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앞에서 밥 그만 먹고 싶은데"..대학 청소노동자의 '눈물' [밀착취재]

김수연 2022. 7. 21.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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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고대 학내 청소노동자 휴게실 둘러보니
곰팡이·매연 뒤덮인 지하주차장 휴게실 多
식사·세면·빨래 5평서 여러명이 함께 해결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연세대 신촌캠퍼스 학생회관 지하에 위치한 청소노동자 휴게실. 화장실을 마주보고 식당 옆에 위치해 있었다. 5평 남짓한 공간을 5명이 함께 사용한다고 한다.
“휴게실이 화장실 바로 앞, 학생 식당 바로 옆이에요. 요즘 같은 더운 날에는 음식물 냄새랑 지린내가 이따금 들어오기도 해요. 창문이 없어서 환기도 안 되고… 5명이 같이 쓰는데 좁다 보니 잠깐 눕는 것도 여의치 않네요. 나가는 문인 줄 알고 학생들이 그냥 벌컥벌컥 열고 들어오는데, 쭈그려 앉아 밥 먹다 눈 마주치면 비참하죠.”

연세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9년 넘게 청소노동자로 근무 중인 이윤진(67)씨는 자신의 담당 구역인 학생회관의 화장실 청소를 마치고 돌아온 휴게실에서 이같이 말하며 눈물을 닦아냈다. 원래는 파란색이었을 유니폼 상의는 이씨가 온몸에 흘린 땀으로 짙은 남색이 된 상태였다. 그는 “샤워실이 없어 화장실에서 대충 물만 묻히고 만다”며 “제가 여기 있던 근 10년 동안 매년 학교 측에 최소한의 시설 개선을 요구하지만, 언론에서 잠깐 조명되면 그때만 귀 기울여주는 척, 실상 달라진 부분은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대학 내 청소·경비노동자들의 여름 투쟁이 날이 갈수록 거세지는 모양새다. 대학 내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우를 원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이들은 치솟는 물가에도 낮은 월급과 열악한 학내 휴게실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실제 지난 20일과 21일 이틀에 걸쳐 연세대 신촌캠퍼스와 고려대 서울캠퍼스를 둘러본 결과 몇몇 휴게실을 제외하고는 노동자들이 지적한 대로 ‘인간적인 대우’와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연대 신촌캠퍼스 건물 곳곳에 있는 휴게실 다수가 창문 없이 지하에 위치해 있었고, 노동자들은 이곳에서 휴식과 식사, 세면, 빨래 등을 모두 해결했다. 세탁·탈수 시설은 어느 곳에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학생회관에서 근무하는 이모씨는 “휴게실 안에 싱크대가 없어서 집에서 싸온 도시락통 설거지도 못하고, 땀에 젖은 옷이나 수건 등도 세탁할 수 없다”며 “화장실에서 하면 항의하는 학생들도 있고 눈치 보여서 많은 짐을 들고 먼 길을 출·퇴근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연세대 신촌캠퍼스 제3공학관 지하주차장에 위치한 청소노동자 휴게실. 환풍기 1대가 다였다. 차량이 지속적으로 드나들어 문을 열어두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제3공학관 지하 2층에 위치한 휴게실은 매연으로 인한 찌든 때, 습한 지하주차장 공기로 인한 곰팡이로 뒤덮여있었다. 한 청소노동자는 “최근 학교에서 지하주차장에 있는 휴게실은 위치를 이동해 주겠다고 했다는데, 지금 건물 내 공간이 마땅치 않아 잘 모르겠다”며 “다른 건 모르겠고, 일 마치면 속옷까지 땀에 절어서 끈적거리는 몸 간단하게라도 씻게 작은 샤워실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대 서울캠퍼스 휴게실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면과 샤워를 위한 시설이 있긴 했지만, 그곳에서 샤워를 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고 한다. 법학관 구관 지하에 위치한 휴게실은 들어갈 때부터 옅은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휴게실에서 나와 안쪽으로 더 들어가니 청소노동자들이 세면 시설이라고 부르는 공간이 있었지만, 칸막이에 가려진 수도꼭지 하나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다. 배수로 등도 마땅치 않았다. 수도꼭지 주변에는 전기 포트 2개가 놓여 있었는데,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아 물을 끓여 쓰는 것이라고 했다.
21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서울캠퍼스 법학관 구관 지하에 위치한 세면 시설. 청소노동자들은 개방된 공간에 가림막만 있어 불안한 마음에 샤워는 거의 하지 못한다고 전했다.
 
법학관 신관 지하주차장 안쪽에도 샤워 시설이 있긴 했지만, 바로 옆 문에 ‘위험 출입금지’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샤워실 바로 옆에 오수를 처리하는 펌프장이 있는 것인데, 최근 덥고 습한 날씨에 악취는 물론 모기까지 출몰해 이 샤워실을 사용하는 이는 거의 없다고 한다.

이곳에서 13년 동안 근무했다는 한 청소 노동자는 “학교가 우리는 없어도 되는, 있으나 마나한 사람들로 생각하는 것 같다”며 “그러니 샤워실이라고 만들어준 게 저렇게 위험 표시가 붙은 곳 바로 옆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현재 연대와 고대를 포함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내 13개 대학 등 사업장들은 ‘원청’인 학교 측에 임금 인상과 샤워장 설치 등을 요구하며 지난 3월부터 학내 집회와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이날도 연대에서는 학교 측에 책임을 묻는 청소·경비노동자들의 집회가 진행됐다. 캠퍼스 곳곳에는 ‘폭염에도 씻지 못하는 청소노동자’, ‘학교가 책임져라’ 등의 현수막들이 붙어있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 3월 미화직 시급 400원, 경비직 420원 인상을 권고안으로 내놨으나 사측인 16개 용역업체가 이를 거부하자, 노조는 협상이 지지부진한 원인으로 원·하청 구조를 지적하며 결국 학교가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글·사진=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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