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파업 50일, 찢긴 현수막 사이로 경찰 버스들이 들어왔다
조선업 하청 도장노동자 이경창씨(51)의 왼쪽 허벅지엔 손바닥 한 뼘 만한 흉터가 있다. 페인트 도장 전 그라인더로 거대한 배 표면의 용접부위나 오염된 부분을 매끄럽게 다듬는 것이 그의 일이다. “높이 매달려 일하는 것도 위험하고, 그라인더가 고속으로 움직이다 보니 거의 다 흉터 한 두개씩은 있다고 보면 돼요.”
21일 오전 11시, 이씨는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1독(Dock·선박건조공간) 근처 천막 그늘에 앉아 말없이 독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파업 50일. 전날 밤부터 내린 비가 그쳐 햇살이 그의 노조 조끼 위로 세게 꽂혔다. 30여명의 노동자들은 이씨처럼 천막 그늘 아래에 삼삼오오 모여있거나, 1독이 내려다보이는 다리에 일렬로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다리 한편으로는 수십 미터 높이의 거대한 배들이 바다에 떠 있고, 반대편 1독에 걸린 선박 블록(배의 일부분)에는 농성 중인 노동자 7명이 있다. 유최안 부지회장이 스스로 용접한 0.3평 철제 케이지 앞에서 노조 관계자들이 대화를 나눴다.
하청노동자 수십 명이 앉아 있는 독 위 다리에는 떠들썩한 목소리나 웃음은 들리지 않았다. 전날 하청노동자들과 사측의 교섭이 12시간 논의 끝에 결렬되면서 교섭은 교착 국면에 접어들었다. 노조는 7년 전 조선업 불황 때 삭감된 30%의 임금을 되돌려달라는 요구를 4.5%선까지 내렸다. 그러나 사측이 독 점거로 발생한 손해배상과 민·형사상 책임을 요구하면서 협상은 좀체 진전되지 않았다.
노사가 이날 오전부터 다시 교섭에 들어갔지만 회의는 오후까지 공전했다. 그러다 밤 늦게까지 회의를 이어가면서 타결 가능성이 생겼다. 쟁점이 됐던 손배소 부문에서 노사 모두 일부 의견에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지욱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21일 밤 늦게 기자들에게 “최선의 결과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희망섞인 이야기를 전했다.
노조가 요구한 ‘7년 전 임금’을 이경창씨도 기억한다. 그는 거제에서 7년, 다른 지역 조선소까지 더하면 14~15년간 조선소 하청업체 여러 곳을 돌며 일했다. 거제로 옮길 때쯤 조선업은 불황 타격을 받았고 그의 임금도 30% 가까이 깎였다. 20대 두 딸과 아내는 “다치지 말라”며 걱정하면서도 “아빠가 하는 일이 옳다”며 응원해준다고 했다. 이씨의 노조 조끼 등에는 “우리가 옳다, 뭉치면 이긴다”고 적혀 있었다.
오는 23일에는 조선소 전체가 휴가를 떠나기에 협상시간은 사실상 이틀 밖에 남지 않았다. 21일 오전부터 조선소 곳곳에서는 파업을 지지하고 반대하는 목소리가 뒤섞였다. 전국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는 지회의 금속노조 탈퇴 여부를 묻는 투표를 이날 시작했다. 식당 앞 투표소에서 만난 B씨는 “파업이 계속되면 결국 모두의 생계가 위협받는 것 아닌가”라며 탈퇴 찬성표를 던졌다고 했다. 반면 정모씨(48)는 “교섭에 사측이 더 신경써야 하지 노조가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식당 앞 흡연실에는 ‘회사 말아먹고 임금 인상이 되나’라고 적힌 낙서와 ‘복수노조는 노노갈등과 노조탄압의 시작’이라는 포스터가 나란히 자리했다.
서문으로 들어오는 50m 길이 다리에는 칼로 찢긴 노조 현수막 10여 개가 바람에 나부꼈다. 찢긴 현수막을 배경으로 부산·울산 등에서 동원된 경찰 기동대 버스가 1~2대씩 계속 들어왔다. 경찰 버스들은 서문 인근 광장에 도열해 대기했다. 오후부터는 1독 인근에도 경찰이 배치되고 소방은 안전점검과 에어매트 설치를 시작했다. 민주노총 중앙 간부들은 이날 오후 서문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을 폭력으로 짓밟는다면 정부와 노동자의 전면대결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한 거 같아요. 자기들이 만든 사태에 왜 이렇게까지…” 하청노조 문정호 도장분회장이 1독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거제 |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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