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토에 새긴 인간 욕망, 수천 년 지나 한국 찾다

김유태 2022. 7. 21.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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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메소포타미아, 저 기록의 땅' 展
점토에 쓴 쐐기문자부터
부적처럼 지닌 인장까지
메소포타미아 유물 66점
"最古 문명 명성에 가려져
당대 최첨단이란 사실 잊혀"
`메소포타미아, 저 기록의 땅`에 전시된 `사자 벽돌 패널`을 관람객들이 들여다보고 있다. 기원전 약 604~562년에 만들어졌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진흙에 물을 섞어 끈끈해진 저 단순해 보이는 점토(粘土)는, 고대 근동에선 강력한 주술적 힘을 가진 물건이었다고 한다.

창세신화에서 인간 창조에 사용된 재료도 점토였고, 불로 점토를 구운 벽돌로 쌓아올린 집은 인간의 육체와 신의 조각상을 보호했기 때문이다. 점토에 알알이 박아넣은 문자마저도 무시하지 못할 힘을 가졌다. 점토에 새겨진 기록의 문명, 이를 우리는 메소포타미아로 불러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메소포타미아, 저 기록의 땅' 전시를 이달 22일부터 연다. 세계사 교과서에서나 보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흔적이 한국 박물관을 찾은 건 처음이다. 21일 간담회에서 고대인의 이야기가 조용히 웅성거리는 전시실을 미리 걸어봤다.

박물관 3층에 들어서면, 손바닥보다 작은 쐐기문자 점토판부터 눈에 띈다. 기원전 2600년 전, 니푸르란 지역에서 출토된 '수로에 관한 기록'이다.

당대 통치자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에서 물을 끌어왔는데, 메소포타미아란 단어도 '두 강 사이의 땅'이란 뜻이다. 풍족해진 물은 농업 잉여생산물을 만들어냈고 이는 모두가 농사를 지을 필요는 없다는 뜻이었는데, 농사 대신 사제, 군인, 장인 등 복잡한 인간 군상이 만들어져 점차 도시가 생겨났다. 따라서 수로에 관한 기록은 문명의 스타트라인과 같았다.

수로 기록 옆에 놓인 '은(銀) 채무 변제 증서'와 여기에 찍힌 4인의 인장은 특히 흥미롭다.

쐐기문자로 `보리 수령 내역`을 적은 점토판. 기원전 3000년께 문서 일부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원통형 돌조각에 자신을 증명할 문자와 그림을 음각으로 새긴 채 지니고 다녔다. 딱딱한 인장을 젖은 점토판에 꾹 눌러 굴리면 새겨진 도안이 찍혀 나왔다. 전시된 채무 변제 증서 보관통에는 상환을 확인한 채권자와 '증인 3인' 인장이 보증서처럼 새겨져 있다. 인장은 주로 행정용이었지만 인감도장처럼, 부적처럼 지니고 다녔다고도 전해진다.

많게는 그 수가 3000에 달하는 당대 신들의 흔적도 눈길을 끈다. 주목할 만한 전시품은 '신전용 말뚝' 한 점이다. 무릎을 꿇은 남자 모양의 장식품이 담긴 15㎝ 남짓한 구리 말뚝으로, 신전을 만들 때 기초에 박아둔 것이라 한다. 이곳이 단지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라 신이 영원히 머무는 자리였음을 증명하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시를 기획한 양희정 학예연구사는 "가장 오래된 문명 중 하나라는 명성에 가려져 메소포타미아가 당시 지식, 정치, 사회제도, 예술 면에서 최첨단이었다는 사실은 종종 잊힌다"고 힘주어 말했다.

전시는 끝까지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출구 앞에 놓인 '사자 모양 패널'이 전시 하이라이트다. 이슈타르 문을 장식했다는 사자 모양 벽돌이 방금 시간여행을 마친 관람객을 포효하는 얼굴로 호위한다. 양 연구사는 "초기 문명을 살아가던 인간의 모든 성취의 바탕에 소박한 벽돌 한 장이 있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2024년 1월까지 1년6개월간 열린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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