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논란' 검·경·공수처 통신자료 수집 변화 불가피
(서울=연합뉴스) 이대희 기자 = 헌법재판소가 수사·정보 기관에 가입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제공하면 통신사업자가 반드시 사후 통지를 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리면서 수사 관행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영장 없이 이러한 자료를 수집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지만, 당사자는 그 사실을 사후에라도 파악하게 돼 '사찰 논란'까지 벌어졌던 광범위한 '묻지마 수집'은 제동이 걸릴 것으로 관측된다.
공수처 무더기 조회로 공론화된 통신자료 조회
헌재가 21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조항은 전기통신사업법 83조 3항 등이다.
이 조항은 이동통신사 등 통신사업자가 영장 없이도 이용자의 ▲ 성명 ▲ 주민등록번호 ▲ 주소 ▲ 전화번호 ▲ 아이디 ▲ 가입일·해지일 등을 수사 기관에 제공할 수 있는 근거다.
검찰·경찰·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등 수사기관은 통상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전화번호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파악하고자 할 때 '통신자료 조회'를 통신사에 요청한다.
예컨대 통신영장을 통해 주요 피의자와 전화 통화 내역이나 카카오톡 데이터 송수신 내역을 확보하면, 수사기관이 손에 쥐는 것은 전화번호뿐이다.
수사기관은 이후 통신자료 조회를 통해 전화번호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비로소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관련자를 추적하는 것이 일반적인 통신 수사 기법이다.
하지만 조회 당사자들은 직접 통신사에 요청하지 않으면 조회 사실을 알 길이 없다는 점이 지속해서 문제로 지적됐다. 국가기관이 자신도 모르는 새에 정보를 수집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사 관행은 지난해 말 '사찰' 논란으로까지 불거진 공수처의 광범위한 통신자료 조회로 공론화됐다.
당시 공수처는 각종 수사와 관련해 카카오톡에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해 다수의 전화번호를 확보했다.
당시 주요 수사 대상이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이나 일부 기자였기 때문에, 이들이 속해 있는 단톡방 내 인원들의 전화번호를 다수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경험이 많은 수사기관은 특정 기간에만 제한적으로 요청하지만, 출범 1년 차인 공수처는 무더기로 조회하며 논란을 자초했다.
피조회자들이 자발적으로 통신사에 확인해 자신들이 조회된 사실을 알게 됐고, 조회 대상이 날로 불어났다.
특히 피조회자들이 당시 야당이었던 국민의힘 의원들이 다수였기 때문에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사후 통지 규정 도입되면 무차별 조회는 수그러들 듯
따라서 이날 헌재의 판단으로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는 더욱 신중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게 됐다.
정보를 제공한 통신사는 반드시 피조회자에게 사후 통지를 하도록 법 개정을 내년 안에 하도록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미 국회에는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다.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은 전기통신사업자가 수사기관에 통신자료를 제공한 경우 1개월 이내에 당사자에게 의무적으로 통보하도록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지난 1월 발의했다.
무더기 조회 뒤 피조회자에게 자동으로 자료가 조회됐다는 사실이 통보될 경우, 지난 공수처 사찰 논란 때처럼 집단 반발을 맞을 우려가 적지 않다.
비록 헌재가 영장이 없는 통신자료 조회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지만, 사후 통지 규정은 수사기관이 통신자료 조회를 줄이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작동할 수 있을 전망이다.
특히 박대출 의원안에는 통신자료 제공으로 발생하는 비용은 통신사가 아니라 수사기관이 부담하도록 하는 조항도 담겼다.
국회예산정책처의 비용 추계에 따르면 연간 30억원에 달하기 때문에, 박 의원안이 그대로 통과되면 역시 수사기관들은 예산 문제로 조회를 최소화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작년 하반기 전기통신사업자가 검찰·경찰·공수처·국가정보원 등에 제공한 통신자료 건수는 전화번호 수 기준으로 248만1천17건에 달한다.
공수처는 이날 헌재 결정에 대해 "무분별한 조회를 차단하기 위해 자체 통제 방안을 마련해 시행 중으로 자료 확보의 적법성을 넘어 적정성까지도 확보해 나가겠다"며 "국회가 법 개정을 추진할 경우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을 보호하는 동시에 수사상 목적도 달성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2vs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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