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속에서, 쏟아지는 눈부신 별빛 마주하다

서울앤 2022. 7. 21.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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㉞ 남산에서 배우는 천체투영기의 원리와 역사

[서울&] [서울 쏙 과학]

천체투영기는 말 그대로 스크린에 천체를 투영하는 기술이다. 사진은 리히텐슈타인의 미니코스모스 천문관에 있는 차이스 스카이마스터 ZKP 4 천문관과 파워돔 스페이스게이트 시스템.

서울시교육청 과학전시관 남산분관

천체투영실에 쏟아진 3천 개의 별빛

특수 전구로 둥근 천장에 천체 투영

빛공해 없는 자연 속 밤하늘 재현해내

독일 광학회사 ‘차이스’가 개발한 제품

9천 개 성판 구멍 등 모두 손으로 제작

92년 첫 설치 때 강남 아파트 5채 가격

오는 8월 은‘ 퇴’, 내년 신형 투영기 설치

7600만 광년 거리의 우주절벽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지난 11일, 지구 최고의 성능이라는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이 찍었다며 공개한 사진이었다. 하지만 손바닥만 한 사진을 보고 있자니, 뭔가 아쉬웠다. 진짜 별을 보는 기분이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열린 동공으로 쏟아지는 무수한 별들이 주는 압도적 체험. 그런 체험을 도심 속에서 할 수 있는 곳이 있다. 그것도 서울의 한가운데에서. 서울특별시 교육청 과학전시관 남산 분관의 천체투영실이다. 이곳에 가면 대낮에도 머리 위에서 쏟아져 내리는 3천 개의 별빛을 볼 수 있다.

오랜만에 찾은 천체투영실은 한가했다. 1992년 첫 설치 때부터 이곳을 유지보수했던 우성정밀광학의 백승훈 주임이 “원래 오늘은 정기 점검일이라 상영이 없다”고 말했다. 덕분에 기기 점검 과정을 보면서 천체투영실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수십 가지 항목을 점검했다. 자동화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항성이 정상적으로 투영되는지, 보조투영기가 시나리오에 맞춰 동기되는지, 별자리 그림과 투영된 별이 일치하는지, 행성투영기가 정상 작동되는지 등.

이러한 천체투영 시스템을 국내외 전문가들은 ‘플라네타리움’이라고 부른다. 국립국어원 규범 표기는 ‘플라네타륨’이지만 영어 발음은 ‘플라네타리움’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플라네타륨은 돔의 안쪽 둥근 천장에 실물 그대로의 천체현상을 투영하는 교육용기계다. 하늘의 모양을 비춘다고 ‘천상의’, 행성을 비춘다고 ‘행성의’라고도 한다. 최초의 플라네타륨은 현미경 제작으로 유명한 독일의 광학기술자 카를 차이스의 이름을 딴 광학회사 ‘차이스’가 개발했다. 남산 천체투영실에 설치된 천체투영기 역시 차이스의 M1015 제품이다. 1992년 당시 강남 아파트 다섯 채를 살 만한 금액, 10억원을 들여 설치했다.

백기동 우성정밀광학 대표(맨 오른쪽)가 서울시교육청 과학전시관의 임주섭 남산분관장(가운데) 백승훈 우성정밀광학 주임과 함께 내년 4월 설치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백기동 우성정밀광학 대표는 이 제품을 ‘수공예품’이라고 표현했다. 아령 모양으로 생긴 투영장치, 32개의 렌즈, 약 9천 개의 별빛을 비추는 성판의 구멍들까지 다 손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다 인간의 무늬, 인문(人文)이다. 이곳엔 역사의 무늬도 남아 있다. 독일의 분단과 통일의 흔적이다. 백 대표는 로고가 새겨진 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글자가 지워진 자리, 보이시죠? ‘웨스트 저머니’(West Germany)라 적혀 있던데서 ‘웨스트’가 지워진 거예요. 동서독 분단기에 차이스 역시 웨스트 차이스와 이스트 차이스로 분리됐던 역사가 있습니다.”

남산에 천체투영기를 설치한 우성정밀광학의 백승훈 주임이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점검하고 있다.

그는 M1015를 받치고 있는 철제 다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 눈빛이 연인을 보는 듯 아련했다. 별 보기를 좋아해 ‘건대우주탐구회’를 창립하고 대학교 3학년 때 광학업체를 창업했던 ‘청년’의 열정이 67살 노장의 얼굴에 스쳤다.

그의 눈길을 따라 M1015의 구석구석을 살펴봤다. 먼저 중앙의 투영장치. 이 장치는 태양의 궤도 즉 황도(黃道)를 따라 회전하면서 복잡한 행성의 움직임을 지구의 공전주기를 반영해 재현한다.

