: 정원과 정원'전
유리구슬 예술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시립미술관·덕수궁에 작품 74점 선봬
역사적 공간 속에 어우러진 현대미술
덕수궁 여름풍경과 함께 색다른 매력
신작 '자두꽃', '루브르의 장미' 변형 작품
"생명력과 저항·끈기·부활 메시지 전해"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목욕하고 간다는 우리나라 설화를 그도 알까. 덕수궁 한편, 숨어있듯 자리한 연못에 프랑스 현대미술가 장미셸 오토니엘이 펼쳐낸 설치 작업 ‘황금 연못’은 선녀가 놓고 간 천상의 보석들을 보는 듯하다. ‘황금 연못’은 스테인리스 스틸에 금박을 입힌 작품들로, 연꽃이 핀 듯 수면 위로 솟아올라온 설치물 ‘황금 연꽃’ 2점과 ‘황금 장미’, ‘장미꽃 봉오리’, 연못 중앙 작은 섬에서 자라고 있는 소나무에 걸려 있는 설치물 ‘황금 목걸이’ 3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연못 수면 위로 작은 어리연꽃이 뒤덮여 특별한 도화지가 된다. 비가 오는 날 연꽃들은 입을 다물어 수면은 초록으로 빼곡해지고 해가 나면 연꽃들이 입을 벌려 본연의 노란색을 드러낸다. 그 가운데 금빛 꽃잎으로 피어나는 오토니엘 작품은 아름다움의 절정에 이른 덕수궁 여름 풍경을 화려하면서도 조화롭게 꾸민다. 오토니엘 ‘황금 연못’ 주변으로는 덕수궁 돌담길과 궁궐 돌, 기왓장이 차분하게 눈에 들어오면서 도심 한가운데 시공간을 초월하는 신화적 공간을 연출한다.
덕수궁 ‘황금 연못’ 설치 전경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서울시립미술관이 ‘장미셸 오토니엘:정원과 정원’을 개최하고 있다. 서울시 중구 덕수궁길에 위치한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1층 전시장과 미술관 건물 앞 야외 조각공원, 덕수궁 내 연못에 조각과 설치, 회화 등 74점을 선보인다. 오토니엘 개인전으로는 2011년 프랑스 퐁피두센터 전시 이후 최대 규모라는 설명이다.

그는 동시대 대표적인 프랑스 현대미술가로 인도 유리공예인들과 협업해 만드는 유리구슬, 유리벽돌 작품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이 오토니엘 평면 작품 ‘루브르의 장미’를 영구소장하고 있는데, 루브르가 현대미술가 작품을 영구소장키로 결정한 것은 이때가 최초였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정원과 연못에도 그의 조각 작품이 영구 설치돼 있다. 이 역시 프랑스에서는 특별한 기록이다. 베르사유 궁전 정원에 설치물이 들어선 건 1700년대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 시절 이후 최초다.

전시는 그의 상징인 유리구슬, 유리벽돌 작품이 미술관 실내전시장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 가운데 일부 구슬이 슬그머니 밖으로 굴러나와 스스로 정착한 것처럼, 미술관 주변 야외를 꾸민다. 전시는 자연스럽게 공간 경계를 넘나든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전시장 설치 전경
특히 대표적 서구 궁궐 건축물과 연못에서 펼쳐냈던 작품이 고스란히 한국 궁궐과 연못에 펼쳐진 모습은 색다른 매력을 뽐낸다. 동서양 전통 풍경과 작품 어우러짐을 비교하게 돼 흥미롭다.

전시장에서 만난 오토니엘은 왜 덕수궁을 택했는지, 덕수궁 안에서도 왜 이 연못을 전시장으로 택했는지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덕수궁에 처음 왔을 때 굉장히 한적함을 느꼈다. 참 걷기 좋은 곳이구나 생각했다. 여러 내적인 움직임, 명상하는 시간을 갖기에 참 적합한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머물면서 주변을 감상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연못 주변을 돌면서 시간을 충분히 갖고 싶어졌다. 특히 이 연못은 무언가 내밀한 공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덕수궁이라는 역사적 공간 안에 또 다른 별개 공간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덕수궁 중에서도 내밀하게 다가오는 공간을 일부러 선택했다.”

이어 그는 “한국 정원이 갖고 있는 어떤 시적인 느낌이 있다. 고즈넉하고 시적인 분위기에 제 작품이 스며들 수 있으면 좋겠다. 커다란 설치물로 힘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고, 사람들이 이 연못을 돌며 마치 자연과 대화하듯, 은밀하고 살며시 포개져 있는 제 작품과 조화를 느끼길 바랐다. 덕수궁이 갖고있는 역사적 의미를 알고 있기에 이곳에 제 작품을 설치할 수 있어 너무나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작품 ‘아고라’ 안에 앉아있는 장미셸 오토니엘 작가
덕수궁 연못 한가운데에는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는 작은 섬이 있다. 그는 “제게는 이 연못 한가운데 있는 작은 섬이 마치 보물섬처럼 느껴진다”고도 했다.

새로운 나라를 향한 꿈과 좌절이 깃든 대한제국 황궁 덕수궁의 역사에, 작가 개인이 가진 서사가 묘하게 공명하기도 한다. 그는 상처를 아름다움으로 승화하고 극복한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성소수자인 그는 젊은 시절 사제와 사랑에 빠졌고, 사제는 끝내 목숨을 끊었다. 오토니엘의 탐미주의는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승화하는 데서 나와 유독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는 평을 듣는다.

그가 이번 서울 전시를 준비하며 주목한 소재는 자두꽃(오얏꽃) 문양이었다. 궁궐 등 한국의 전통 건축물 곳곳에서 찾아낸 자두꽃 문양이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이에 새로운 평면작품 ‘자두꽃’ 연작을 이번 서울 전시에서 선보였다. 루브르 박물관에 영구소장돼 화제가 됐던 작품 ‘루브르의 장미’를 변형시킨 자매 격 작품이어서 ‘자두꽃’에 담긴 작가의 애정과 의미가 남다르게 전해진다.
‘자두꽃’ 삼면화
‘루브르의 장미’는 2019년 파리 루브르박물관 유리피라미드 개장 3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 정부 의뢰로 오토니엘이 제작한 작품이다. 2년간 루브르박물관 소장품을 살펴보며 박물관 상징이 될 소재를 찾았고, 오토니엘이 페테스 파울 루벤스의 회화 ‘마리 드 메디치와 앙리 4세의 대리 결혼식’(1622∼1625)에서 화면 정중앙 인물들의 발밑에 떨어진 장미를 포착했다. 이 장미에서 받은 영감을 추상적 형태로 백금박 바탕에 검은색 잉크로 그려냈다. ‘자두꽃’은 마찬가지로 백금박 바탕을 캔버스에 칠한 뒤, 자두꽃의 꽃잎을 표현하는 붉은색 잉크와 꽃가루를 상징하는 노란색 잉크를 사용했다. 꽃가루 흩날리는 듯한 노랑의 움직임이 캔버스 위에서 특유의 에너지를 낸다.

미술관 측은 “오토니엘이 덕수궁에 스민 한국적 정서를 이해하는 동시에 관람객에게 자두꽃이 상징하는 생명력과 저항, 끈기, 부활 이미지를 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미술관은 덕수궁 관람 후 서소문 본관 야외 조각공원을 거쳐 전시실로 이어지는 관람동선을 추천한다. 8월7일까지.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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