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땅과 건물 중 땅만 사들인 새주인이 땅 위의 건물을 치우라고 한다면?[판결돋보기]

박용필 기자 2022. 7. 21.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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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내 땅 위에 남의 건물이 서 있을 경우 나는 그 건물을 치우라고 할 권리가 있다. 그래서 남의 땅에 건물을 지을 때는 ‘지상권(地上權)’을 설정한다. 지상권은 땅을 소유하진 않아도 그 땅 위에 있는 건물 등을 소유하기 위해 토지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다.

땅주인이 건물주인일 경우, 내 땅 위에 내 건물을 지으니 ‘지상권’을 따로 설정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중간에 땅만 남에게 팔았다면 어떻게 될까? 원칙적으로는 새 땅 주인이 내게 건물을 치우라고 하면 치워야 한다. 땅에 대한 소유권도 없고 ‘지상권’도 없기 때문이다. 멀쩡한 건물을 철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런 사태를 피하기 위해 법은 해방 이후 줄곧 ‘관습법적 법정지상권’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땅과 건물의 소유주가 동일했다가 이 중 하나의 소유주가 달라진 경우에 한해 지상권 설정 등기가 없어도 지상권을 인정해준 것이다.

논란도 꾸준히 있었다. 법규 어디에도 ‘관습법적 법정지상권’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땅의 소유주가 대가도 없이 타인의 건물이 자신의 땅 위에 있는 것을 용인해야 한다는 것은 과도한 재산권의 제약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법관들은 이 문제를 다시 판단하기로 했다. 그리고 21일 “관습법적 법정지상권을 계속 인정해야 한다”는 결론을 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이날 ‘새 땅주인’ A씨가 건물 공동소유자들을 상대로 토지인도와 건물 철거를 청구한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전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전북 익산의 한 토지 소유주였던 B씨는 해당 토지 위에 세워진 건물을 다른 이들과 공동으로 소유했다. 그런데 2010년 토지를 자녀인 C씨에게 증여했고, 2014년 토지는 경매 절차를 통해 A씨에게 넘어갔다. 이후 땅 주인이 된 A씨는 건물의 공동소유자들을 상대로 건물이 차지하고 있는 땅을 내놓던지, 아니면 건물을 철거하라며 소송을 냈다.

원심은 이 청구를 받아들였다. 이 사건의 경우 토지의 소유자가 건물 전체를 소유한 게 아니라 일부만 소유했고, 그나마도 토지의 소유권이 자녀에게 넘어간 뒤 다시 A씨에게 넘어갔기 때문에 ‘관습법적 지상권’을 인정할 요건, 즉 ‘땅과 토지의 소유자가 같았다가 달라진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이 사건에 대한 판단을 넘어 ‘관습법적 지상권’을 인정해주는 것 자체가 타당한가에 대해 다시 한번 판단이 필요하다고 봤다. 2012년 대법원은 전원합의체를 통해 이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판례를 유지했었다.

전원합의체는 이날 ‘토지 소유자가 건물 일부만 소유했고, 한 차례 증여가 이뤄진 경우’도 ‘관습법적 법정지상권’을 인정해 줄 소지가 있는데, 원심은 이 부분을 제대로 심리하지 않았다며 사건을 파기했다.

그러면서 ‘관습법적 법정지상권’ 자체도 계속 인정해줘야 한다며 기존 판례를 유지했다. “민법은 관습법에 의한 물권 창설을 인정하고, 토지와 그 지상 건물의 소유자가 분리될 때 건물의 철거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을 방지할 공익상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1960년 9월 선고 이후 관습법상 법정지상권의 유효성을 인정해 왔다”며 “토지와 지상 건물의 소유자가 분리될 때 건물 철거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을 방지할 공익상 필요에서 인정해 온 관습법상 법정지상권이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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