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틈바구니 속 선택지는?.. '칩4 동맹'에 머리 아픈 삼성·SK

안하늘 2022. 7. 2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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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산업부 반도체 지원책 쏟아내지만
미중 패권 경쟁에 낀 삼성-SK 골머리
"어딜 택해도 위험..대외 불확실성 가중"
취임 후 한국을 첫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과 5월 20일 오후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을 방문, 이재용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두고 충돌하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두 나라 사이에서 난감해졌다. 우리 정부가미국의 손을 잡을 경우 최대 시장 중국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을까 우려한다. 그렇다고 반도체 설계 기술을 미국에 기대는 상황에서 중국 편에 서면 반도체 생산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정부가 반도체 인력 확대 방안, 투자 지원책을 연이어 내놓지만 복잡한 국제 정세에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21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계는 미국이 추진하는 '칩4 동맹'에 가입했을 때 생길지 모르는 위험 요소를 계산하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미국 "한국, 칩4 참여해야"...중국 "NO 외쳐야"

삼성전자 테일러시 파운드리 공장 부지. 삼성전자

조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2년 동안 반도체 수급난을 겪은 뒤 동맹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 행정부는 최근 한국 정부에 칩4 동맹을 위한 반도체 공급망 실무회의를 열겠다고 통보한 뒤 참여 여부를 8월 말까지 알려달라고 했다. 칩4 동맹①반도체 설계에 강점을 가진 미국과 ②소재·장비에 특화된 일본, ③생산 능력을 갖춘 한국과 대만이 모여 반도체 생산 전 과정에서 협력하자는 취지에서 나왔다. 사실상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는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던진 셈인데, 미 정부는 자국 내 반도체 산업에 520억 달러의 보조금과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반도체법을 추진하면서 그 대상에 삼성전자를 넣었다.

미국의 야심찬 계획에 중국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9일 정례 브리핑에서 "세계 경제가 깊이 서로 융합된 상황에서 미국 측의 이런 행태는 흐름을 거스르는 것으로 민심을 얻지 못하며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고 깎아내렸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계열 환구시보와 그 영문판인 글로벌타임스는 21일자 사설에서 "한국은 미국의 위협에 맞서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설계 기술 美에 의존, 中은 최대 고객사..."뭘 선택해도 불확실성 커져"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 AP연합뉴스

복잡한 글로벌 반도체 가치 사슬을 감안하면 우리의 선택지는 애매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 일본은 반도체 장비와 기술 분야에서 압도적 시장 지배력을 갖고 있다. 반도체 장비 1위 업체는 미국의 어플라이어드 머티어리얼즈이고, 3위 역시 미국의 램리서치다. 4위는 일본의 도쿄일렉트론이다. 2위는 네덜란드 ASML인데, ASML 장비 역시 미국 반도체 설계 기술로 제작된 만큼 미국의 입김이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 4개 업체의 장비 시장 점유율은 70%에 육박한다.

반면 중국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최대 고객사다. 미국, 일본 기술로 제조해 중국 기업에 파는 구조다. 지난해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액 1,280억 달러 가운데 대(對)중국 수출은 502억 달러로 약 39%를 차지했다. 홍콩을 포함하면 60%에 달한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과 쑤저우에서, SK하이닉스는 우시와 충칭에서 각각 메모리 반도체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선 우리 정부가 칩4 가입을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미국은 자신들이 가진 다수의 반도체 원천 기술을 가지고 외국의 반도체 생산을 쥐락펴락할 수 있다"면서 "미국의 반도체 동맹에 참여하지 않은 국가는 최악의 경우 반도체 생산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D램 메모리의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이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어 중국이 보이콧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이번 사태가 '제2의 사드 보복'으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반도체 외에 가전,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자동차 등 여러 업종으로 보복의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기업이 통상 문제로 어려움을 겪지 않게 정부가 공급망 문제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반도체 전문가인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20일 기자간담회에서 "칩4 가입은 반도체에 국한된 이야기이지만 어느 한쪽을 선택했을 때 반도체뿐 아니라 다른 산업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며 "국익을 고려해 냉철하게 판단하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역시 깊이 고민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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