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 간담회' 경찰 지휘부-직협, 이견 재확인..전국 경찰서장 회의 '촉각'
경찰 지휘부가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에 반대해 삭발·단식 투쟁을 이어온 경찰 직장협의회와 4시간 넘게 ‘릴레이 토론’을 벌였지만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다. 이번 주말 총경급 간부들이 사상 첫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예고한 터라 경찰국 설치를 둘러싼 내홍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는 21일 오전 11시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전국 직협 대표단 등과 간담회를 가졌다. 경찰 지휘부에서는 윤 후보자와 김순호 경찰청 안보수사국장, 김준영 경찰청 기획조정관, 최주원 경찰청 수사기획조정관 등이 참석했다. 직협 측에서는 민관기 충북 청주흥덕경찰서 직협 회장과 이소진 경찰청 직협 회장, 여익환 서울경찰청 직협 위원장 등 22명이 참석했다. 이날 간담회는 경찰 지휘부가 먼저 직협 측에 소통하자고 제안해 성사됐다.
윤 후보자는 모두 발언에서 “중립성과 책임성이라는 경찰제도의 기본 가치가 훼손되지 않게 새로운 운영제도를 면밀히 살피겠다”며 “이제 지휘부를 믿고 에너지를 모아달라”고 했다. 경찰국 설치에 대해서는 “국민 안전을 위해 헌신해오신 여러분의 기대를 온전하게 충족시키진 못했지만, 우리 의견을 상당부분 반영한 측면도 있다”며 “어떤 경우에도 경찰 중립성과 책임성이라는 기본 가치가 훼손되지 않게 새로운 운영제도를 면밀히 살피겠다”고 했다.
당초 오후 2시 종료 예정이던 간담회는 오후 3시15분쯤 마무리됐다. 윤 후보자는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계급을 떠나 국민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을 나눴고.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었다”며 “결국은 지향하는 바가 같다는 공감대를 가졌다”고 했다.
민관기 직협 회장은 “청장 후보자가 현장 직원들 의견을 청취하고 본인의 소신껏 답한 것 같다”며 “다만 경찰국 신설에 대해서는 평행선을 달렸다. 조직 신설에 있어 현행법상 논란이 되는 쟁점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은 반대 운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공안직(공공안전직무) 수준의 보수 인상과 복수직급제 도입 등에 대해서는 윤 후보자와 직협 대표단 사이에 상당 부분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전해졌다.
직협은 오는 25~29일 서울역과 용산역 등지에서 경찰국 신설 반대 대국민 홍보전을 한다. 직협 관계자는 “간담회에서 후보자 말씀을 들어보니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처음에는 경찰국장을 민간인이나 검찰 출신도 할 수 있도록 안을 짜놨다고 하더라”며 “지휘부 설득으로 경찰 치안감이 맡도록 한 측면도 분명히 있었다. 현실적으로 경찰국 신설을 뒤집기 어렵다는 점에서 지휘부와 계속 날을 세울 순 없다는 게 직협 내부의 중론”이라고 했다.
경찰서장 직급인 전국의 총경들은 23일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연다. 전국 총경 600여명 중 400여명이 메신저 단체대화방에 참여해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이다.
윤 후보자는 이날 직협 간담회 이후 전국 서장·총경들에게 e메일을 보내 사실상 회의를 열지 말아 달라는 뜻을 전했다.
윤 후보자는 “국민의 눈에 비친 스스로의 위치와 직분을 생각하며, 신중한 판단과 실행이 요구됨을 숙고해주시기를 바란다”며 “대우조선해양 상황, 코로나19 재확산, 수사권 조정에 따른 책임 수사 역량 향상 등 현안이 산적해 있다”고 했다. 이어 “국민들이 이런 시기에 우리 경찰이 내부 문제에 관심을 집중하며 정작 중요한 본연의 역할에 소홀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윤 후보자는 “여러분의 순수한 뜻이 퇴색되고 왜곡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며 “숭고한 문제의식과 냉철한 현실감각을 모두 겸비하면서, 경찰의 미래를 위해 어떻게 방향을 설정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별도의 소통창구를 개설해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고 했다.
회의를 제안한 류삼영 울산 중부경찰서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현재 총경들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하는 것이 바로 ‘숙고’다. 지금까지 아무 숙고 없이 일이 진행된 것”이라며 회의를 강행할 뜻을 밝혔다. 류 서장이 경찰 내부망에 “경찰국 신설 등 중대한 정책 변화에 우리 경찰의 의견을 충분히 전달하기 위한 취지의 회의”라고 설명한 글에는 응원 댓글 수백개가 달렸다.
회의에 참석하겠다는 한 총경은 “회의가 실제로 열리는지 여부를 떠나 전국 총경들이 이렇게 모여서 대책을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상황의 심각성을 보여준다”며 “우리는 내무부 치안본부 시절을 겪어봤기에 그 시절이 얼마나 치욕스러운지 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같은 고통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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