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두 번째 슈퍼 감세..경기둔화 대응은? 재정 건전성 회복 차질 없을까
향후 5년간 세수 13.1조 감소.. "예상 넘는 감세 수준"
정부 "최근 국민 세부담 급증..2년 만에 세수 100조 증가"
지출 구조조정 强드라이브 전망
21일 발표된 윤석열 정부의 첫 번째 세제 개편안은 2008년 이명박 정부 집권 직후 발표한 세제 개편 이후 사상 두 번째로 큰 슈퍼 감세안으로 평가된다. 이번 세법 개정으로 인한 세수 감소액은 13조1000억원으로 33조원 감세를 단행한 2008년 이후 사상 두 번째로 큰 규모다.
법인세와 소득세 감세를 동시에 단행한 것도 2008년 세법 개정과 유사한 방향이다. 당시 정부는 25%였던 법인세 최고 세율을 2단계에 걸쳐 20%로 낮추고, 소득세율을 전(全)구간에 걸쳐 2%포인트(p) 인하하는 내용이었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추고, 소득세 하위 2구간의 과세표준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중산층 이하 서민의 세부담을 경감한 윤석열 정부 첫 번째 세제 개편과 비슷하다. 문재인 정부가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과세로 운용했던 종합부동산세를 보유 주택가액에 따라 세금을 내는 방식으로 ‘정상화’한 것도 이번 세제 개편의 특징이다.
‘고물가·저성장’으로 요약되는 복합적 경제위기에 윤석열 정부는 ‘감세 카드’라는 처방전을 내놨다.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민간 경제활동을 옥죄는 조세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국세수입이 최근 2년간 100조원 넘게 증가한 것은 대기업, 고소득자, 다주택자를 규제하는 수단으로 활용한 문재인 정부 조세정책의 부작용이라는 게 새 정부 경제 브레인들의 판단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5년간 국가채무가 400조원 이상 폭증한 상황에서, 단행되는 감세가 윤석열 정부의 재정건전성 회복 구상에 차질을 빚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인플레이션 장기화와 수출 둔화 등으로 하반기 경기둔화가 예상되는 시점에서 단행되는 감세안이 정부의 경기 대응 여력을 제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정부 “저성장 극복 위한 감세…최근 조세부담률 급증도 고려”
기획재정부는 이날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세제발전심의위원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22년 세제 개편안’을 확정, 발표했다.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소득세 과세표준 조정, 가업상속공제대상 확대 등이 주요 골자인 이번 세제 개편안을 통해 정부는 2년 간 13조1000억원의 감세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2008년 세제 개편 이후 사상 두 번째로 큰 대규모 감세안을 내놓은 것이다.
정부가 감세 카드를 꺼내든 것은 최근 2년 간 국민들의 세부담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285조5000억원이었던 국세수입은 지난해 344조2000억원으로 급증했고, 올해 말(396조6000억원)에는 400조원을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20%였던 조세부담률은 올해 말 22.1%로 급상승한다. 우리나라 국민의 조세부담률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전 17% 수준에 머물렀지만, 최근 5년 사이에 5%p 수직 상승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세수입이 100조원 증가하기까지 200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이 소요됐으나, 최근에는 2년 만에 100조원 이상 증가했다”면서 “최근 한국의 조세부담률 증가 속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위에 해당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법인세와 재산세수의 증가속도가 높은 점도 조세 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정부는 진단했다. 문재인 정부 집권 후 과세표준 3000억원 이상 25% 최고세율 구간을 신설하면서 법인세 체계가 누진세율이 적용되는 4단계로 바뀐 것은 특정 대기업에 대한 징벌적 과세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OECD 가입 국가가 법인세에 대해선 단일세율 또는 2단계 세율로 운영하고 있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되면서 소비와 투자가 둔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도 윤석열 정부가 첫 번째 세제 개편을 감세 카드로 채운 배경이다. 정부는 고물가 장기화로 취약해진 서민들의 소득여건을 강화하기 위해 소득세 하위 2개 구간의 과세표준 금액을 상향하기로 했다. 또 직장인 식대에 대한 비과세 한도를 월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올리기로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저성장 극복과 민생 안정을 세제 측면에서 적극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면서 “성장과 세수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면서, 세입기반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재편하는 것을 이번 세제 개편의 목표로 삼았다”고 말했다.
◇ 감세 세제안, 尹 정부 재정건전성 회복 발목 잡을 가능성도
그러나 전문가들은 지난 5년 동안 문재인 정부의 무리한 확장 재정으로 국가채무가 1000조원 이상으로 늘어나는 등 재정 여건이 취약해진 상황에서 대규모 감세가 단행되는 것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번 세제 개편으로 인한 세수 감소가 정부 전망보다 더 커질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등을 통해 감세를 예고했지만 13조원 규모의 감세안은 예상을 뛰어넘는 규모”라면서 “다양한 세목에서 조금씩 완화한 게 ‘티끌모아 태산’식으로 모이면서 총 세수 감소분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번 세법개정안이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재정건전성 회복 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정부는 지난 7일 열린 ‘2022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5%대(2022년 기준)로 예상되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3% 이내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관리재정수지는 정부의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과 고용보험 등 4대 사회보장성기금수지를 뺀 재정 지표다.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수입을 늘리거나 지출을 줄여 재정지수를 전년대비 40조원 이상 개선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세제 개편으로 정부가 지출 구조조정에 더욱 고삐를 쥐어야 할 부담에 직면했다고 진단한다. 김 교수는 “감세를 하면서 재정적자를 줄이는 재정 개혁을 하는 것은 상당한 난제”라면서 “각 부처에 대한 지출 구조조정 압박이 더 세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경기 침체기 재정 역할 필요하단 지적도
이런 우려에 대해 정부는 경상성장률 등을 감안하면 올해와 내년 13조원 가량의 감세는 감내할 수준이라는 입장이다. 당장 내년에 감소하는 6조4000억원 가량의 감세 규모는 2022년 잠정 국세수입 396조6000억원의 1.5% 수준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내년 6조원 정도 감세 수준은 통상적인 세수확대를 감안할 때 충분히 감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세수 감소가 일회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소비와 투자 확대에 기여할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세수 확대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인플레이션 장기화로 글로벌 경기 위축으로 수출 둔화가 예상되는 등 하반기 경기 둔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감세를 추진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재정 지출 등 경기둔화에 따른 정부의 대응 여력을 제약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이른바 3고(高) 등 경제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기업의 투자가 단기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가 일정 수준 이상 지출 확대를 감당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는 법인세 인하로 기업의 투자 확대를 기대했겠지만, 지금 같은 고금리와 물가 상승 상황에선 어떤 기업도 투자를 확대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세수 감소로 과연 정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감세 기조가 적자국채 발행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우 교수는 “감세를 하면, 정부 지출도 줄여야 하는데 최근 30조원 규모의 새출발기금 등 예산이 많이 소요되는 취약계층 채무탕감 프로그램을 정부가 발표했다”면서 “모두 돈이 필요한 사업들인데 감세를 하면서 어떻게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재정 기조와 세제안, 금융지원 모두 일관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반면 김 교수는 “강력한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한다면 감세 기조를 유지하면서 신규 재원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세제 개편안의 성패는 지출 구조조정에 달려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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