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어' 또 사라졌다..현대오일뱅크 상장 무산에 IPO 시장 급랭

양지윤 2022. 7. 2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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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1년 새 20%↓
현대오일뱅크 상장 철회, 업황 악화·지주사 등 고려
대어 "적정 기업가치 인정받기 어렵다" 철회 잇따라
냉랭해진 IPO 시장에 상장 준비 기업들 고민

[이데일리 양지윤 기자] 하반기 최대 기대주였던 현대오일뱅크가 코스피 상장을 철회하면서 기업공개(IPO) 시장의 대어(大魚) 기근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심화와 금리인상, 경기불황 우려 등으로 코스피 지수가 올해 들어서만 20% 가까이 떨어지면서 적정 밸류에이션(기업 가치)을 받기 어려워지자 대어들이 발을 뺀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오일뱅크와 함께 대어로 꼽혔던 쏘카 등은 예정대로 IPO를 진행할 계획이지만 하반기에도 국내외 증시 상황이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여 원하는 기업가치를 받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현대오일뱅크는 21일 IPO 계획을 철회한다고 공시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전날 이사회를 열고 최근 주식시장 상황과 동종사 주가 동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IPO를 철회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12월 한국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 신청서를 제출하고 지난달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했다. 현대오일뱅크의 IPO 도전은 지난 2012년과 2019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였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국제유가와 정제마진 등 업황 지표는 현재까지 좋은 편이지만 정유업계를 둘러싼 대외 불확실성 확대로 IPO 과정에서 제대로 된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고 보고 상장철회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오일뱅크가 IPO를 철회한 배경은 현대중공업그룹 지주사인 HD현대의 기업가치 하락을 막기 위한 조치로 분석된다. 정유업계는 올해 상반기 국제유가 급등과 핵심 수익성 지표인 정제마진 강세로 역대급 실적이 예상되지만 정유업황의 피크아웃(정점 통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각 증권사들은 최근 SK이노베이션(096770)과 S-OIL(010950)의 목표주가를 줄줄이 하향하고 있다. 정유주는 최근 조정을 받으면서 이날 기준 시가총액은 SK이노베이션 16조9200억원, S-OIL 10조5500억원 수준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2019년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로부터 투자를 유치할 당시 기업가치는 8조원 수준으로 평가돼 IPO 과정에서 10조원 이상 몸값을 인정받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상장 후 15조원대의 시총을 기대했지만 현 시점에선 경쟁사의 시총을 넘어서긴 쉽지 않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특히 HD현대 입장에서는 현대오일뱅크가 당초 예상보다 낮은 몸값으로 상장하는 게 기업가치 측면에서 실익이 없다. 조현렬 삼성증권 연구원은 “정유주가 피크아웃 우려로 조정을 받게 되면서 현대오일뱅크의 공모희망 가격도 하락이 불가피했을 것”이라며 “굳이 할인된 가격으로 상장하는 게 HD현대 기업가치에도 긍정적이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순자산가치(NAV) 할인 우려를 불식하는 차원에서 IPO를 철회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현대오일뱅크는 향후 IPO 재추진과 관련해서는 “현 시점에서는 검토한 게 없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도 최근 정유업황 호황으로 미래투자를 위한 실탄이 확보된 만큼 당분간 상장 재추진에 나설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봤다. 일각에서는 현대오일뱅크가 ‘IPO 사수생’의 길을 걷기보다 아람코 등 외부에 지분을 매각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현대오일뱅크에 앞서 상반기 현대엔지니어링·SK쉴더스·원스토어 등 대어급 공모주들이 잇따라 상장을 철회하면서 IPO 시장 분위기는 냉랭하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 이후 7개월 만에 코스피 시장에 입성하는 수산인더스트리는 기관투자가 대상 수요예측에서 130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흥행몰이에서 참패했다. 쏘카는 상장 일정을 계획대로 진행할 계획이지만 오는 8월 기관 수요예측에서 흥행에 성공할지는 불투명하다. 컬리(마켓컬리)와 케이뱅크도 연내 상장을 추진하고 있으나 원하는 기업가치를 인정받을지는 미지수다. 내년 상장을 추진 중인 국내 이커머스 기업들도 상장 시점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코스피 상장을 준비 중인 한 기업 관계자는 “국내 증시가 이미 상반기부터 약세장이 이어져 오고 있는 만큼 현대오일뱅크의 상장철회는 새로운 악재는 아니다”면서 “국내외 시장 상황과 경영성과와 전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개별 기업의 사정에 맞게 IPO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지윤 (galile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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