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자들이 본 개헌·강제징용 해법은?

홍진아 2022. 7. 21.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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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전 총리 사망·자민당 압승…'개헌 논의' 가속화?

이달 일본 내에서는 중요한 사건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8일 아베 전 총리의 총격 사망사건과 10일 치러진 참의원 선거입니다.

참의원 선거 결과 집권 자민당은 압승했습니다. 새로 뽑는 125석 가운데 연립여당인 자민당(63석)과 공명당(13석)이 76석을 얻었고, 일본유신회와 국민민주당 등을 포함해 헌법 개정에 긍정적인 이른바 '개헌 세력'이 개헌안 발의에 필요한 의석 3분의 2를 확보했습니다.

선거 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기자회견을 열고 개헌 의지를 밝혔습니다. 특히, 한·일 관계에서 눈여겨 봐야할 부분은 전범 국가로서 전쟁 포기와 전력 보유·교전권 불인정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 9조 개정입니다. 자민당은 이 조항에 군대와 유사한 조직인 자위대를 명기하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일본 국민들도 개헌에 긍정적인 듯 보입니다. 아사히 신문이 지난 16~18일 한 여론조사에서 절반(51%)이 넘는 유권자들은 '헌법 9조를 개정해 자위대 존재를 명기해야 한다'고 답했고, 반대는 31%에 그쳤습니다.

여기에 개헌은 아베의 '유산(legacy)'으로도 꼽힙니다. 갑작스런 아베 전 총리의 사망으로 개헌에 속도가 붙을 거란 관측도 나옵니다. 일본 국내 사정뿐 아니라 올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부상,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등 불안정안 안보 상황도 개헌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인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일 관계를 오랫동안 취재해 온 한국과 일본 기자들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누고, 해법을 논의하는 포럼이 오늘(21일)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 주최로 열렸습니다.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가 21일 개최한 한일 언론포럼에 일본 기자들이 화상으로 참여하고 있다.


"개헌, 아베 사망으로 구심력 잃어"

일본 기자들은 공통적으로 개헌을 추진하더라도 시간이 걸릴 거라고 봤습니다. 다만, 기시다 총리 임기가 끝나는 2024년 9월까지는 어떻게 해서든지 발의를 하지 않겠느냔 전망이 우세합니다.

또 합의된 개헌안 도출도 쉽지 않을 거로 전망했습니다. 일본 보수층의 대표였던 아베 전 총리 사망으로 당 내 구심력이 약해져 개헌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각기 다른 의견을 조율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고, 국민 여론도 찬성 비율이 높긴 해도 반대 의견 또한 무시 못 할 비중입니다.

미네기시 히로시 일본경제신문 논설위원은 "일본에서 아베 전 총리한테 이야기하면 '의견이 잘 조율된다', '아베 전 총리 허락만 받으면 된다'는 느낌이 있었다"며, "자민당 내 100명 정도 되는 제1 파벌의 수장이었던 아베 전 총리가 사망하면서 당 내 파벌이 굉장히 유동적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합니다.

사와다 가츠미 마이니치신문 논설위원은 "헌법 개정안을 발의할 수 있는 '3분의 2' 의석 수를 확보하더라도 구체적 항목에 대해서 하나하나 합의해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현실적 문제를 지적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일본 국민들의) 헌법 개정 찬성이 늘었느냐고 하면 오히려 반대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줄어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헌법 규정과 관련해 자위대 이름을 명기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단 의견이 강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쿠보타 루리코 산케이신문 논설위원은 "아베 전 총리의 사망이 헌법 개정을 가속화 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침공 등을 보며 일본 국민들은 안보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해 있는 상태"라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 '강제징용' 해법엔 "한국이 구체적인 안 가져와야"

한일관계 최대 난제인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대해 일본 기자들은 답변하기를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구체적인 해결책은 한국이 가져와야 한단 것이 일본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말합니다.

극우성향의 산케이신문 쿠보타 논설위원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지만, "한국 정부가 구체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일본 정부도 움직이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쿠보타 위원은 " 정권이 바뀌었으니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바로 태도를 바꿔 달라고 얘기하면 일본 측에서 부응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적어도 안을 제시해줬으면 한다"고 했습니다.

또 "아베 전 총리 시절 '사죄외교'를 그만두자는 전환이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선진국이 된 한국과 대등하게 이야기하자는 여론이 늘었다"며, "윤 정부 출범 이후 일본 측에 협력해달라는 얘기를 계속 하지만 일본 측에서는 한국 국내 문제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한국 대법원은 2018년 신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고 확정 판결을 내렸지만, 이들 기업이 배상하지 않으면서 강제 자산매각(현금화)을 위한 법적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외교부는 이르면 올 가을에 나올 법원의 최종 판단 전 배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관협의회'를 꾸려 해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민관협의회 위원이자, 한국 기자 대표로 포럼에 참석한 길윤형 한겨레 국제부장은 피해자들이 원하는 건 첫째, 일본 기업의 사과와 둘째, 어떤 방식으로든 일본 기업이 배상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길 위원은 "개별적 피해에 대해서 일본 기업이 피해자를 일단 만나 이야기를 들어주고 어떤 식으로든지 죄송하다는 의사를 표명한 뒤 한국 정부가 돈을 지급하면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후 한국과 일본 정부가 실무적으로 협의해서 기금을 만들어 협의하는 방안을 설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사사가세 유지 도쿄신문 정치부 차장은 "일본 정부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말씀드리기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다"며, 한국 입장에서 일본 정부 대응이 차갑게 보일 수 있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최대한 대응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사가세 차장은 "일본 기업 입장에서 피해자들을 만나서 손을 잡고 끝낼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기업이 많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본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어렵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역으로 일본 정부가 다시 과거사에 대해 사죄하고 정리하자고 한다면 한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됐으며, 대법원 판결에 따른 배상 문제는 한국 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박진 장관을 만난 뒤 약식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손 내미는 한국, 손뼉치기 머뭇거리는 일본…"교류부터 확대해야"

일본의 냉담한 반응은 박진 외교부 장관의 방일에서도 확인됐습니다. 외교부는 박진 장관이 방일 기간인 지난 19일 기시다 총리를 예방해 윤 대통령의 한일 관계 개선 의지를 전달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기시다 총리는 예방 직후 약식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이 아베 전 총리에 대한 조문 메시지를 전했다고만 짧게 말하고, 한·일 정상회담이나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엔 답변 없이 자리를 떴습니다.

미네기시 일본경제신문 논설위원은 "저도 냉랭했다고 생각했다"며, "아베 전 총리 사망으로 기시다 총리가 한국에 가까워졌단 인식이 있을 수 있어 일부러 관리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을 전했습니다.

미네기시 위원은 또 "최근에 수면 아래에서 협의하는 한일 양국 간 협상 스타일이 없어졌는데, 부활하지 않을까 싶다"며 과거 한국과 일본 정부 간 물밑 협상의 필요성도 언급했습니다.

사와다 마이니치신문 논설위원은 "한국 정치에서 일본과의 관계는 특히 역사 문제에 있어서 대응하기에 어려운 부분이라 미묘한 핸들링(조정)을 하지 않으면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한국과 일본 기자들은 악화된 한일 관계 개선은 교류 활성화로 해결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김포-하네다 노선 운항 재개에 더해 양국 간 무비자 입국도 허용하자는 겁니다. 다만, 코로나19가 다시 확산하고 있는 상황이라 당장 현실화 되긴 어려워 보입니다.

홍진아 기자 (gin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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