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보안' 앞세워 수백만건씩 쓸어담던 '수사 관행' 제동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 등 수사·정보기관이 지난해 이동통신사 3곳에서 영장 없이 넘겨받은 통신자료는 모두 504만456건에 달한다. 헌법재판소가 이같은 통신자료를 확보한 뒤에는 당사자에게 알리는 절차를 마련하라는 취지의 결정을 하면서, 그간 ‘수사 편의’ 만을 앞세우던 관행에 최소한의 제어장치가 마련될 전망이다.
21일 헌법재판관 9명 전원이 통신자료 제공을 규정한 전기통신사업법 조항에 위헌 판단을 내놓은 핵심 이유는, 개인정보가 국가기관에 의해 이용(침해)된 사실을 알리는 사후 통지 절차가 아예 없다는 점이다.
통신자료는 주로 범죄 수사 초기에 피의자 또는 피해자를 특정하기 위해 활용된다. 이동통신 가입자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등이 통신자료에 해당한다. 그 자체로는 ‘통화 내용’ 만큼 내밀한 정보를 담고 있지 않지만, 수사기관은 통신자료를 통해 누가 누구와 얼마나 자주 통화하는지 등 ‘개인정보 네트워크’를 재구성할 수 있다. 법원의 영장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빠르게 수사 단서를 확보하려는 수사기관에게는 매우 유용한 도구이지만, 그만큼 개인정보침해 논란이 클 수밖에 없었다.
헌재는 이날 통신자료가 범죄 수사 등에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전제하면서도 “수사기관 등이 통신자료를 취득한 이후에는 수사 등 정보수집 목적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통신자료 취득사실을 이용자에게 통지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했다. 이를 통해 당사자는 수사기관이 어떤 목적으로 자신의 개인정보를 가져갔는지, 불법·부당하게 자신의 정보가 쓰이지 않았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고 권리구제 가능하다는 것이다.
수사기관 등은 지난 10여년간 ‘수사 보안이 깨진다’는 이유로 사후 통지 절차 마련에 반대해왔다. 이에 대해 헌재는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 수사나 정보수집 활동이 종료되고 일정 기간이 지난 뒤에 통신자료 취득사실을 고지하도록 하는 방법도 가능하다”고 했다. 충분히 대안을 고민하지 않고 무턱대고 수사 편의만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헌재는 한발 더 나아가 “현재도 자신의 통신자료 제공내역 열람을 통신사에 요청할 수 있지만, 이 경우 요청일로부터 1년 전까지 내역만 열람할 수 있고, 구체적으로 어떠한 사유로 자신의 정보가 제공됐는지 정확한 사유를 알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향후 국회 법개정 역시 사후 통지 절차 마련뿐만 아니라 통지 내용도 어느 정도 구체성을 띄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헌법적 해석인 셈이다.
다만 헌재는 국가인권위원회와 인권단체 등이 요구해온 통신자료 제공에 대한 사법적 통제(법원 영장) 필요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이동통신사 자체 판단으로 통신자료를 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수사기관 요청에 대한 사법적 통제가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동통신 3사 모두 수사기관 등의 요청이 있으면 100% 통신자료 제공에 응하고 있다. 앞서 헌재는 2012년에도 같은 판단을 내놨다.
2010년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통신자료 제공에 대한 사법적 통제 필요성 등이 제기됐지만, 여야는 입법적 해결보다는 ‘정치인·민간인 사찰’ 등 정쟁 소재로 삼아왔다. 현재 국회에는 여야가 발의한 11건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사후 통지 절차와 관련해 지체없이 또는 10~30일 내에 통신자료 제공 사실을 이동통신 가입자에게 통지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일부 법안은 국가안전보장 위협, 공정한 사법절차 방해 등의 우려가 있을 때 법원 허가를 받아 60일까지 통지를 유예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수사기관들은 국회 입법 논의 과정에서 ‘사후 통지 시점’을 최대한 늦추는데 주력할 전망이다.
이동통신업계는 헌재 결정을 반기는 분위기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그동안 일부 국가기관이 임의로 통신자료 조회를 요청하는 경우가 있어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이라고 했다.
손현수 기자 boysoo@hani.co.kr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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