아령 모양의 양 끝에 달린 것들은 각각 북반구와 남반구의 별들을 보여주는 ‘항성구’다. 여기엔 ‘성판’이라 불리는 성야원판(星野原版)이 붙었다. 가운데의 원통 부위엔 태양과 달을 비롯해 수성, 금성, 화성 등 태양계 행성들과 은하계를 비추는 투영기가 있다.

여기에 강력한 특수 전구로 빛을 비추면 밤하늘의 영상이 둥근 스크린에 비친다. 인공의 빛공해 없는 자연 속 밤하늘에서처럼 쏟아져 내리는 듯한 별빛은 이런 구조를 통해 구현된다.

모든 천체투영관이 다 이런 별빛을 보여주는 건 아니다. 광학식 투영기만 이런 별빛을 보여준다. 레이저 프로젝터 등 디지털 투영기를 쓰는 천체투영관에선 별빛이 원반모양이다. 빛 퍼짐 현상 때문이다. 백 대표는 “디지털 별은 가까이 가서 보면 탁구공같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투영엔 한계가 있습니다. 빛 퍼짐때문에 자연의 별처럼 점으로 보이지 않죠. 광학식 투영기는 점의 형태로 인간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보다 작은 별까지 구현할수 있습니다. 사람 눈의 분해능을 능가하죠.” 최신형일수록 더 잘 구현한다. 내년 4월남산 분관 천체투영관에 설치될 예정인 차이스의 신형 투영기 ‘아스테리온’은 7천 개의 광섬유를 써서 별을 투영한다.

백 대표는 “아스테리온을 설치하는 건 남산 분관이 세계 최초”라며 “빛 하나 없는 어두운 벌판에서 보는 별빛보다 더 선명한 별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자랑했다.

“지금 쓰는 M1015 핀홀식 플라네타륨은 1등성의 직경이 5아크민(arcmin·각분)보다커요. 아스테리온은 광섬유로 투영하기 때문에 1등성의 시직경이 인간 눈의 분해능한계인 1아크민 이하로 투영됩니다. 과거 투영기보다 100배 정도 밝게 보입니다.”

나는 내 눈의 ‘분해능’이 궁금했다. 마침 투영기 작동 시험이 시작됐다. 저물녘 서울의 하늘을 배경으로 서서히 어두워졌다. 눈을 뜬 것인지 감은 것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치짙은 어둠이 내려왔다. 별빛이 쏟아졌다. 몇번을 봐도 탄성이 흘러나오는 장면이다. 그때 30년 동안 누적 인원 150만 명이 들었을 바로 그 멘트가 흘러나왔다.

“이 우주 속에는 약 1천억 개의 은하가 있고, 그 안에 약 2천억 개의 별로 이루어진 우리 은하가 있습니다. 그 별 중 하나가 태양이며 지구는 태양이라는 별의 주위를 돌고있는 작은 행성이랍니다.”

옆에서 백 대표가 “현재는 은하가 이보다 다섯 배는 많은 5천억~7500억 개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며 “우리 은하의 항성 수도 4천억 개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새로 발견된 과학적 사실들은 내년 4월 재개장할 플라네타륨에선 업데이트 될 예정이다. 임주섭 서울시교육청과학전시관 남산분관장은 “신형 투영기를 설치하면 천문, 우주뿐 아니라 환경, 생명 등 다양한 과학 콘텐츠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백승훈 주임 말에 따르면, 재개장 할 플라네타륨엔 ‘완벽한 어둠’을 구현하는 벨벳 엘이디(LED) 디지털 투영기가 아스테리온과 함께 설치될 예정이다. 투영기에서 빛이 새나가지 않게 하는 기술이 그사이 더 발전한 덕분이다. 임 관장의 표현처럼 “서울의 위상에 맞는 투영기”가 들어오는 것이다.

새 투영기에 대한 기대를 뒤로하고 지금의 투영기와 쌓았던 추억을 되새기고 싶다면, 혹은 아직도 액션 연기를 직접 소화하는 배우 톰 크루즈처럼 한창 현역인 구식 투영기의 성능을 감상하고 싶다면, 좀 서둘러야겠다. M1015는 오는 8월 말 은퇴할 예정이므로. 그 후엔 녀석을 남산 분관 전시대의 유리관 밖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 이경숙 과학스토리텔러

참고 자료: ‘사이언스올 과학백과사전’(한국과학창의재단), ‘차세대 플라네타리움’(나고야과학관 지음, 우성정밀광학 번역)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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